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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심리치료의 진화

리밸런싱, 신체심리영성치료로 나아가다

by 이강언

리밸런싱, 신체심리영성치료로 나아가다


신체심리요법(Body Psychotherapy)의 계승자들이 70~80년대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던 명상가 중 한 명이었던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 1931~1990)를 만남으로써 그 작업의 깊이를 더 하게 되었다. 서양의 심리학과 신체를 통한 심리치료의 차원, 거기다가 동양의 철학적 통찰과 명상적 깊이를 더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전인적 치료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서양의 심리학과 심리치료에서 명상과 영원의 철학을 접목하는 시도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매사추세추 주립대학교병원의 존 카밧진(Jon Kabat-Zinn) 교수의 위빠사나(불교 명상법)에 기반을 둔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BSR)이나 존 티즈데일(Jonn Teasdale)의 명상 기반 인지치료(MBCT),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 교수의 초월명상(TM)에 따른 이완반응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감정과 표정 심리학의 선구자인 폴 에크먼(Paul Ekman)은 달라이 라마 등과 함께 감정 균형 계발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서양 심리학에서 가장 최근에 나타난 흐름 중 하나인 초개인 또는 자아초월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의 거장인 켄 윌버(Ken Wilber)는 기존의 서구 대학병원에서 스트레스 치료를 위해 명상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명상을 심리발달은 물론 영적 깨달음이라는 인간 의식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접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그들의 체계에서 신체를 직접 다루거나 하지는 않는다.

반면 리밸런싱은 몸으로부터 시작한다. 먼저 “몸은 개인의 가장 진실한 역사”라는 사실에 기초한 체형(body type)분류와 그런 체형을 만든 심리적 원인과 그것의 구조인 성격심리학적 체형 분석(body reading)을 시도한다. 그런 다음 몸과 결부된 해소되지 않은 심층 감정 상태가 일으킨 신체적 경직/긴장을 풀어 억압된 감정을 해방한다. 나아가 그로 인한 몸의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아 몸과 마음이 최상의 균형 상태에 놓이도록 돕는다.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 없이는 항구적인 변화도 있을 수 없다.” - 힐만(James Hillman)


리밸런싱이란 말 그대로 다시(re) 균형 잡힌 상태(balance)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리밸런싱 요법은 존재 본연의 건강과 평온한 기쁨이 조화를 이룬 전체적(holistic) 인간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차원의 접근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음이 믿는 것과 가슴이 느끼는 것에 몸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세 가지 측면(몸, 생각, 감정)은 상호 의존적이며, 이 세 가지 측면이 무너져 있지 않고 본래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리밸런싱 로고.png

삼각형의 균형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매우 민감한 평형상태로 이루어져 있기에 한 면이 불균형을 이루면 나머지 두 면에도 영향을 미쳐 전체적 조화가 깨지게 된다. 몸으로부터 시작해서 감정과 인지 체계의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고, 회복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 안정된 구조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인 제4의 공간(이것을 요가에서는 마음의 네 번째 상태라고 한다)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리밸런싱을 할 것인가?


리밸런싱 요법의 주된 치유 수단은 체형분석을 통한 정확한 진단과 강한 터치 그리고 깊은 호흡이다. 여기에 자각을 더하면 치유의 퍼즐이 완성된다. 체형분석(이것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이 끝나면 강한 터치에 앞서 부드러운 신체 이완 기법인 JRT(Joint Release Technic)를 사용해서 전반적인 긴장 완화를 끌어내 강한 터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몸을 준비시킨다. 그런 다음 깊은 근조직의 경직 해소를 위한 DTW(Deep Tissue Work)를 행한다.

