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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프로 Feb 19. 2021

코로나 베이비

쪼꼬, 넌 계획이 다 있었구나

쪼꼬는 코로나의 한 복판에 우리에게 와서 여전히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시기에 세상에 나왔다. 코로나와 그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두에게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도 한 줄기 빛은 있기 마련이라고, 코로나 시대에 아이를 갖고 또 낳는 데에는 생각지 못한 장점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재택근무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만 있다 보니 반강제적으로 절대 안정을 취하게 된다는 점. 병원에 방문객이 제한되어 있어서 2박 3일간 나, 앤써니, 그리고 쪼꼬 세 식구가 조용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 등이다.


이처럼 이번에 쪼꼬의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신의 한 수가 된 사건들이 여럿 있었다.


    1. 코로나로 인한 원격 재택근무

    2. 드라마 산후조리원

    3. 3주 일찍 방 뺀 쪼꼬

    4. 너무 이르지 않은 나이



1. 코로나로 인한 원격 재택근무


나의 회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3월부터 2021년 8월까지 100%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앤써니의 회사 역시 3월부터 잠정적 무기한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장장 1년 6개월 동안의 재택근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해서 재택근무를 하라고 해도 굳이 왕복 한 시간씩 출근을 하던 나이지만, 임신한 상태에선 감사할 일이었다.


1)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힘이 덜 든다. 임신을 하면 여러 신체 변화가 동반되는데 정말이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임신 초기엔 입덧과 함께 몸살 기운, 두통, 복부 통증, 변비 등이 동반된다. 나는 입덧이 심한 편은 아녔지만 임신기간 내내 없어지지 않았다는 게 함정ㅠ 임신이 중기에서 말기로 접어들면 불러오는 배 때문에 몸은 무거워지고, 소화는 안되고, 허리와 골반은 아프고,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한다. 이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것은 꽤 큰 스트레스였을 것 같은데, 재택근무 덕분에 임신 전 기간 동안 느지막이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침대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2) 임부복을 살 필요가 없다.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기 때문에 임신 말기 전까지 임부복을 살 필요가 없었다.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와 박시한 티셔츠, 잠옷 원피스면 충분했다. 화상회의가 많긴 했지만 어깨 아래는 비추지 않기 때문에 잠옷 바람으로 회의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아예 카메라를 끄고 회의에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했고... ㅎ


3)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다. 재택근무이기 때문에 굳이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고, 원하는 곳 어디서든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약 10개월 동안 애틀랜타의 시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임금 수준은 유지하면서 한 달에 300만 원이라는 샌프란시스코의 살인적인 월세를 아낄 수 있고, 동시에 출산과 산후조리, 육아에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선택이었다. 출산 후, 주변 도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 이게 얼마나 잘 한 결정이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2. 드라마 산후조리원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 <산후조리원> 이 방영된 타이밍은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나를 위해 만들었나 싶을 만큼 (물론 아니지만 그 정도로 최적의 타이밍이었다는 뜻!). 예정일을 두 달 앞두고 본격적으로 출산과 산후조리, 쪼꼬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을 때 보게 되었는데, 출산과 산후조리 과정을 어찌나 현.실.적.으.로. 그려주었던지! 미처 예상치 못하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hgMPdcQpAI


산후조리원을 보지 않고 출산을 했더라면 몰라서 충격받고! 좌절하고! 우울했을! 것 같은 부분들:


1) '실전' 출산의 5단계. 정말 미화 1도 없는 찐 출산과정...! 출산 클래스에서 이미 설명을 들었기에 어느 정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 장면을 생생하게 보는 것은 더 확실한 이해를 도왔다. 물론 모든 사람의 경험이 조금씩 다르고, 내 경험도 드라마와 똑같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나는 무통주사를 맞았더니 제4기. 대환장파티기 (힘주기)가 전혀 힘들지 않았고 수월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정말 현실적인 묘사였고, 나의 기대치 조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2) 출산 후에도 배는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충격! 진짜로 몰랐다 나는ㅠㅠ 출산 후에 바로 들어가는 줄 알았지...


3) 모유수유는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아름답지 않다. 정말 모유수유에 비하면 출산이 훨~~ 쉬웠다...

 

4) 분유를 먹이느냐 모유를 먹이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분유가 독약도 아닌데 사정이 있으면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요즘에 소들도 방목해서 기르잖아요. 스트레스 안 받아 행복한 젖 짜려고요. 근데 여기 있는 엄마들 봐 봐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쉬지도 못하고 있잖아요. 잠도 못 자고 여기 갇혀서 스트레스받으면서 짠 엄마 젖이 자유롭게 뛰놀며 행복하게 산 소젖보다 진짜 좋을까요?”

드라마에서는 모유파 엄마들과 분유파 엄마들의 전쟁(?)을 그리면서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엄지원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드라마에서 모유 또는 분유를 주는 것은 엄마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고, 강요되거나 죄책감 가질 일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 덕분에 나도 선택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내 상황을 고려하여 모유수유를 '선택'했고, 후에 사정이 생겨 분유를 주게 되어도 너무 속상해하진 않으려 한다.


