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재미를 안겨준 <폭풍우 치는 밤에>
동네에 작은 서점이 있었습니다. 아주 좁은 공간이라 이름도 '한평책방'이었지요. 단골인 제게 사장님이 독서모임을 열어보라고 권하였습니다. 서점 벽에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몇 달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사장님이 그림책 모임을 열어보라 하시네요. 아무래도 부담이 적을 것 같다고요. 마침내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렇게 단 둘이 시작한 그림책 모임이 6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둘에서 셋, 셋에서 넷이 되어 말입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책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와 멤버들에게 읽어줍니다. 느낌을 이야기하고 그리기 등의 독후 활동을 할 때도 있습니다. 서로 친해진 것이 가장 큰 선물이지요.
처음 저와 단둘이 모임을 한 분은 그림책 작가입니다. 좋은 그림책을 많이 알고 계신 분이었죠. 모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폭풍우 치는 밤에>를 들고 오셨어요. 내성적인 분인 데다 저와 나이 차이도 있어서인지 아직은 서로 어색해하던 때였습니다.
주인공 염소와 늑대의 상황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저는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지요. 폭풍우 치는 깜깜한 밤에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나누는 그들의 대화에 아이처럼 깔깔 웃으며 즐거워했죠. 책 덕분에 그날 모임은 웃음이 넘쳤고 서먹했던 우리는 한순간에 친해졌습니다.
폭풍우가 거세게 내리치는 어두운 밤입니다. 쓰러져 가는 작은 오두막에 하얀 염소가 비를 피해 들어옵니다. 이어 염소 고기를 가장 좋아하는 늑대도 들어오네요. 불안했던 염소는 같은 염소라 짐작하고 늑대를 반깁니다. 다행인가요? 늑대도 먼저 와 있는 염소가 늑대일 거라고 지레짐작합니다. 서로를 알 수 있는 것은 목소리뿐. 상대의 웃음소리를 들은 염소와 늑대는 ‘늑대처럼 목소리가 탁하고 굵네요’, ‘무슨 웃음소리가 염소웃음소리처럼 그렇게 높아요?’하고 말하려다가 상대가 기분 나쁠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염소와 늑대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겁이 많아 거센 폭풍우 치는 이 밤에 서로의 존재가 무척 반갑고 힘이 됩니다. 산들산들 산의 말랑말랑 골짜기로 자주 먹이를 구하러 가는 것도 닮았네요. 물론 염소는 풀을 뜯기 위해, 늑대는 그런 염소를 잡아먹기 위해서지만요. 그곳에서의 먹이가 맛있어서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도, 어렸을 때 몸이 약해 엄마를 걱정시켰다는 것도. 서로 닮은 점이 많다며 하하하 웃습니다. 저도 웃습니다.
갑자기 큰 천둥이 치자 둘은 저도 모르게 서로 몸을 빠짝 붙입니다. 쑥스러워진 염소와 늑대가 말합니다.
“우리는 정말 닮은 구석이 많아요”
“우리는 참 잘 맞아요”
폭풍우가 그치자 둘은 오두막을 나섭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아 서로를 볼 수는 없지만 친해진 둘은 뭔가 섭섭하여 내일 낮에 이 오두막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식사라도 같이 하자면서요. 참, 얼굴을 모르니 암호는 ‘폭풍우 치는 밤에’라고 정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네요. 궁금증을 잔뜩 부풀게 해 놓은 채!
저는 아이들에게 독서 습관을 붙여주려 꽤나 노력하였습니다. 그림책도 많이 읽어주었지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갯벌이 좋아요>, <강아지똥> 등 지금도 기억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워킹맘으로 의무감이 앞선 탓인지 그림책의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얼른 한글을 익혀 스스로 책 읽기를 기다리는 엄마였지요.
<폭풍우 치는 밤에> 뒷 이야기를 궁금해하자 속편인 <나들이>는 다음 달에 가져오신다고 말하셨어요. 닮은 점이 많지만, 먹고 먹히는 관계인 늑대와 염소가 환한 낮에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도서관에 가거나 사 보면 될 일이었는데 그림책 세계에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그런 쉬운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한 달을 궁금해하며 아이처럼 다음 모임을 기다렸지요. 여러분도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시죠? 속편인 <나들이>를 조만간 소개하겠습니다.
그림책이 이렇게 매력적이었나요? <폭풍우 치는 밤에> 덕분에 그림책의 재미에 풍덩 빠져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