그러면 몸의 내적 공간이 확장되고 구조적 뒤틀림이 바로잡히면서 신체적 이완이 일어난다. 그런 다음 근육 긴장이 풀리면서 감정적 격분의 상태가 용해되어 심리적 이완이 일어난다. 나아가 그 원인이 되는 오래된 감정적 집착 성향과 구조화된 심리적 태도를 자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리밸런싱의 핵심은 우리 존재의 가장 내적 중심에 있는 공간과 무한한 의식의 장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치유자(therapist)와 내담자(client)는 서로를 믿고 자발스럽고 즉흥적인 치유의 장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치유자는 내담자의 몸을 올바른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한 존재의 역사를 담은 지고한 가치를 지닌 유기체로 돌봐야 한다. 정교한 기술적 터치도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갖고 내담자의 개성과 유일성 속으로 세심하게 조율해 들어가야 한다.



센스와 텐스(tense & sense)


어떻게 보면 치료의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몸의 균형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면 된다. 균형을 방해하는 요소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tense’이고 나머지는 ‘sense’이다. tense는 신체적 긴장을 뜻하고, sense는 심리적 인식이나 감각을 뜻한다(운율을 고려해서 영어단어인 tense와 sense라고 명명했다).

tense는 자주 취하는 자세나 특정 직업의 작업 자세와 같이 신체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나거나 심리적인 어떤 요인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는 신체적 차원의 경직 현상이다. 반복되는 긴장으로 이미 너무 굳어서 불균형이 구조화하면 균형을 맞춰놓는다고 해도 그 상태에 머무는 것 자체가 어렵다. 마치 용수철이 제자리로 돌아오듯이 굳은 근육이 원래의 자세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렵사리 균형을 맞춰놔도 이렇게 맞춰진 균형 상태를 되레 어색하게 느끼게 되는데, 이 어색함이 바로 sense의 문제이다. 아마 증명사진을 찍을 때 한 번씩은 경험해봤을지도 모른다. 사진사가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놓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 자신의 자세를 의심하기보다는 사진사를 의심하게 된다. 사진사랑 몇 차례 실랑이하다가 사진사의 말대로 자세를 유지하면 사진도 바르게 나오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우리의 자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취하는 자세는 뇌에 강한 신경망을 만들어 익숙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느낀다는 얘기다. 이 자연스러움은 그저 익숙함일 뿐, 올바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우리는 저도 모르게 이 자연스러움을 올바르다고 여긴다. ‘익숙함=자연스러움=올바름’이라는 등식이 자신도 모르게 뇌의 시스템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tense를 제거하려면 특별한 동작을 적용하거나 물리적 압력(주로 손가락을 사용)을 가해 긴장된 근육과 그 근육을 싸고 있는 근막을 풀어야 한다. sense를 바꾸기 위해서는 tense 제거와 더불어 자세 재조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자세와 관련한 기존 신경망을 새로운 신경망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3주 정도의 집중적인 세션이 필요하다.



치유의 방법과 단계


터치(touch)가 치유자(therapist)와 내담자(client)를 이어주는 직접적이고 외적인 매개라면 자각은 자기 존재의 모든 층을 이어주는 내적인 수단이다. 물론 터치 자체도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며, 자극을 촉발하여 저장된 감정을 풀어주는 강력한 치유 수단이므로 치유자의 적극적인 개입은 당연하다. 여기에서 자각은 치유자가 개입하거나 개입하지 않더라도 유용한 것이며 특히 내담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더불어, 자각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며 깨어서 편견 없이 세밀하게 깊이 살펴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1단계

1단계는 신체적 차원의 자각이다. 처음에는 몸의 전체적인 형태를 자각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특성을 살핀다. 그런 다음 신체의 각 부위의 특성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핀다. 판단은 최대한 배제한다. 이따금 판단이 일어나더라도 자책하지 말고 판단이 일어났음을 그냥 알아차리기만 한다. 그다음에는 호흡의 상태를 관찰한다. 호흡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특정한 방식으로 조절하지 말고 잠시 있는 그대로의 호흡을 관찰한다. 그런 다음 의도적인 깊은 호흡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호흡 능력치를 점검한다. 깊은 호흡이 어렵다면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자각한다(여기서부터 치유자의 터치가 개입될 수 있다). 특정 부위에서 부드럽게 진동하는 감각, 가려움, 압박감이나 긴장감, 통증 등이 자각될 것이다. 어떤 감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더라도 개의치 말고 판단 없이 자각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감각 즉 현존감이 커지게 된다.


