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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마리곰 May 08. 2020

벨기에에서 온 토마스, 김부성 아버지를 찾습니다.

1975년생 벨기에인 김부성, 제주도 아버지 - 홀트

 다큐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조감독이 박기순 씨와 인터뷰를 하기로 했고 나도 촬영을 돕기로 했다. 독일 입양인 박기순 씨의 영상을 찍던 그 덥던 날, 벨기에에서 왔다는  남자가 우리를 만나겠다고 찾아왔다.  2019년 여름은 정말 더웠는데 그는 긴팔 흰 셔츠를 입고 단정하게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영상에 에어컨 소리가 녹음되면 안 된다고 에어컨도 끄고 진행된 박기순 씨와의 인터뷰가 먼저 진행되었고 두 시간 넘게  숨도 조용히 쉬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그와의 인터뷰가 겨우 시작되었다. 하찮은 나의 영어 실력은 벨기에에서 온 그의 영어 발음을 온전히  알아듣기 어려웠다. 때 마침 영어를 잘하는 김유경 씨도 와서 인터뷰를 순조롭게 진행했다. 

 "마이 코리안 네임 이스 보순 킴.  보순."  저 남자의 이름이 김보순이라고? 에이 이름이 좀 이상한데? 나는 그에게 입양서류들을 볼 수 있겠냐고 물었고 그는 드롭박스 앱으로 자신의 모든 서류를 공유해 주었다. 내 남동생과 동갑인 이 낯선 남자가 만난 지 한나절도 안된 낯선 한국인 아줌마에게 자신의 아기 때 사진부터 입양 전반에 걸친 모든 서류를 보여준다는 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겠지. 마음이 괜히 찡했다. 그는 서류가 꽤 많은 편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휴대폰으로 흘끔흘끔 서류의 깨알 같은 글씨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기 김부성. 1975년 6월 13일 생이고 1975년 7월 7일에 홀트에 입양 의뢰되었다.

 인터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그는 고아원에서 자란 적은 없고 갓난아기 때 아버지가 홀트에 입양을 의뢰하였다.  서울의 어느 가정에서 포스트 마더( 입양 보낼 아기를 임시로 가정에서 돌봐주시는 분) 의해 돌봄 받다가 벨기에로 입양되었다. 양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잘 교육받으며 자랐다. 75년생인 그는 이번 한국 방문이 아기 때 벨기에로 떠난 후 첫 방문이다. 그는 이제 연세가 드셨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홀트에 공식적으로 친부모 찾기를 신청했으나 홀트에서 아버지께 편지를 보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홀트에서는 아버지의 이름도 알고 옛 주소도 아는데 그의 자식인 자신에게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단다. 법이 그렇단다. 그는 매우 답답해했다. 아기 때 이별하고 45세가 된 아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잘 성장했고 친아버지를 찾아 만나보겠다고 한국을 찾아온 것이다.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셨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고. 정말 돌아가시기 전에 친부모를 꼭 한번 보고 싶다고. 


 서류를 보던 나는 그의 이름이 킴보순이 아니라 김부성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의 서류 모든 곳에 한글로도 한자로도 한국식 영어 표기로도 모두 김부성이라고 표기되어 있건만 벨기에에서 자란 그는 자신의 이름을 킴보순으로 발음하고 있었다. 그래. 이 사람은 한국어를 모르는구나. 내가 벨기에어를 하나도 모르는 것처럼.

"NO!  유얼 네임 이스 낫 킴보순. 유얼 네임 이스 김 부 성"

그의 딱딱한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나를 따라 말했다. 김..성.

..성.

자기 이름이 김보순이라고 알던 남자의 호적등본

이어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김해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이 김해라고? 그는 전에 만난 한국인 누군가가 자신의 서류를 보고 고향을 알려 주었다고 말했다. 나는 서류 어디에 김해가 쓰여 있는지를 찾고 또 찾았다. 아! 호적등본에 김해 김 씨라고 쓰여 있었다.  김해. 그건 고향이 아니고 성씨의 본적일 뿐이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곧 서류에서 한 가지 한글  단서를 더 발견하였다. From 제주도. 그의 서류 귀퉁이에 한글로 제주도가 쓰여있었다.

Plsced the Baby in F.home from 제주도

나는  흥분해서 더듬더듬 안 되는 영어로 소리를 질렀다. "No, not 김해. 잇츠 낫 유얼 홈타운. 김해 이즈 저스트 유얼 앤시스털즈 홈타운. 유 알 낫 본 인 김해. 유 알 프롬 제주도! 제주도 두 유 노우 제주 아일랜드? 뷰티풀 아일랜드. 유 알 프롬 제주도."

