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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프로 Mar 15. 2023

에어비앤비로 돌아오다

1년 4개월 자발적 방황의 끝

매우 오랜만에 글을 쓴다.


2017년, 직장생활 8년 차에 번아웃과 함께 뒤늦은 커리어 사춘기를 겪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다니고 있던 에어비앤비(Airbnb)에서 퇴사했다. 그 후 1년 4개월 동안은 번아웃과 싸우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커리어와 1도 관련이 없고 해 봐야 나중에 쓸 데도 없는 쓸모없는 일들을 하기도 하면서. 그러는 와중에 내 지난 커리어를 되돌아보고, 방향을 재설정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게 1년 4개월의 자발적 백수 시기를 보내고 2019년 4월, 나는 에어비앤비에 재입사하였다. 이번에는 한국 지사가 아닌 샌프란시스코 본사였지만 내가 처음 에어비앤비를 퇴사할 때 그렸던 그림은 전혀 아니었다. 퇴사 후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을 때, 내 커리어를 돌아보고 방향을 재설성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나는 자발적 방황의 끝이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 될 거라 기대했다. 새로운 커리어 정체성을 가지고, 실리콘 밸리에 있는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경험할 수 있겠구나 하는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다시 에어비앤비에 돌아와 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내 직업 (Profession) 완성하기 

자발적 방황의 시간 동안 내 커리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그 결과 IKIGAI(이키가이)로 내 커리어의 모습을 찾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돈이 되는 것,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 이 네 가지의 교집합에서 내 이키가이를 찾는 것을 내 커리어의 목표로 삼았다.

나는 이키가이를 찾는 방법으로 직업(profession)을 미션(mission)과 일치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2-3년) 지금 하고 있는 직업에 집중해서 전문성을 높은 수준으로 갈고닦고 싶다. 그러는 동안 내 삶을 관통하는 미션을 찾고 싶다. 그리고 3년쯤 후엔 그 둘의 접점에서 나의 이키가이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후에는 내 이키가이를 꾸준히 살아나가는 것이 목표다.
출처 - 드로우앤드류


1) 내 직업(Profession) 정의하기


Profession  = What you are GOOD AT x What you can be PAID FOR
직업 = 내가 잘하는 것 x 수입이 되는 것

 

애초에 내 커리어 사춘기의 발단부터가 본인을 '마케터', '기획자' 등 한 단어로 소개하는 주변 친구 및 지인들과 달리 나는 왜 내 직업을 정의하는 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회의였다. 그래서 내 직업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내가 커리어를 계속 쌓고 완성해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키가이 벤다이어그램이 정의하는 직업은 내가 잘하는 것수입이 되는 것교집합이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잘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한 다음, 그중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제공해도 될 만한 능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이미 직장생활을 8년이나 한 상태라 내가 어떤 능력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협업/매니지먼트: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어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팀 매니지먼트, 크로스펑셔널(cross-functional)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문제해결: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는 일 (전략)

기획/설계: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방법을 설계하는 일 (기획)

경험디자인: 사람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 (고객 경험 디자인)

최적화: 경험 또는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일 (오퍼레이션)

설명: 복잡하고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정돈하고 구성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일 (교육, 고객 온보딩)

서비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만족시키는 일 (고객 서비스)

번역: 한 언어로 된 정보와 생각을 가장 적절한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 (번역)

글로벌 시장: 다양한 나라/시장에서 살아보고, 일해봄으로써 쌓인 글로벌 시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

... 등등


이 리스트를 바탕으로 키워드를 추려보고 서로 연결해 보면서 나는 내가 완성하고 싶은 직업을 이렇게 정의했다.


I design and optimize technology-empowered user experience at scale by leading a cross-functional team
CFT를 이끌어 기술 기반의 글로벌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고 최적화하는 IT 기획자

 

2. 내 직업(Profession) 개발하기


새롭게 정의한 내 직업은 아직 나 혼자만의 정의였고, 이를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게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나는 스스로를 기획자라 정의하지만 업계에서 공식적으로 기획자 타이틀이 달고 일을 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업계와 사람들이 인정하는 기획자가 되려면 우선 단기적으로 (2-3년) 내게 CFT를 이끌어 기술 기반의 글로벌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고 최적화하는 IT 기획자로서의 포트폴리오를 쌓게 해 줄 수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해야 했다.


글로벌 규모의 고객 경험 디자인 및 최적화 기회

글로벌 규모의 Cross-functional 협업 기회

기획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

기획자로서 공식적인 타이틀을 달고 일할 수 있는 기회


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회사. 에어비앤비는 이런 기회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회사 중 하나였다.


2. 테크 회사 (Tech) vs 테크 기반의 회사 (Tech-enabled)

퇴사 후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회사에서 일해볼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있었다. 테크 산업의 중심지이자 크고 작은 테크 회사들의 성지인 실리콘밸리인데, 얼마나 많은 기회와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질까.


하지만 막상 구직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끌리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았다. 처음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되었다. 실리콘밸리에는 테크 회사(Tech company)테크 기반의 회사(Tech-enabled company)가 존재한다는 것을.


테크 회사(Tech):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플랫폼을 만든다. 기술 자체가 제품이다. 예) 구글, 페이스북

테크 기반의 회사(Tech-enabled): 기술을 이용해 기존 산업을 혁신한다. 기술이 제품이 아닌 수단이다. 예) 에어비앤비 (기술 기반의 여행업), 우버 (기술 기반의 운송업)

*이는 내 개인적인 정의이고, 업계에서 통용되는 정의는 아닐 수 있다.


텤맹(tech-맹)에 가깝고, 편리하고 빠른 것보다는 불편해도 아날로그 한 것을 선호하는 나는, 제품으로서의 테크보다는 테크로 무엇을 하는지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테크 회사(Tech)에는 대부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테크 기반 회사(Tech-enabled)들, 그중에서도 기술을 이용해 효율성보다는 더 질 높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소수의 회사들에만 관심이 갔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호텔&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관광&도시마케팅에 관심이 있었던 내가 에어비앤비에 불시착했던 것도 에어비앤비가 '테크 회사'가 아니라 '테크를 기반으로 한 여행 회사(technology-enabled hospitality company)'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가 진심으로 관심이 가고 일해보고 싶은 브랜드를 추려보니 에어비앤비가 여전히 상위권에 있었다.


에어비앤비로의 재입사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로 -- (1) 단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2) 아직은 에어비앤비보다 더 관심이 가고 일해보고 싶은 브랜드가 많지 않아서 -- 한번 더 에어비앤비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 매니저의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고, 마침 그의 팀에 자리가 있어서 이력서를 내고 정식 인터뷰를 본 뒤 2019년 3월, 한국지사에서 퇴사한 지 1년 4개월 만에 샌프란시스코 본사로 재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주가 어느새 재입사한지 4주년이 되는 주였다.


시간이 참 빠르다. 에어비앤비로 돌아온 후의 내 여정— 내가 재입사 시 설정했던 방향대로 잘 가고 있는지, 그 사이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 은 앞으로 조금씩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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