2단계

2단계는 심리적 차원의 자각이다. 먼저 몸의 감각 너머에 있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우울, 슬픔, 깊은 비애, 분노, 기쁨, 행복 등 감정적인 상태를 알아차리되 감정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빠져들어 휩쓸리면 그 감정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대체로 감정적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가 이 요법의 대상이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자각의 주요 대상이 된다(이런 감정들은 신체의 특정 부위와 연결되어 있다). 그다음은 그 감정과 연루된 기억을 자각한다. 그러면 자신의 심리 구조가 서서히 드러나 원인에 대한 자각에 도달하게 된다. 예컨대 어깨에 통증이 있고 그것을 자각하면서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책임감의 원천은 어린 시절 동생을 놀이터에 두고 혼자 집에 갔다가 아버지에 호된 꾸지람을 들었고, 그 후 자신과 관련된 주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처벌받는다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형성된 강박적 태도가 그 원인임을 알게 된다.


3단계

3단계는 존재적 차원의 자각이다. 먼저 부정적인 기억과 상처들 그리고 감정적 격분의 상태가 용해되면서 나타나는 온화하고 평온한 상태를 자각한다. 이것은 자신의 정서적 본바탕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준다. 해는 언제나 구름 너머에서 밝게 빛난다. 단지 구름을 걷어내면 된다. 그다음은 오직 ‘있음’을 자각한다.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기반이다. 이것은 명상의 깊은 체험으로 이끈다. 여기에서 ‘상처받지 않은 자기’가 드러난다.


4단계

4단계는 의식적 차원의 자각이다. ‘있음’에 대한 자각이 견고해지면 자각 자체를 자각한다. 이것은 순수한 자각 즉 대상이 없는 자각 그 자체이다. 의식의 내용물로 조건 지어지거나 제한되지 않는 공성(空性)으로 충만한 의식의 원형이자 자각 그 자체인 참된 자아이다. 여기에서 ‘상처받지 않은 자아’가 아니라 ‘상처받을 수 없는 자아’가 실체를 드러낸다. 본연의 ‘나’는 무한하며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는다.

리밸런싱은 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몸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신체심리영성치료는 몸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음의 치유를 거쳐, 우리의 본래 면목인 청정한 지고의 영성을 둘러싼 장벽을 해체하고, 완전한 내적 자유에 도달하기 위해 전체적 변형을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기원으로 되돌아가, 물질적 몸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지고의 영성이 물질적 몸과 결부되어 마음을 제한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조건화한 마음이 거짓된 자아인 에고(ego)를 만들고 자신과 세계를 프레임(frame)화하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과정의 해체에 대한 실마리도 풀릴 것이다. 자각은 이해와 해체의 전 과정을 이끌 최상의 적임자이며, 나아가 자신의 근원으로 데려다줄 최고의 방편이다.



치유를 위한 인간 성장 단계에 대한 이해


태어나서 최초로 아이가 하는 것은 숨쉬기다. 비록 엉덩이를 얻어맞고 깜짝 놀라 울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아이의 생명을 이 땅에 유지하게끔 해주었다. 원초적 생존은 이제 가능하게 되었다. 아이는 호흡을 통해 처음으로 세계와 교감한다. 호흡은 외부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접점이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홀로 설 수 없는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필요를 누군가로부터 구한다.

