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은 왜 '최고'가 되었나?
‘다른’은 왜 ‘최고’가 되었나?
빠라(para)는 ‘다른’을 뜻하는 형용사입니다. 형용사를 그대로 명사로 자주 사용하는 산스끄리뜨 특성에 따라 ‘다른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가령 요가수뜨라 3장에 나오는 “관념의 [총제로] 타인의 마음을 안다(pratyayasya para citta jñānam).”는 문장에서 para는 타인 즉, 다른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산스끄리뜨 문법 용어에도 빠라스마이빠다(parasmaipada)라는 게 있답니다. 여기에도 빠라가 보이지요? 일종의 능동태로 ‘다른 사람을 위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대로 옮겨서 위타태라고도 한답니다.
그런데 이 빠라가 말입니다. 최고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우선 ‘다른’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라는 뜻으로 ‘저 너머, 저 건너편’으로 의미가 확장됩니다. 불교 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 줄여서 반야심경이라고 하지요. 여기서 바라밀다의 원어는 pāramitā인데, 인수분해 하면 ‘저 건너편으로(pāram) 감(itā)’이 됩니다. 그래서 도피안(到彼岸) 즉, ‘저 언덕에 이름’ 또는 ‘저 언덕으로 건너감’으로 번역했지요. 우리나라 절 이름에도 자주 사용되지요. 도피안사.
저 너머는 범접할 수 없는 곳이지요. 특히 히말라야 고봉이 병풍처럼 둘러싼 인도에서는 말이지요.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등산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답니다. 등산이라는 말은 아예 있지도 않았지요.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선비들이 산에 유람 가는 걸 산에 든다는 의미로 입산(入山)이라 했지요. 산에 들어 적당한 장소에서 유유자적이지 낑낑거리며 꼭대기까지 오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아직까지 저의 지론도 이러합니다. “산은 보는 것이지 오르는 것이 아니다.”
됐고, 저 너머는 범접할 수 없기에 최고가 됩니다. 라틴어에서도 para는 산스끄리뜨 para와 비슷한 용도로 쓰입니다. 유명한 미국의 영화사 있지요? 그, 왜 설산 꼭대기가 그려진 로고(logo), 기억 안 나시나요? 옛날 텔레비전에서 토요 명화 하던 시절에 말입니다. 파라마운트사(paramount pictures)라고. 십계, 대부, 탑건, 인디아나 존스, 포레스트 검프, 인터스텔라 등의 영화를 제작했지요. paramount. 여기에도 para가 보이지요? 꼭대기 즉, 최고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곳(para)에서 활강(gliding)하지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에도 para가 나오지요. 물론 여기서는 ‘다른’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원래 ‘남의 잔치에 가서 입담 널어놓으며 얻어먹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parasitus’에서 온 말이지요. 문자 그대로 풀자면 다른(para) 장소(situs)를 뜻합니다. 영어 parasite도 문자적으론 다른(para) 장소(site)지요. “남의 집에서 얻어먹는 녀석, 에잇 기생충 같은 녀석!” 뭐, 이렇게 된 거지요.
또한 ‘다른’은 보통 사람들과 같지 않으므로 ‘탁월한’, ‘뛰어난’, ‘최고의’ 등과 같은 뜻으로 의미가 확장됩니다. 우리말에도 “걔는 달라!” “남달라!”라는 표현법이 있지요? 단순히 우리랑 다르다는 게 아니라 아주 뛰어나다는 감탄사지요. 앞에서 얘기한 섞여 있는 물과 우유를 구별하는 최고의 백조 빠라마항사(paramahaṁsa)를 기억하시나요? 여기서 드디어 para는 최고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