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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비에도 지지 않고>

어른을 위한 그림책 <비에도 지지 않고>

by 김경애

남편에게 선물한 <비에도 지지 않고>

제 남편의 취미는 산책과 영화 감상입니다. 요즈음에는 드라마도 자주 보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에서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를 보던 남편이 좋은 드라마라며 제게 줄거리를 쏟아내는군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겨우 살아가던 힘든 시절, 우연히 공장 동료에게 미야자와 겐지의 시집을 얻습니다. 그중 한편인 ‘비에도 지지 않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바꾸는 계기로 삼습니다. 책의 힘을 느낀 그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됩니다. 그리고 시인의 철학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라는군요.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음을 새삼 확인합니다. 아! 그런데 드라마에 소개된 저 시가 생각납니다. 몇 년 전 그림책 모임 때 K가 가져온 <비에도 지지 않고>이네요. 반가운 마음에 남편에게 선물하려 얼른 그림책을 주문합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시와 야마무라 코지의 그림이 만나 더 아름답게 태어났습니다.


빗님이 내리는 5월 첫날, ‘비에도 지지 않고’ 그림책이 도착하였습니다.



비에도 바람에도 눈에도 더위에도 지지 않는 사람,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전문을 만나볼까요?

실제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 미야자와 겐지의 자화상 같은 시라고 합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짧은 시 속에 그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제목에 시인의 단단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자연의 변화에 굽히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말입니다.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어’에서 시인은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인 것 같군요. 몸과 마음 모두 잘 가꾸고 힘을 키워가는 성실한 사람이 그려집니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라니요? 실제로 그는 농업학교 교사를 하다가 서른한 살쯤 학교를 그만두고 마을 변두리 소나무 숲 그늘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더니 욕심 없는 소박한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다다미, 채소 그리고 화덕이 있는 이 담박한 그림이 푸근합니다.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저는 이 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늘 관찰하고 배우고 익히는 사람, 그리하여 깨어있고 자기 성장을 멈추지 않는 사람인 걸 알 수 있으니까요. 제가 지향하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사랑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자'와 맞닿아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는 또 얼마나 주변을 잘 살피며 실천력이 좋은 사람인지요?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미야자와 겐지는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는군요. 농부들에게 비료에 대해 상담을 해 주기도 하고 농부들이 예술을 누려야 한다며 ‘농민예술론’을 썼다고 옮긴이가 조곤조곤 알려주네요.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그런 시인도 도울 수 없는 천재지변에는 그저 마음 아파하는 따뜻한 사람이군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요?


시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멍청이’라 불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니요? 인정욕구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닿기 어려운 경지인지요? <논어>에 나오는 군자가 떠오릅니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


또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모든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진 도가의 도인도 떠오릅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보니 23년 8월 그림책 모임에서 이 그림책을 알게 되었군요. 그날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은가?'로 생각 나누기를 한 기록도 있습니다. 저는 '매일 청송 사과 한 알을 먹으며 세상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려 궁구 하는 삶을 살고파요'라고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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