다음 단계에서 아이는 자신의 두 다리로 선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다. 배로 밀면서 기어가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이다. 자신의 눈높이로 세상을 마주하며 양육자로부터의 독립이 시작된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움직여 간다. 비로소 아이는 자신을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의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

아이는 외부 세계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아이는 팔을 뻗어 자신의 관심을 충족시킨다. 아이는 관심의 대상을 만진다. 누군가가 쥐여주는 것만 만지던 아이는 이제 자신의 두 다리로 스스로 다가가서 만지고 관계를 맺는다. 아이는 친구를 만들며 좋아하는 어떤 사물을 갖기 시작한다.

조금 더 성장한 아이는 자신의 성(性)과 다른 사람의 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다른 성을 지닌 두 종류의 사람이 이 행성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호기심을 보이지만, 엄격한 부모와 완고한 사회로부터 금기시된다. 아이는 혼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탐구를 시작한다.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 자아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세상과 부딪히며 자신의 깊은 감정을 경험한다. 감정의 수용과 표현 사이에서 사회적 타협과 억압이 이루어지며, 그 정도에 따라 아이의 감정체가 내적으로 모양을 갖춰간다. 복부와 내장은 이러한 들끓는 깊은 감정의 중심에 놓여있다(더불어 감정체와 함께 몸도 모양을 점점 갖춰간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체형으로 확립된다).

그러나 표현하지 말아야 하는 감정들이 있다는 사실과 그 감정들이 표현되었을 때 돌아오는 비난과 처벌이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서는 안 되고 최소한 반쯤은 숨겨야 함을 의미한다. 몰래 뭔가를 먹다가 들킨 아이가 등 뒤로 그것을 감추듯이 심리적으로도 등은 내보이지 말아야 할 모든 것을 숨기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이다.

이제 아이는 사회적 생존을 위해 자신의 표정을 관리해야 한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보여줘야 하고 화난 표정을 감춰야 하고 적개심을 우호적인 것으로 바꿔서 표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가면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삶의 중심은 점점 머리로 옮겨가게 되고 표현과 의사소통은 언어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언어는 사고 작용의 내용이 되고 아이의 지성은 이것을 사용해서 “나는 누구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이 세계의 기원은 무엇인가?” 등의 철학적 탐구로 나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옥죄던 심리적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세계와 분리된 작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타인과의 비교에 기반한 허구의 자존심이 아니라, 나는 이대로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며 전 우주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고귀한 존재로, 세계라는 음악의 중요한 음표로 자신의 위상과 자존감을 세운다.

더 나아가 자신을 제한하던 마음의 경계를 허물어 나와 세계는 본질에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금인형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형체를 잃고 마침내 바다와 하나가 되듯이, 그는 소금인형과도 같던 자신의 에고(ego)를 잃고 오히려 무한한 바다 같은 존재가 된다.



세션의 단계와 기본 가이드


세션은 인간 성장의 단계를 고려하여 10단계로 나뉘며, 각 단계는 신체 부위와 주제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영적 성장의 단계와 맞물려 있다. 각각의 세션은 주제에 맞춰 신체의 특정한 부분에 집중된다. 이때 내담자는 자신의 몸이 다른 부분으로부터 분리된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도 있다. 때때로 물리적이거나 감정적인 이상한 감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저 자각하고 깊이 받아들이면 된다.

세션은 삶을 전체적으로 재조직하기 위한 과정이므로 세션 동안은 평상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 보내야 한다. 자신의 정상적인 생활 속도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고 더 많이 자각하며, 오직 내 몸과 마음의 현존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가장 강렬한 세션은 일반적으로 핵심 세션인 4번과 5번이다. 각각의 세션은 90분 정도가 필요하다. 첫 번째 10단계 세션 과정은 신체 각성의 기본적 과정으로 고려될 수 있다. 대부분 시리즈 세션의 효과는 매우 강력하며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얼마나 효과가 지속되고 작용할 것인지는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태도와 자신의 신체 속으로 침잠해 머물려는 동기와 의지에 달려있다.

