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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Sep 24. 2021

모서리가 엣지있으시네요

#14. 자글자글

나는 문예창작 전공이다. 독서 소녀였던 것도 아니고  쓰는  즐기지도 않았지만 성적에 맞춰 대학을 고르던  문예창작 앞에 '미디어' 붙인 과를 발견하고 전공으로 택하게 되었다. 지금은 전공 간의 결합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시만 해도 미디어 문예창작이라는 이름이 어찌나 생소했는지 어디 가서  때마다 '?'라는 반응에 꼭 두 번씩 말해야 했다. 예전 유희열이 DJ 맡았던 라디오천국에서 특이한 전공 말하기 코너가 열렸을  문자로  이름을 적어 보냈더니 발음마저 어렵다는 코멘트도 받았었다.  과를 지원한 나조차도 뭘 배우는 곳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여러모로 속이 시끄러워 바깥일은 무시하고 끝없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시기였고 공부도 손을 놓았다. 공부는 하기 싫었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대충 보고 온 수능 성적표를 내밀며 대학도 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엄마는 다급하게 언니를 시켜 점수 별 갈 수 있는 대학이 적힌 표를 사 오게 한 뒤 머리를 맞대고 쓸 곳을 정해주었다. 등 떠밀려 들어간 대학에 유일하게 나의 결정이 들어간 건 전공뿐이었다. 꿈은 없었지만 일생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직업이라는 건 알았고, 가장 좋아하는 걸 일로 삼아야겠다 생각했었다. 좋아하는 걸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영화 하나밖에 없었고 그럼 영화감독이 되야겠다 싶었다. 보통 예체능 계열을 꿈꾸는 학생들을 보면 열정이 대단히 뜨겁다. 그 일이 운명처럼 다가와 가슴이 뛰었다던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싹을 보인 에피소드가 있다던가. 나의 장래희망은 소거법으로 생겨났으니 당연히 추진력도 없고 뜨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뜬구름 같다 해도 하나뿐인 소중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미디어 문예창작과를 택한 것도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은 다음 그중에서 가장 영화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과를 택한 거였다. 미래를 그리며 무언가를 선택하기엔 경험이 미천했던 거 같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들어간 대학의 실체는 문예창작의 인기가 떨어져 과가 사라질 지경이 되자 다급하게 미디어를 붙이고 학생들에게 호객행위하는 약간 짠한 곳이었다. 들어온 사람들도 목적이  다르고 오는 교수님들도 그랬다. 크게  부류로 나뉘었는데 미디어를 보고 들어온 학생과 관련 전공 교수님들, 글쓰기 전형으로 들어온  문창과 지망생들과 교수님들, 그리고 딱히 전공이 중요하지 않은 인문계 지망생들과 그냥 교수인 교수님들이었다. 시집을 폼으로 드는  아니라 정말로 읽는 동기나,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선배가 있었고  중간고사에 즉석에서 시를 쓰라는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나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글을 쓰는  완전 남일이었다. 글을 써본 경험도 없을뿐더러 글은 무조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쓰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관심은 글보다는 그다음 결과물이었고 관심 있는 것도 시나리오뿐이었다. 시나리오는 소설이나 시와 달리 필력이 조금 딸려도 가능할 거란 어리숙한 계산이 있었기에 글쓰기가 서툴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문예창작과는  쓰는 법을 가르친다기보다는 창작을 장려하는 곳이었다. 모든 콘텐츠의 기본은 글이고 어떤 결과물에든 반드시 글이 필요했다. 과에서는 콘텐츠의 종류마다 목적과 상황이 달라진다는 걸 이해하고 그에 맞는 글을 창작하는 법을 가르쳤다. 미디어 시장이 넓어지고 있던 터라 전천후 인력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전부 휴대폰으로 보는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가끔 드라마보다도  드라마 같은 영화를 보면 굳이  스크린 앞에 사람들을 집중시켜야만 했을까? 싶고 반대로 1분을 놓치면 이해가 가지 않는 드라마의 채널이 훅훅 돌아가는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본격적으로 창작이 시작된 3학년부터는 단편소설, 수필, 방송 대본, 그림 동화  되는대로 썼다. 리포트도 있고 시험도 봐야 했기에 눈앞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듯이 해나갈 뿐이었다. 얕고 넓었지만 재미있었다.  써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졸업할 때까지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나는 논문조차도 되는대로 썼었다.


정말로 글 쓰는 일에 흥미를 느낀 건 대학을 졸업하고 인생이 꼬일 대로 꼬였단 느낌이 든 어느 날이었다. 마음속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함과 원망이 가득 차 매일같이 부글거렸고 딱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았다. 남한테 퍼붓는 것도 지겨워질 무렵 맺힌 한을 글로 써 내려가자 속 안의 감정이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경험은 내가 진심으로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글 쓰는 일이 나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은 아니지만 써야만 했던 상황이 쌓이자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글을 잘 못쓴다.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꾸준하지 못하고, 맘에 없는 글은 거짓말할 때 표정관리가 안 되는 것처럼 턱턱 막힌다. 가끔은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어 주제를 정하고 앉아보는 때도 있다. 몇 시간을 앉아도 아무런 내용이 없는 걸 보며 아 나는 억지로 글을 쓸 수는 없구나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동요가 심한 날은 단숨에 글이 써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글쓰기로 프로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치유 의식이고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 전과 후로 나누면 글을 쓰고   확실히 세상이 넓어진 느낌이 든다. 모서리 있는 것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면 진품명품처럼 가품을 알아보게 되었다 믿는다는 거다. (AKA 마음에도 없는 소리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진심으로 분노하거나 이루 말할  없는 서글픔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마음 한쪽에 뾰족한 모서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서리에서 나온다. 모서리가 살을 뚫고 나올  얼마나 아팠을지를 생각하면, 가시 없는척하고 살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를 떠올려보면, 남을 찌르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모습이 뭔가 감동적이다. 그러니 부디 모난 사람이라고 타박하며 모서리를 깎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게 좋게 지내는  평화로울  있겠지만 멋이 없다. 누군가는 뾰족한  그저 미성숙함을 드러낼 뿐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게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자연물 중에 완벽한 원은 없다. 깎아 놓은  맨질맨질한 동그라미는 가공물이다. 모서리가 촘촘하게 나면 성게나 지압용 볼처럼 동그란 원이 된다. 그냥 동그란 것과 모서리로 겨우 둥그레진 원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예전에 학교에서 만난 오빠 중에 정말 두드러지게 모서리가 뾰족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모서리의 크기만큼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방을 찌른다는 지각조차 없는  약간 짜증 났다.  오빠는 자기가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마 너무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일 거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가끔  오빠 생각이 난다. 기억에 남는  그런 것들이다. 그때 글을 썼더라면 말해줬을 텐데 싶다. 모서리가  엣지 있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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