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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11. 2020

미안해. 아빠가 좀 쉬어야겠어.

자가격리 7일 차 갑작스러운 고열과 몸살

아침에 눈을 뜨니 온몸이 쑤시면서 피곤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이삿짐을 싸서 근육통이 왔나 보네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배도 꾹꾹 누르면 아픈 것이, 쓰리고 기분 나쁘게 살살 아팠다. 먹기만 하고 움직이질 않으니 배에 탈이 났나 보다고 생각하며 아이 먹일 아침을 만들었다. 


엊그제 부모님이 조달해주신 디카페인 캡슐 커피를 내리며 몸과 마음을 깨워보자 다짐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몸은 천근만근, 왠지 모를 무력감이 아침부터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음식에 도통 관심이 없는 아이는 함께 놀면서 먹여줘야만 먹는다. 물론,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행동 변화를 유도한 탓에 밥숟갈에 밥과 반찬들을 올려주면 숟가락을 직접 잡고 먹지만 한 끼 먹는데 시간이 꽤 소요가 되고 다 먹이고 나면 지치는 건 큰 변화가 없다. 

"한 살 더 먹으면 이제 더 이상 안 먹여 줄 거야. 네가 직접 먹어야 한다. 알았지?"

"응, 알았어"

항상 대답은 잘한다. 막상 그때가 되면 까먹으니 문제지.


오늘은 유난히 아침 먹는 게 오래 걸렸고, 평상시보다 더 지쳤다. 자가격리 일주일 차에 오는 피로감이겠거니 했다. 다 먹자마자 바로 또 놀자고 보채는 아이를 보며, 오늘은 컨디션 상 안 되겠다 싶었다. "지금은 TV를 보여줄게, 잠깐만 보고 있어~ 아빠가 좀 몸이 안 좋아서 잠깐 누워있을게~" TV를 보여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아이는 바로 알겠다며 TV 볼 준비를 했다.


눕자마자 잠들었는데, 자면서도 몸이 정상 컨디션이 아님을 감지했다. 일어나서 열을 재봐야 할 텐데, 몸이 침대에 들러붙은 것처럼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누워있었나 보다. 그래도 이 시국에.. 빨리 재봐야지 하고 가까스로 열을 재니, 왼쪽은 37.8도, 오른쪽은 38.0도?? 몸에 열이 나고 있었다. 


평상시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텐데, 코로나로 자가격리 중에다 아내도 초반에 열이 나고 떨어지지 않았었던 패턴이었다 보니 걱정은 증폭됐다. '집안 어디에서 걸린 건가? 방역해주시는 분이 와서 방역도 하고 갔는데...' '보건소 선생님이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시고 격리기간 동안 이용하라고 했는데, 안 해서 그런 건가?...', '단순 몸살과 장염 같은 건가?' 갑작스레 나타난 발열 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열이 났던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한동안 열이 난적이 없었는데, 난데없이 발열 증상이 이 시점에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파장이 크리라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알렸다. 소식을 듣자마자 아내는 다시 멘털이 무너졌다. 애써 코로나로부터 입은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가고 있었는데, 내 발열 소식은 아내의 상처를 다시 벌어지게 했다. 그래도 아이의 체온은 정상이라는 점이 다행이었으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발열 증상이 나타난 즉시 집에서 KF94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에는 비닐장갑을 꼈다.  


휴일이었기 때문에 바로 담당 공무원분께 문자를 남겼다.

- 선생님, 제가 지금 발열 증상이 있어요. 몸살 기운도 있고요- 
- 본인만 열 증상이 있으신 건가요?- 
- 네 아이는 없습니다-
- 제가 확인하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담당 공무원 분은 확인 후 전화를 하셨다. 아무래도 보건소에서 다시 한번 검사를 진행해야겠다고 하신다.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검사를 진행하고 돌아와도 열은 계속 내리지 않았다. 해열제를 먹었는데도 열이 38.9도까지 올라갔다. 

"선생님, 검사는 잘하고 왔고요, 혹시 제가 양성이 나오게 되면 아이를 부모님 댁에 맡기는 것은 가능할까요?"

"제가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확인할게요, 오전에 결과 나오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했기에 양가 부모님께 상황에 대해서 설명드렸다. 내 발열 소식이 알려지자 양가 가족 모두 비상 상황이 되었다. 다음날 나오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모두 살얼음판 위에서 기다려야 했다.  


나마저 시설로 이송되면 아이는 어떡하나. 부모님 댁에 맡길 순 있는 건가. 아이도 별도의 시설로 가는 건가. 내가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 아내가 격리되어있는 시설에 같이 있을 수 있는 건가. 몸도 안 좋은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만 별도 시설로 격리되는 상황이면.. 아이는 충격이 클텐데...코로나 증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발열, 근육통, 피로감 등등이 적혀있는데, 내 증상과 너무 흡사했다. '아냐. 차라리 보질 말자' 걱정만 키울 테니 우선 셀프 방역으로 아이를 지키는 것에 집중하자.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아이에게 간식거리와 먹을 것들 준비해 주고 나서 말했다.

"오늘은 아빠가 많이 아파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아무래도 TV를 하루 종일 봐야 할 것 같아. 너무 미안해. 근데, 지금 아빠가 열이 많이 나니깐 아빠에게 가까이 오면 안 된다. 알았지?"


몸을 가누기 힘들어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라서 다행이다. TV를 보여주면 오랫동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간식을 더 달라며 깨우긴 했지만, 아이의 도움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저녁은 먹여야 되겠다는 생각에 방역 무장을 하고 밥을 하고 고기를 구워 주었다. 오늘은 아빠가 먹여줄 수 없으니 혼자서 먹어보라고 주고 방에서 쉬고 나왔는데, 한 두 숟갈 먹고 그대로인 것 아닌가. 그래도 할 수없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어제까지 안 그랬던 아빠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고,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본 아이는 적잖이 충격을 먹었던 것 같다. 그래도 TV를 오랫동안 볼 수 있다니 좋다는 마음 반, 약간의 불안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TV를 끄자마자 아이는 "아빠 놀이하자" 하고 오다가 멈칫했다. 갑자기 거실의 구석에 가서 앉아서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고 있어?"

"아빠랑 놀이할 수 없잖아..."

"응 오늘은 아빠가 아프니깐 일찍 자자, 잠도 같이 자기 힘들겠어"


결국 아이는 침대에서, 나는 침대 바닥에서 목은 방문 바깥으로 내놓고 잠을 잤다. 여전히 나는 38.7도, 아이는 36.5도. 그저 감사했다. 아이는 열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렇게 아이와 난 6시 반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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