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리 쉬운게 없을까
한국 운전면허증 공증을 받으면 현지 운전면허증 교환이 가능하다. 다른 주,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는 아예 새로 시험을 봐서 면허를 따야 하기 때문에 이게 진짜 좋은 혜택이라고는 한다. (가능한 나라도 몇 개 없는데 한국이 포함됨)
하지만 가까운 영사관에 가서 한국 면허증 번역 공증을 받아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곳이 차로 5시간 거리인 필라델피아 영사관이다. 왕복 장장 10시간 거리.
차가 없으면 당장 우버나 리프트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시티에서 좀 떨어진 지역이다 보니 차가 없다는 게 불안했다. 새 차 건 중고 차건 현지 딜러들에게 물어보니 국제 운전면허증으로는 구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영사관에 가장 빠르게 예약을 잡을 수 있는 건 8월 말. 미국 운전면허증이 나오기까지 9월 말까지는 차 없이 살아야 하는데 장기렌트를 하자니 얼추 500만 원이 들 예정이다.
이런저런 꼼수로 알려진 방법들은 위험부담이 커 보였다. (미국에 오자마자 걸리면 큰일이 날만한 꼼수를 부릴 정도로 우리는 간이 크지 않다.) 결국 시간이 날 때마다 영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빈자리가 있는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짬이 날 때마다 영사관 페이지를 들락거리던 제이 덕분에 바로 예약을 잡았다! 처음 예상보다 한 달을 앞당겨 차를 살 수 있다.
어차피 예약도 한 명 자리밖에 없었고 나는 운전 경력이 짧으므로 여기서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게 더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미국에 오자마자 혼자 먼길 보내는 게 마음이 안 좋아 처음에는 1박 2일 여행처럼 영사관 근처로 가서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미나 말이 이미 여행 온 것처럼 살고 있어서 또다른 여행이 필요 없다고 했다.
가뜩이나 미국으로 끌려온(?) 아이에게 짐 정리로 한참동안 어수선했던 한국 집, 할머니 댁, 긴 비행, 그리고 아직 '집'이라고 느끼기 힘든 미국집, 이런 상태가 당연히 힘들 것이다.
미국에 온 후로도 서류처리다, 병원이다, 마트다 매일같이 돌아다녔으니 어른인 우리도 힘든데 아이는 더 지칠만 하다.
둘이 새벽에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둘 다 코끝이 찡-했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핏줄을 타고났는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눈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이런 나와 사느라 제이도 덩달아 눈물이 많아졌다. 결혼 전에는 '남자가 말이야~'하는 교육때문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결국 하루동안 단 둘이 집에서 조용히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아빠인 제이는 혼자 먼 길을 떠났고, 엄마인 나는 안쓰러운 마음을 제이에게도 미나에게도 가진 채로 집에 있기로 했다.
정작 영사관까지 오가는 길, 그리고 영사관에서는 걱정했던 일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리 드라마를 찍고 마음 쓴거에 비하면 아무 문제 없이 일처리도 한번에 매끄럽게 해결되었다.
이제 차만 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