요법가(therapist)들의 관찰에 따르면 심리적 과정들을 통합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신체에 할애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단지 심리적 또는 정신적 위기만을 겪었음에도 그것이 신체적 증상으로 종종 나타난다) 비록 사후 효과가 다소 미세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비효과”처럼 우리의 삶 전체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매우 깊은 혁명적 과정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체형마다 가장 중요한 힐링 포인트가 있게 마련인데, 그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치유자의 능력이자 숙련도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비록 유형이 나뉜다고 할지라도 70억 인류는 다 다르므로 개인차를 고려해야 한다. 개인의 역사와 이야기는 존중되어야 하고 공감을 위해 경청 되어야 한다.



세션을 위한 호흡의 이해


호흡은 첫 번째 세션이자 전체 세션 시리즈 동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체적 단계에서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는 삶의 순수 에너지인 ‘생명력’으로 변형된다. 또한, 숨을 들이마시면 내면에 담겨있는 감정이 흘러나온다. 깊은 호흡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감정적인 억압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폭발적인 감정을 만나지 않기 위해 깊은 호흡을 두려워한다. 실제로 깊은 호흡을 유도하는 치료 세션 중에 많은 사람이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호흡은 삶의 질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호흡 패턴의 깊이와 빈도는 우리의 자아 경험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의 정도 역시 결정한다. 호흡은 자각을 더욱더 향상하기 위한 매개로써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므로 내담자의 깊은 호흡이 요구된다.

호흡과 삶에서의 기본적인 신뢰는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가슴으로 웃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면 종종 울음 역시 울지 못할 것이다. 깊은 감정적 경험과 강렬한 삶은 충분한 호흡을 요구한다. 기쁠 때, 분노할 때, 울 때, 그때 우리는 아마도 가장 깊이 호흡할 것이다. 그러나 통제받고, 우울하고, 쳐질 때 우리의 호흡은 다소 얕아진다. 생리적으로도 동화된 산소는 피로를 해소하고 에너지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호흡을 억누르면 몸은 그 기능들과 생동감이 침해받게 되고, 빈약한 생동감으로 살아가게 된다. 경직된 호흡 패턴은 이미 탄생 순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첫 호흡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상상해 보라. 아홉 달 동안 아기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완전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빛이 거의 없고 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따듯한 액체 속에서 떠다녔다. 그리고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탄생하는 순간 아기의 모든 감각은 거대한 충격에 직면한다. 아기는 차가움에, 밝은 빛에, 소음에 그리고 중력에 노출된다. 아기는 바깥세상으로 잡아당겨지고 다리가 들어 올려진 채 엉덩이를 얻어맞게 된다. 자연스럽게 호흡하기 전에 삶의 연결점(돌봄, 사랑)은 차단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첫 번째 호흡은 거대한 충격 속에서 일어났다. 호흡은 폐가 여전히 액체로 채워져 있는 동안에 우리 스스로 행해야만 하는 첫 번째 행동이다.

덧붙여 우리가 경험했던 이러한 탄생 충격은 불안, 혼란, 공포, 거친 돌봄, 삶의 근원인 어머니와의 접촉 결핍을 초래한다. 이것이 고전적인 충격 상황이다. 이것은 우리가 “삶은 힘겨운 투쟁이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해”라는 삶에 대한 태도를 보이게 만든다(예를 들어 어떤 것을 들어 올릴 때 우리는 자동으로 호흡을 멈춘다. 그러나 사실 호흡을 멈춤으로써 육체적 노력은 더욱 가중된다. 우리가 뭔가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시간에 우리는 호흡과 삶의 에너지를 붙잡는다).

만약 호흡이 열려 있고, 이완되어 있다면 자기표현과 자기 선언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삶의 힘, 기쁨 그리고 충만함을 허용한다. 동시에 더 높은 에너지 레벨의 경험과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생명력이 향상하는 것은 영성(靈性)을 위한 토대를 창조한다. 영적 성장은 충만한 자아의 경험과 삶 자체의 경험을 증대한다. 우리가 호흡을 깊이 느끼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영적인 성장은 시작된다.

