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쓴 글이 월간지가 되어 나왔다.
얼마 전 아주 낯선 주소로 메일이 한통 도착했다. 무려 제목에 '원고 청탁'이라는 작가들이 나오던 드라마에서만 보던 단어가 담겨있는 메일이었다. 당연히 스팸이겠거니 했지만 제목에 낯익은 출판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팸이라기엔 너무 구체적이고 정성스러운데? 싶어 메일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그 메일의 내용은
'이 편지는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가 아니라, 아주 깔끔하고 정중하게 정말 원고 청탁을 의뢰하는 메일이었다. 기자분이 내가 브런치에 써두었던 글을 월간지에 담고 싶다는 메일이었다. 소사 소사 맙소사. 매번 출판의 기회는 의도치 않은 순간에 다가온다는 내용의 브런치 광고를 볼 때마다 당연히 남의 이야기겠거니 했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누군가, 먼저, 나의 글을, 돈을 주고, 사고 싶어 하다니!
누가 보면 책 출간 제의를 받았나 싶을 정도로 유난을 떠는 것 같지만 나에게 이 시점에 이 제안은 너무 특별했다. 최근 몇 년간 매년 나는 뭔가 인생에서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목표하고 도전하고 이뤄내 왔었다. 27살에는 결혼을 했고, 28살에는 인생 첫 퇴사이자 이직을 했고, 29살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와 독립출판, 30살에는 바디 프로필 촬영까지. 그런데 31살인 올해는 내 개인적으로 스스로 뭔가 이뤄낸 것 없이 한 해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뭐랄까... 유독 무기력하고 성취감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브런치에 써뒀던 글이 이렇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다니!
두말할 것 없이 제안을 수락했고 원고 마감 일정에 맞춰서 글을 다듬어서 보내드렸다. (세상에 원고 마감이라니! 진짜 작가 같잖아.) 사실 2편의 글을 한편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분량을 줄이는 게 조금 어려웠는데 내가 보낸 글을 편집자님께서 한차례 다듬어 주시니 훨씬 읽기 편한 글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글은 월간 샘터 12월호에 포함되어 세상에 나왔다.
내돈내산으로 독립출판을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글을 만져주는 것도, 배열을 해주는 것도, 사진을 골라주는 것도 기자님과 편집자분이 알아서 척척 해주시니 훨씬 더 완성도가 있었고 저절로 집으로 오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또 어느덧 하늘나라로 간지 8개월이 된 상수와의 이야기를 한번 더 곱씹을 수 있게 된 것도 너무 행복했다. 사진을 정말 몇 장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뒤, 갑자기 내가 네이버 메인에 있다는 연락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찾아보니 네이버 완전 메인까진 아니지만 '책방' 카테고리에 내 글이 실린 것이다. 샘터에서 공식 포스트에 내 글을 옮겨 주셨고 그게 메인에 걸리게 된 것. 브런치를 하면서 종종 다음&카톡 뷰탭에 올라갔던 일은 있지만 네이버는 처음이었다. 어안이 벙벙.
올여름 인스타그램 디톡스를 했던 경험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한 글을 썼을 뿐인데 연말에 그 글이 나에게 너무도 큰 기쁨이 되어 돌아왔다. 브런치 접속과 글이 뜸해지면 브런치가 보내왔던 "작가의 기회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라는 앱 푸시의 문구는 진실이었다. 기록의 힘이라는 게 정말 대단해서 언제 어떻게 해서든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기회가 된다. 브런치 열심히 해야지! 브런치 운영진 여러분 더 힘 내주세요! 열심히 할게요!
사랑해요 브런치.
우윳빛깔 브런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