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의 탄생,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5월은 새 잎을 피워내는 나무들만큼이나 바쁜 달입니다. 그중에 어버이날도 있지요. 자식으로서 어버이날 선물을 고민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제 부모님은 모두 떠나시고 제 아이들의 마음을 받는 나이가 되었네요. 딸이 어버이날 선물로 갖고 싶은 것을 물어왔습니다. 주머니는 넉넉하지 않고 생활은 바쁜 딸아이를 위해 얼른 대답해 줍니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던 그림책 2권을 사달라고 했어요. <꽃에 미친 김 군>과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입니다. 그림책이 정말 제 삶에 스며들었나 봅니다.
저도 이름 짓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할머니에게 끌렸는지 몰라요. 비록 아파트이지만 저희 집 이름은 ‘안심당(安心堂)’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아파트 도서관은 ‘반야실’이라 저 혼자 이름 지었지요. ‘般若’는 지혜를 뜻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아파트 뒤 작은 공원은 늘 미소 짓게 만드는 공간이라 ‘소소원(笑笑園)’이라 부르며 혼자 흐뭇해합니다. 자동차에게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지어준 ‘아방이’가 딱 좋아 우리도 그냥 아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저도 그림책 주인공 할머니께 두 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이름 짓기 좋아하는지 보실래요?
이름 짓기를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낡은 자가용에게 ‘베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할머니가 앉아 쉬는 헌 의자에게는 ‘프레드’라는 이름을,
밤마다 누워 자는 침대에게는 ‘로잰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오래오래 살아온 집에게는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지요
할머니와 저의 차이점은 이름을 짓기 시작한 동기네요. 저는 제 주변을 다정함으로 채우기 위한 것인데, 친구들보다 오래 산 할머니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를 친구가 없어서 시작한 거로군요.... 할머니의 이름 짓는 원칙도 마음 짠합니다. 자기보다 오래 살 수 있는 것들에게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삶에 한 생명체가 끼어듭니다. 순해 보이는 갈색 강아지가 출입문 가로 슬금슬금 다가온 것입니다. 배가 고파 보이는 강아지는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었어요. 물끄러미 바라보며 갈등하던 할머니는 ‘끙! “ 소리를 내며 한숨을 내쉬고는 냉장고에서 햄 한 덩어리를 꺼내와 강아지에게 줍니다. 그리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어요.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할머니입니다.
하지만 강아지는 다음 날 다시 찾아왔어요. 할머니는 치즈와 과자를 주고는 ”집에 가거라! “말합니다. 강아지를 머물게 하려면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고 할머니가 오히려 강아지보다 오래 살 것만 같았거든요. 할머니의 외로움과 불안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강아지는 날마다 할머니네 집 문가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어엿한 개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날마다 정성껏 먹이를 주면서도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지요? 어느 날부턴가 그 갈색 개는 할머니네 집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리던 할머니는 문득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졌습니다. 다음 날에도 개가 찾아오지 않자 할머니는 베치를 몰고 개를 찾아 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할머니는 점점 더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할머니는 떠돌이 개를 잡아들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살짝 구부정했던 할머니의 등이 꼿꼿합니다. 개를 찾아야겠다는 의지 때문인지 등에 힘이 들어간 모습이 느껴집니다. 할머니는 진지한데 저는 귀여운 무늬의 바지에 눈이 갑니다. 할머니 차림을 찬찬히 살펴보세요. 높이 틀어 올린 흰색 머리, 개성 있는 무늬의 옷과 노란 부츠를 신은 할머니는 멋집니다.
그나저나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할머니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베치를 몰아 떠돌이 개들을 보호하는 사육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개 이름을 묻자 ”우리 개 이름은 ’ 러키‘랍니다! ’ 행운‘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 “라 대답합니다. 비록 친구들이 모두 먼저 떠났지만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던 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깨달았거든요.
할머니는 개들로 가득 차 있는 마당으로 가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문가에 앉아 있는 순둥이 갈색 개를 찾아냈습니다. 개도 찻길에 세워져 잇는 베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마 할머니가 오신 것을 알아챘으리라 생각됩니다. 뭉클하네요. ”오, 러키야! “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순둥이 갈색 개는 단숨에 달려왔어요. 그날부터 러키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이름을 부르면 러키는 언제든지 단숨에 달려왔지요. 물론 매일 밤 러키와 그 이름을 지어 준 할머니는 따뜻한 로잰느에서 함께 잠들었습니다.
다정한 친구들을 먼저 떠나보낸 상실감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래서 자신보다 먼저 떠날 것 같은 것들에게는 정을 붙이지 않으려는 주인공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떠돌이 개에게 마음을 열고 가족으로 함께 살아가네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나이 든 할머니의 가족이 된 것에 제 마음도 놓입니다. 할머니가 그만큼 행복하실 테니까요.
우리 모두 나이 들어가고 또 언젠가는 죽습니다. 잘 나이 들어가는 것에 저도 관심이 많습니다. 몸과 마음의 근육을 더욱 단단히 키워가야겠지요? 제 삶에 슬그머니 스며든 그림책도 틀림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 같아 나름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