 더듬더듬 말하는 한국인 아줌마에게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된 그가 처음으로 살짝 웃었다. 인터뷰와 촬영을 하던 사람들이 서류를 확인해보고 이리 저리 추측을 해보았다.


 45세인 성인 남자가  자신의 한국이름을 발음하는 법 고향이 어디인지 알게 된 날이었다. 그는 진지하게 이름을 따라 말했고 제주도라는  글자를 일러 준 것만으로도  웃었다. 다음에는 제주도에 가봐야 겠다며. 나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며칠 후 마포에 있는 홀트에서였다. 다른 두 명의 입양인과 그의 벨기에 여자 친구가 동행했다.

마포구 홀트 트레블 센터

 그는 그 며칠 사이 입양 당시 홀트에서 일하고 계시던 부청하 선생님을 만났다고 한다. 그분은 현재 서울에서 보육원을 운영하고 계시고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친절히 만나주시고 때론 숙박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의 입양서류에 후견인으로 싸인하셨던 부청하 선생님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홀트에 직접 가서  얘기해 보라고 한 모양이었다.  어릴 때 비록 아버지의 의뢰로 홀트에 맡겨지고 해외로 입양 갔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부모를 찾아왔다면 홀트가 알고 있는 부모님의 이름이나 주소 같은 정보를 자식에게 줘야 하지 않을까. 나도 막연하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홀트의 직원들은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매우 난처해했으며 아버지의 이름과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다. 부청하 선생님은 입양 당시 홀트 서류상 이 아이의 후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분의 의견도 이제와 다 큰 성인에게 아버지 이름 좀 알려주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 라고 생각하셔서 조언을 구하러 온 김부성 씨에게  홀트 사무실로 가면 알려줄 것이다 거기엔 정보가 남아있을 것이다라며 가보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날  부청하 선생님과 홀트의 담당자분이 통화하고 언성을 높이는 일까지 있었다.  


"현재 법이 그래요. 선생님. 절대 알려줄 수 없어요. 저희도 중간에서 매우 곤란해요. 입양인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함께 간 다른 두 명의 입양인들은 흥분했다. 특히 나이가 더 젊은 한 남자 입양인은 자신은 기차에 버려져서 아예 부모를 찾을 수도 없는데 이 사람은 부모에 대한 정보가 있는데 왜 안 주냐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담당자는 홀트에서는 입양인이 부모를 찾을 경우 편지로 자녀가 당신을 찾고 있다고 연락을 세 번 시도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주소가 변경되어 연락이 안 될 수도 있고 가끔은 그런 편지로 인해 잘 살고 있는 현재의 가정에 불화가 생기기도 해서 사실은 편지를 보내는 것도 조심스럽다고 했다.  


 김부성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차분했다.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차분했다. 그는 사실을 찬찬히 확인하고 홀트 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며 예전과 똑같은 서류를 다시 받았다. 이번 서류에는 제주도라는 글자마저 지워진 채로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던 2019년 더운 여름 어느 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마음에도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호적등본도 있는데 부모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게 이상했다. 컴퓨터로 툭 치면 다 연결되는 세상에.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해외입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호적등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짜 호적이다. 단지 해외로 입양 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서류. 이 아이는 부모가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을 위해 고아 인척 증명하기 위해 조작하여 만들어진 서류이다.    해외입양기관에서는 친생부모가 없는 고아만을 입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고아가 아닌 아기들도 마치 고아 인척 서류를 만들어서 입양을 보낸 것이다. 75년생 김부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후로도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해외로 떠났다.


그 거짓 호적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 걸까.

 홀트? 마포구청? 대한민국 정부? 친생부모? 해외입양기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성인이되어 되돌아온 그들이 묻고있다. 나의 친생부모는 누구며 어디에 있느냐고.

 홀트같은 기관이 가지고 있는 부모에 대한 정보의 주인은 누구일까. 부모의 정보에 대한 주인이 정말 기관인것이 맞을까?


 부모 없는 아이에게  외국에서라도 부모와 가정을 찾아주는 일은 얼마나 따뜻하고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대한민국 해외입양의 역사에는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쳐버린 많은 문제점들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찬찬히 글을 계속 써보려고 한다.

 신사다운 매너가 몸에 배어있는 점잖은 성격의 김부성 그 친생 아버지를 찾고 있다. 그가 아버지를 닮았다면 아버지의 모습도 이렇지 않았을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잘 성장할 아기를 떠나보낸 친생아버지도 평생 그가 궁금하고 보고 싶지는 않았을까.

 부성씨는 제주도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됨.  75년 6월 13일생. 7월 7일 서울 홀트에 맡겨졌다. 그가 친생아버지를 찾아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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