“기쁨을 경험하면서 호흡하리라. 행복을 경험하면서 호흡하리라.”라는 붓다의 말처럼, 모든 순간 각각의 호흡은 기쁨과 삶의 힘을 빨아들이는 기회가 된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서 몸이 영혼의 물질적 측면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무지한 자에게 몸이란 끝없는 고통의 근원이지만 지혜로운 자에게 몸이란 무한한 기쁨의 원천”이라는 말처럼, 몸을 힘겨운 무게감으로 짓누르는 고통스러운 감옥으로 보지 않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맺는 글


우리의 몸은 단 하나의 세포가 외부의 물질을 수용하면서 합종연횡(合從連橫)한 결과이며 그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것은 우리의 몸이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시스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우리의 몸이 폐쇄적인 시스템이었다면, 그래서 처음부터 결정된 존재였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몸이 열린 시스템이려면 그보다 더 가변적인 어떤 것이 필요하다. 만일 당신이 어떤 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로 한다면 그 결정은 무엇으로 할까? 당신은 마음으로 그것을 결정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마음이 몸보다 훨씬 가변적이며 미세한 까닭이다. 마음이 내린 결정은 몸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처럼 결정하고 오직 햄버거와 콜라만 배불리 먹는다면 몸의 면적은 점점 넓어지고 성인병과의 거리는 차츰 좁혀진다.

세포가 모여 몸을 만들 듯이, 미세한 것들이 모여 조대한 것을 이룬다.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 형체를 이룬다. 그 반대는 불가하다. 인간의 몸은 억겁 전부터 있었다. 몸을 이루는 성분들이 억겁 전부터 있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인간의 몸’이라는 형체는 수백만 년 전에 형성되었지만,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성분들은 어떠한가? 당신의 팔꿈치 뼈 끄트머리 한 부분을 구성하는 수소 원자는 빅뱅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 수소는 한때 별을 이루는 성분이었다가 지금은 운 좋게(수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당신의 일부가 되었지만, 다음 순간 파리의 날개에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천체물리학에서 우리가 별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유기체임과 동시에 10의 27제곱만큼의 원자로 구성된 원자 덩어리이다(10,000,000,000,000,000,000,000,000,000개라고 표기하면 훨씬 더 실감이 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라는 현실의 기초가 원자다. 그 원자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고 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구성된다. 그리고 중성자와 양성자는 쿼크로 구성된다. 현실 세계의 기반인 미시 세계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세계다. 즉, 불확정성의 세계이고 가변성의 극치다. 이것이 우리 몸의 바탕을 이룬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미세한 마음은 가변성의 원천이리라. 마음이 물질을 통해 구체화하고 우리가 아는 현상의 형태를 띤 마음이 된다. 보통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그 마음은 마음의 내용물에 불과하다. 마음의 원천은 비어 있으며 무한하다. 마음의 내용물들이 무제한으로 거기에 담긴다. 그러고도 무한한 용량이 남는다.

나의 본질이 이 바탕 마음이기에 내 몸의 주체이고 내 마음의 주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몸과 마음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변화는 단지 물리적 현상일 뿐이며, 마음도 이 현상의 일부이고 그게 다라면, 우리는 지독한 운명론자이고 삶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이 자명하다.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너에게도 마음이 있고 그에게도 마음이 있고 아메바에게도 마음이 있다. 그럼 우주에는 마음이 없을까? 최소한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의 일부인 내게 마음이 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우주의 마음은 내 마음을 포함할 것이다. 내 마음을 포함한다면 너의 마음도 그의 마음도 포함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마음은 다양한 마음들의 보편적 바탕이 될 것이다.

이렇게도 제각각 달라 보이는 인류가 실상은 하나의 조상을 공유하듯이, 존재의 다양한 마음도 하나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불이(不二)의 세계, 불이(不二)의 존재.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랑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이고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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