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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지각대장 존>

꿋꿋한 지각대장 존

by 김경애



표지 감상


하얀 표지 위에 검은색 윗옷을 입은 덩치 큰 선생님이 아이를 내려 다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검은 사각모를 쓰고 있네요. 긴 손가락을 가진 큰 손 두 개가 자그마한 교탁을 가득 채웁니다. 입은 또 얼마나 큰지요? 무지막지한 악어 입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존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을 뚝뚝 흘리며 교탁을 두고 선생님과 마주 서 있습니다. 키가 교탁 위를 살짝 넘는 작은 아이입니다. 그래도 고개를 당당히 들고 자기 의견을 침착하게 이야기하고 있네요. 참 다행입니다.

표지를 열자마자 화들짝 놀라고 이어 미안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삐뚤빼뚤 연필로 그림책 양 면 가득히 반성문이 적혀있습니다. 깜지 또는 빼백이로 불리는 이런 반성문을 저도 초임 담임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시킨 기억이 있거든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존 버닝햄은 영국 사람입니다. 영국에도 깜지 벌이 있다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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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왜 자꾸 지각을 할까요


학교 가는 길에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가 불쑥 나와 존의 책가방을 덥석 뭅니다. 장갑 한 짝을 던져주니 악어는 책가방을 놓고 장갑을 물었습니다. 악어와 고군분투하느라 허겁지겁 간신히 학교에 왔지만 지각입니다. 늦은 이유를 설명하지만 악어를 만났다는 이유가 선생님에게 통할 리가 없습니다. 표지 안에 있는 것처럼 존이 깜지를 300번이나 쓰게 된 이유입니다.

어쩌지요? 다음 날은 덤불에서 사자를 만나 지각을 합니다. 또 다음날은 학교를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큰 파도가 밀려와 존을 덮칩니다. 당연히 오늘도 지각입니다. 아, 표지의 그림이 드디어 등장하는군요. 말도 안 되는 지각 이유를 듣고 펄펄 뛰는 선생님의 모습이 이어 나오는데 볼 만합니다. 존은 또 깜지 쓰는 벌을 받습니다. ‘다시는 강에서 파도가 덮쳤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옷을 적시지도 않겠습니다.’ 500번씩이 나요....


때 늦은 반성문


저는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숨 가쁜 고도 성장기에 청소년 시절을 보낸 세대입니다. ‘근면 성실’이 미덕인 시대, 웬만큼 아파도 학교는 꼭 가야 하는 곳이었죠. 초중고 12년 개근이 흔한 때였습니다. 그런 성장 배경을 가진 제가 두 아이를 키우며 이해에 인색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또 31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담임을 하며 존과 같은 아이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비록 존처럼 악어, 사자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제가 듣기에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들이 많았죠. 아이들의 말에 이해해 보려고도 하지 않는 존의 선생님 모습에 저도 살짝 찔립니다.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줄 걸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해봅니다.


그래도 다행인 기억도 있습니다. 고3 담임을 맡았을 때 일입니다. 시험 기간인데 한 녀석이 연락도 없이 1교시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교시 마치는 종이 울리는 대로 교실로 급히 가보니 지각은 했지만 와서 시험을 봤더군요. 비록 OMR답안지 카드에 정답을 세로 한 줄로 예쁘게(?) 주욱 그어놓았지만요. 간밤에 술 깨나 마셨는지 술 냄새를 확 풍겼습니다. 크게 혼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나이를 꽤나 먹어서인지 이렇게라도 와서 시험을 본 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물론 녀석은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지금쯤 제 밥벌이는 단단히 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른도 틀릴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읽었습니다. 책 제목만으로도 머리를 흔든 책인데 값진 문장도 만났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존은 오늘 또 어떤 이유로 지각할지 궁금합니다. 기대와 달리 존은 등굣길에 아무 일 없이 제시간에 잘 도착합니다. 그런데 교실에 선생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어디로 갔을까요? 아주 당황스러운 표정의 선생님은 고릴라와 함께 교실 천장에 매달려있습니다. 존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이 재미난 장면을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림책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눈곱만큼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지만 묵묵히 꾸준히 학교에 가는 존이 대단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그림책은 어쩌면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 필요한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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