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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적당한 거리>

우호적 무관심과 적당한 거리

by 김경애 Feb 02. 2025


시어머니가 됩니다  

 

  아들이 올해 결혼을 합니다. 새 식구를 맞이하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비우고 묵은 청소를 신나게 하였습니다. 제겐 며느리, 사위를 보고 손주까지 있는 친구도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도 온 세상에 며느리 보는 사람이 저 하나뿐인 양 즐겁고 설렙니다.  

  ‘어떤 시어머니가 되고 싶은가?’ 요즈음 저의 화두입니다. 남편은 늦둥이 막내라 제가 결혼할 때 시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시어머니를 겪어본 경험이 없는 제게는 드라마, 소설 속의 시어머니와 친구들이 늘어놓은 시어머니 스토리가 전부입니다. 문제는 대체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는 데 있지요...

  제 화두의 답을 그림책 <적당한 거리>에서 찾아봅니다.    

   

표지 읽어내기  


  새하얀 배경 위에 산세베리아와 여인이 있습니다. 산세베리아는 튼실하게 보입니다. 산세베리아 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은 고개를 돌려 산세베리아의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왜 이런 옷과 자세를 그렸을까요? 온통 산세베리아에 관심이 가지만 애써 거리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제겐 읽히네요. 무심한 척 하지만 실은 아주 애착하고 있는.



  산세베리아와 여인 사이에 그림책 제목 <적당한 거리>가 떠억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자마다 한가운데 점이 찍혀 있네요. 점은 마치 칼같이 적당한 거리를 지키겠다는 결기가 느껴집니다. 제가 표지를 잘 읽어낸 기분이 듭니다.            



적당한 거리     

  

  표지를 넘기면 싱그러운 초록의 식물들이 페이지마다 넘쳐납니다.

“네 화분들은 어쩜 그리 싱그러워?”라는 질문에 저자는 답합니다.

“적당해서 그래. 뭐든 적당한 건 어렵지만 말이야”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책에는 새겨야 할 말이 넘칩니다.

‘그렇게 모두 다름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 그렇듯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의 시작일지도.’     

‘관심이 지나쳐 물이 넘치면 뿌리가 물러지고 마음이 멀어지면 곧 말라 버리지’    



 

  화분 키우기에 젬병인 제게 그림책은 온통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읽힙니다. 식물이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어요? 각자 다른 유전자로 태어나 긴 시간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성인들이라면 더욱더!  


   


우호적 무관심 


  제주에는 ‘우호적 무관심’이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올레를 걷다가 쉬어간 이곳의 커피 맛은 보통이지만 카페 이름에 반하였습니다. 길을 걷다 머리를 탁 치는 현자를 만난 느낌이랄까요? 이후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의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귀 기울여 듣고 질문하되 섣부른 참견과 조언을 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우호적 무관심이죠. 물론 늘 성공하지 못하는 게 문제 이긴 하지만요.     

 

  다시, ' 어떤 시어머니가 될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먼저 우리 딸, 아들에게 하듯 며느리의 장점, 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 보렵니다. 또 자식들에게 기대와 관심을 줄이고 우리 부부의 삶에 충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다정하되 부담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며칠 전 설날에 예비 며느리가 우리 집을 첫 방문하였습니다. 거실 벽을 풍선과 ‘환영합니다’ 문장으로 꾸미고 반가이 맞이했습니다. 우호적 무관심을 가지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고 싶습니다. 자주 그림책 <적당한 거리>를 꺼내 보아야겠죠? 저를 수련해 주는 그림책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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