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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잡다>

추운 세상이지만 따뜻한 <잡다>

by 김경애

올해 첫눈은 풍성하게 내렸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곤욕스러웠겠지만 은퇴자인 저는 거실창으로 보이는 앞산의 설경에 매료되어 황홀한 풍광을 즐겼습니다. 책꽂이에서 <잡다>를 꺼내 보기 딱 어울리는 날입니다.


<잡다>가 내게 온 사연


2024년 서울 국제 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어 걱정이 많은 시대이지만 관람객이 무척 많아 그 북적거림도 즐거웠습니다.

일반책보다 그림책 코너를 유심히 봅니다. 스스로 신기합니다. 어느새 그림책이 친한 친구로 스며들었다는 증거이지요. 출판사들의 리플릿을 부지런히 주워 들고 전시된 책들을 살펴봅니다. 내용을 다 볼 수는 없지만 신선한 기획과 멋진 디자인의 그림책이 많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어느 부스의 사장님이 제게 말을 거시네요. "출판사 이름이 왜 월천상회인가요?" 출판사 이름이 독특하여 이 질문부터 드려봅니다. 매월 천만 원씩 벌고 싶어 지은 이름이라는 솔직한 대답에 깔깔 웃습니다. 출판사가 잘 되어 직원들에게도 넉넉한 월급을 주고 싶대요. 그런데 매월 적자라네요.....

응원의 마음으로 추천해 주신 책을 데려왔습니다. <잡다>입니다.



표지 감상


펼쳐 보지도 않고 책꽂이에 고이 꽂혀있던 <잡다>를 그림책 모임 때 가지고 갔습니다. 4명의 멤버들이 한 달에 한번 만나 각자 가지고 온 그림책을 읽어주는 모임입니다. <잡다>가 제 손에 들어온 사연을 이야기하자 사장님의 간절함에 모두 크게 웃으며 응원의 마음을 보탭니다.

표지부터 꼼꼼히 뜯어봅니다. 표지 가득 '잡다'라는 두 글자가 아주 크게 세로로 쓰여 있습니다. 글씨 위로 흰 눈이 쌓여 있네요. 눈여겨보니 표지 배경도 온통 눈밭이군요. '잡'글자 위에는 작은 파랑새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다'글자 위에는 여우가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고 있네요. 큰 꼬리를 치켜들고요. 이 그림책은 눈 오는 날 여우와 새의 이야기인 듯합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잡다>


그림책은 파란색의 새 외에는 온통 흰색, 회색, 검은색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글밥도 아주 적고요. 동양화 같습니다. 선의 세계 같은 고요함과 먹이사슬의 긴장감이 한겨울 눈밭 위에 뜨겁게 펼쳐집니다.

주인공 여우는 간절히 참새를 잡고 싶어 합니다. 표지의 파랑새가 참새이네요. 찢어진 눈에 제 몸집보다 큰 꼬리를 갖고 있는 심통쟁이 여우가 왠지 귀엽습니다. 몇 년간 그림책을 자주 보면서 저는 순한 동물보다 성깔깨나 있는 주인공들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여우는 드디어 참새를 잡습니다.




기쁨도 잠시뿐, 여우는 사냥꾼들이 파놓은 함정에 참새와 함께 빠져버렸습니다. 절망에 빠진 여우는 참새를 놓아줍니다.

“나는 도망갈 수 없어도 너는 도망갈 수 있잖아”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궁금한 마음을 누르고 조심스레 페이지를 넘깁니다.


짠! 함께 그림책을 보던 우리는 모두 탄성을 지릅니다. 참새들이 몰려와 구덩이에서 여우를 구하는 그림이 펼쳐지네요. 비현실적인 비상에 가슴이 확 트이는 시원함을 느낍니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살벌한 생태계에서 저자는 신선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지은이 화창단?


지은이가 화창단입니다. 출판사 월천상회만큼이나 아리송한 이름이네요. 책 뒤의 설명을 보고 궁금점이 풀립니다.

화창단은 부부인 류창과 자오페이의 이름에서 따온 창작그룹으로 는 함께라는 뜻이고 은 류창의 이름에 있는 창이고, 은 단체를 뜻합니다. 아내의 아이디어라네요.


출판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데려온 그림책이 제게 더 많은 재미를 줍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서도 주변에 좀 더 다정하기를 권하는 책입니다. 내게 온기로 되돌아오기도 하니까요.


짧은 그림책으로 멋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들이 대단합니다. 잘 익은 철학책을 읽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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