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때문에 싸우고 슬퍼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진실이구나
요즘은 클래식에 관심이 많다. 오늘은 조성진의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봤다. 조성진은 피아노 연주를 할 때 상을 받지 못 하고 바이올린은 콩쿠르에서 3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고집해야겠다는 생각을 아주 어릴 적부터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기질이 어디에 적절한지 파악하는 일은 나이에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건 외부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몇 살 때의 내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나도 어릴 적부터 글을 썼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적은 꽤 있지만 참가했던 횟수에 비하면 사실 별로 안 된다. 상을 받고 업적을 자랑하는 대신 수업 시간에 책 읽고 선생님한테 혼나는 오타쿠 같은 느낌만 풍겼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유수암'이라고 책에 적힌 글자를 보며 너는 왜 책에 이름을 안 써놓고 동네 이름을 써놓냐고 한 번 더 혼냈다. 나는 어쩌다가 문창과에 입학했지만 자퇴했다. 편입을 하고 다시 지독한 늪 같은 문창과에 입학했다. 경제학과를 복수 전공해서 딴 길로 새려는 노력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글을 쓰는 학생이었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사람은 사실 내가 아니라 작은 오빠다. 작은 오빠가 이걸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작은 오빠는 저녁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상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처음 컴퓨터가 도착할 때 작은 오빠가 한 일은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초록 잔디의 바탕화면 위에 근육질의 텔레토비 네 마리를 그렸다. 작은 오빠는 지금도 그림을 그린다. 오빠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어릴 적부터 손가락 끝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몇 살 때 온 걸까? 작은 오빠가 쌍둥이 형보다 빨리 태어났으면 글을 썼을까? 지금의 오빠는 책 읽기를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오빠가 그린 그림 중에 유명한 건 '심쿵'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단발머리에 치마를 입은 인간의 가슴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의 등 뒤엔 하트 모양의 연기가 터진다. 그것은 여러 작품의 오마주가 됐다. 뮤직비디오, 이모티콘, 타투 도안까지 다양했다. 나는 페이스북에 그 사실을 알리며 울분을 터뜨렸지만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빠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항변했지만 오빠는 알아서 하겠다며 싫은 티를 냈다. 나는 의기소침해진 채로 더 이상 오빠에게 그 그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고 수 년이 지난 후, 음악을 좋아하는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어느 아티스트가 작은 오빠와 너무 비슷한 느낌의 앨범 아트를 내놓았다고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이런 일은 너무 잘못된 일이지만 비일비재한 것처럼 느껴졌고 그 사실을 오빠에게 말해봤자 오빠의 기분만 건드릴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잊고 수개월을 지내다가 문득 생각이 나 그림을 다시 자세히 보게 됐다. 다시 보니 너무 그림이 비슷해 보이는 게 아닌가. 그 가수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친구의 말까지 생각이 났다. 나는 이 사실을 오빠에게 말했고, 그러자마자 오빠는 그날부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얻게 됐고, 앨범 아트의 제작자 명단에 올라가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사실을 알려준 친구에게 고맙고, 보답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친구는 사례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예전에 네가 페이스북에 원작자가 누군지 알리지 않았더라면 나도 몰랐을 거야."
오빠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역시 사람일 모른다'라며 신기해했다. 나는 그저 어떤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수년 전에 페이스북에 오빠의 그림을 올릴 때 달렸던 댓글들, 이를테면 "상황은 안타깝지만 이런 식의 도용을 가지고 법적으로 처벌할 수가 없을 것 같아"처럼 애매한 반응에 굳이 속상해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진실 때문에 싸우고 슬퍼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진실이구나. 그것만 생각하면 된 거 아닌가. 그저 작품의 주인이 누구인지 사실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도움 되는 동생이었던 것 같다.
이 일이 오빠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돼주진 않았다. 그런다고 뭐 오빠의 그림값이 오르는 건 아닐 테니까.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약간의 힘을 실어주긴 한 것 같다. 오빠랑 한때 같이 살면서 매일 같이 라면만 먹고 인생을 왜 이렇게 말아 먹게 됐는지 곰팡이 핀 벽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한 것 같은데 이런 시기도 오는구나 싶었다. 라면을 먹은 우리의 아픈 기억이 좋은 일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냥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자연스럽고 막을 수 없는 형태로 좋은 일이 잠깐 찾아왔을 뿐이다.
나는 내일도 오늘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겠지. 그렇다고 해서 당장의 상태를 실패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지나가는 시간의 조각일 뿐인데, 그냥 이렇게 둬야겠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에는 꼭 용기를 내야지. 너무 끓어서 이제 별로 남지도 않은 용기지만 아까워하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