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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Dec 09. 2024

열여덟 독일 소녀에게 선물한 책

비상계엄령과 『소년이 온다』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일하는 까페에서 동료들과 서로 선물을 하기로 했다. 모두의 이름을 적은 상자에서 하나를 뽑아 그를 위한 '시크릿 산타'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뽑은 이름은 얼마 전 열여덟이 된 한 소녀였다. 열 살이 넘게 어리다는 것을 종종 잊을 만큼 성숙하고, 당차고, 정의로운 신념을 가진 친구였다. 까페에 종종 찾아오는 노숙자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몰래 따뜻한 우유를 건네고, 계약서를 쓰지 않은 동료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돕고, 세금을 적게 내려는 의도로 내려온 지시사항을 듣지 않는, 그런 아이.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은 내 열여덟을 떠올리게 했다. 옳은 일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던, 세상의 모서리에 놓인 이들을 이해하고 안타까워하던, 누군가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던 그 아이.


모두의 선물을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미리 정한 금액인 10유로에 맞춰 한 서점에서 작은 책을 샀다. 학교 수업으로 빡빡한 일상에서 잠깐 시간을 내 들른 서점에서 급하게 고른, 읽어본 적 없는 미국 작가의, 독일어로 번역된 책이었다. 무언가 더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시간에 쫓겨 아무렇게나 고른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런 다음의 이튿날, 내 아침은 비상계엄령을 내린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진행하려는 국회 생중계를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이미 내게 묻고 있었다. 너희 가족은 안녕하냐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멀리 한국에서 오밤 중에 일어난 사건은 8시간이 느린 독일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독일어로 된 기사를 읽으며 '비상계엄령', '선포', '해제'와 같은 단어를 익혔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질문에 이러한 단어로 간단히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역사가 있었다. 우리에게 왜 지금의 일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인지. 이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대통령 탄핵 안건을 국회에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사 유튜브 라이브를 틀었다. 당연히 통과될 거라고 생각하며 몇 시간을 지켜본 후에 마주한 것은 여당의 투표거부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재차 벌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또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한 생각이 벼락같이 떠올랐다. 그 아이에게 선물할 책을 바꿔야겠다.『소년이 온다』를 선물해야겠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것뿐이다.







새벽 출근길, SNS에서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 소식을 접했다. 강연 전문을 찾아 읽었다. 고요한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고요하고도 강렬한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했다. 인간에 대한 질문을 정면으로 응시한 작가의 모습에서, 그와 다른 나를 마주했다.


얼마 전, 까페 매니저와 직원들의 미팅이 있었다. 갑작스레 모두를 소집한 이유는 우리 중 누군가가 까페의 한쪽 벽에 적어둔 'Free Palastine'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점점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현실과 달리, 독일은 유대인 박해라는 역사 때문에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모든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손님이 까페에 적힌 그 문구를 보고 사장에게 직접 연락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사장의 화를 고스란히 받은 매니저는 까페 공간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며 사실상 직원들의 팔레스타인 관련 의사 표현을 금지시켰다. 미팅 전 채팅방의 공지로 이 소식을 접한 동료들은 하나같이 분노를 표현했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슬람 혐오와 인종차별, 집단 학살은 정치적 중립과 아무 상관이 없다며 다가오는 미팅에서 매니저와 논쟁을 벌일 것을 각오했다. 


그리고 미팅 날, 매니저는 이미 공지한 것과 다르지 않은 입장을 고수했다. 독일은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할 수 없고, 아주 복잡한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중 가장 진심으로 팔레스타인을 걱정하는 아일랜드인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고, 포르투갈인 동료와 열여덟의 그 아이 모두 간접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들의 지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매니저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모두 한 마디씩 보태는 와중에, 나는 우는 친구의 손을 잡아줄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고통을 겪으며 나는 다른 고통을 점점 외면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순간 그 고통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나는 그걸 견딜 힘이 없었다. 내 삶을 지키기도 벅찼다. 그래서 쏟아지는 보도를 멀리하고,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내가 말을 보탤 수 없는 건, 내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외면의 결과는 무지였다. 


 



 손님들은 오늘도 우리나라의 안부를 물었다.


퇴근 후 한 서점으로 향했다. 베를린의 중심에 있는 유명한 서점이었다. 일요일엔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 독일이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오늘은 운명처럼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수백, 수천 종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대형서점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1층의 중심에 있는, 가장 잘 보이는 메인 매대 중 하나에 가득한 한강 작가님의 책을 너무나도 쉽게 발견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독일에서,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 중의 하나인 그곳 한가운데 가득 놓인 한국문학. 책 속에 적힌 한글 제목과 그 아래의 익숙한 이름을 보면서 아픈 기억은 더 이상 아프기만 하진 않았다.


열여덟이었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열여덟 소녀에게 선물할 한 권과 함께, 그때의 마음을 잃어버린 나에게 줄 한 권을 같이 집어 들었다. 


더 이상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살기 위해서.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4/han/225027-nobel-lecture-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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