3. 3주 일찍 방 뺀 쪼꼬


쪼꼬가 예정일보다 3주나 일찍 세상에 나왔다. 일을 미리 하지 않고 막판에 하는 성격인 나는 출산 가방도 70%만 싸 두고 산후 준비도 거의 안된 상태여서 적잖이 당황을 했다. 헌데 돌아보니 쪼꼬는 다 계획이 있었다. 


2021년 1월 11일에 출산 예정이었던 나를 위해 12월 19일부터 1월 30일까지 한국에서 친정 부모님과 동생이 왔다. 잠시 시댁에서 지내고 있는 나는 임신 마지막 주와 산후 2주를 친정 부모님이 계신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보낸 다음 (친정 식구들의 2주 자가격리가 끝난 후부터) 시댁으로 다시 들어갈 계획이었다. 헌데 쪼꼬가 3주, 정확히는 2주 반이나 일찍 태어난 덕분에 계획과 달리 산후 1달을 친정 식구들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1) 산후조리는 친정에서. 친정 식구들과 산후 1달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출산 후에는 몸과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가 되더라. 그리고 약해진 몸이 최소한 제 구실을 할 정도로 회복이 되고, 롤러코스터 타듯 요동치는 감정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없어진 정신이 좀 돌아오려면 2주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둔한 편이라 감정 기복이 별로 없고 몸이 불편한 것도 웬만하면 잘 참아내는 나라서 산후조리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첫 2주 사이에 이미 10번도 넘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쪼꼬가 모유를 거부해서 울고, 나보다 할머니 품을 더 좋아해서 울고,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울고, 쪼꼬의 숨소리가 거칠어 병원에 가야 한다며 울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에서 나를 바닥까지 보일 수 있고, 투정 부릴 수도 있고,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행동할 수 있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 나의 감정 기복을 받아주랴, 산후 회복을 도와주랴, 집안일과 신생아 돌봄을 도와주랴, 엄마 아빠가 꼬박 한 달간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는데, 덕분에 나는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에 시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앤써니의 부모님도 내게 정말 잘해주시고, 우리가 최대한 편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우리 엄마 아빠에게 하듯 긴장의 끈을 놓고 행동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상황이 허락한다면 산후조리는 친정에서 하라고 예비맘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2)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눈 맞춤. 신생아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큰다. 그래서 생후 2주와 생후 4주의 아기는 눈에 띄게 다르더라. 쪼꼬의 경우 2.5kg로 작게 태어나서 한 달 후 3.9kg가 되었다. 쪼꼬가 태어나기 전에 사두었지만 너무 커서 입힐 수 없던 옷들이 금세 몸에 맞는 것을 보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눈 맞춤이 제일 신기했는데, 초점 없이 요리조리 사시처럼 움직이던 눈동자들이 어느 순간 서서히 같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초점이 맞아졌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보통 생후 2개월쯤 되면 사물을 알아볼 수 있게 되고 눈 맞춤이 가능해진다고 하는데, 한 달쯤 되니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눈 맞춤'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더라. 나는 엄마 아빠가 아이와 눈 맞춤을 하고 한국에 돌아가실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좋았다.  


4. 너무 이르지 않은 나이


이번에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는 동안 주변에서 이미 아이를 낳은 친구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고, 내가 친구들 중에서 이 일을 제일 먼저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라고 느꼈다.


 임신과 출산 소식을 알게  선배 (mom)들은 정말 .... 응원과 공감, 위로를 보내주었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과 팁들도 흔쾌히 공유해주었다. 먼저 연락을  와서  상태를 체크해주는 친구도 있었고,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는  멘탈이 걱정스러워서 바로 화상전화를 걸어  친구도 있었으며,  하소연을 듣다가 같이 울어준 친구, 본인이 육아와 씨름하고 있을  도움이  책을 카드와 함께 보내준 친구, 모유수유를 포기할까 고민하는 내게 본인의 경험담과 함께 계속 응원을 보내준 친구, 모유촉진 쿠키를 보내준 친구 있었다.


지금 충분히 너무 잘하고 있어!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
그러니 절대 죄책감 갖지 말고 엄마에게 행복한 선택을 해.
무슨 선택을 하든 아기는 잘 클 거야.
언제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면 전화해!


응원을 보내준 친구들 중에는 원래 가까웠던 친구들도 있었고, 이 일을 계기로 친해진 친구들도 있다. 처음엔 다들 왜 이리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까 의아(?)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보니 이해가 됐고 -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힘듦이기에 앞으로 같은 일을 겪을 사람에 대한 공감, 연민, 응원의 마음 - 나 역시도 곧 출산을 앞둔 친구들에게 똑같이 하게 되더라. 이러한 서포트가 없었다면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겪어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또래에 비해 아기를 일찍 낳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느낀다 ㅎㅎ



쪼꼬야,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이렇게 돌아보니 쪼꼬가 여러모로 타이밍을 잘 맞추어 태어난 것 같다. 덕분에 비교적 수월할 수 있었던 임신과 출산. 과연 육아도 계속해서 수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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