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위한 <엄마의 초상화>
제 고향은 경상남도 김해, 옛 금관가야의 땅이지요. 6가야연맹의 탄생 설화를 간직한 구지봉, 금관가야의 첫 왕인 김수로왕릉, 그의 아내 허황후릉 등 문화재가 많습니다.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는 ‘철의 나라 가야’의 우수한 문화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 바다를 끼고 있고 넓은 김해평야 덕분에 농산물, 해산물이 풍부하여 먹거리도 다양합니다. 한마디로 살기 좋은 곳이지요.
김해시 외곽인 칠산에서 읍내로 시집오신 엄마를 동네 사람들은 ‘칠산댁’이라 불렀습니다. 오빠가 태어나자 오빠 이름 ‘무상’을 따 “상아!”라고 부르다가, 우체국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우체국 댁”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엄마 이름은 ‘장윤수!’ ‘아산 장(蔣)씨 성을 가지고 윤달(閏)에 태어난 빼어난(秀) 아이’였습니다. 엄마도 저도 이 이름을 참 좋아했습니다. “장윤수 여사!”라 자주 불러 드리곤 했죠.
외할아버지는 이름만 멋지게 지으시고 딸들을 공부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넉넉했던 살림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총기 있던 엄마는 배움에 한이 맺히셨고 우리 6남매 공부에 적극적이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집 가까운 부산의 여러 대학을 두고도 천리 길이나 되는 먼 서울로 공부하러 올 수 있었습니다. 동네 아줌마들의 부러움 섞인 비웃음을 받으면서요. 제 가방끈은 엄마의 결핍에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저의 엄마는 2019년 가을, 더없이 맑고 푸른 날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떠나셨습니다. 엄마를 감고 있던 병원의 여러 계기판들이 불안하게 삑삑거리더니 어느 순간 딱 멈추더군요. 미리 고향에 내려와 임종을 지킨 것이 그나마 제게 작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가신 뒤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특별히 불효를 한 기억도 없고, 나름 자식 노릇 한다고 애를 쓰고 살아왔지만 왜 그리 많은 회한들이 밀려오는지요?
엄마가 가신 얼마뒤 그해 겨울, 그림책 모임의 J가 저를 위로하려 <엄마의 초상화>를 들고 왔습니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읽어 주는데 페이지마다 엄마 모습이 겹쳐지면서 울컥하였습니다. 많은 위로를 받으며 그림책의 위력을 또 한 번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림책 표지에 멋진 엄마가 있습니다. 큰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빨간 루주에 볼터치까지 한 엄마. 목에는 옥목걸이도 하셨네요. 붉은 꽃을 배경으로 한 엄마는 정말 환하고 멋져 보입니다.
저자 유지연 님은 익숙한 엄마의 모습을 되새기고 그 이면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조금이나마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몇 구절 함께 볼까요?
여러분의 엄마 모습도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그랬듯이...
익숙한 엄마의 모습 속에는
낯선 미영 씨도 살고 있어요.
엄마의 울퉁불퉁한 발은 늘 아래에 있지만
미영 씨의 자존심은 항상 높은 곳에 있지요.
엄마의 손이 바짝바짝 메말라갈수록
미영 씨에게선 반짝반짝 빛이 나요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 뒤엔
상상치도 못할 미영 씨가 있을지도 몰라요.
엄마의 일상은 자칫 지루해 보여도
미영 씨는 아주 재밌는 사람일 수 있어요.
엄마는 생선 머리만 먹는 미식가인 것 같지만
미영 씨는 두려움을 모르는 탐험가일 수 있지요.
엄마는 지지 않는 꽃처럼 우리를 응원해 줄 것 같아도
미영 씨는 언젠가 꽃을 찾아 떠나 버릴지 몰라요.
엄마는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지만
미영 씨는 집이 아니고 싶을 때도 있을 테니까요.
둘은 서로 다르게 생겼어요.
하지만 하나뿐인 우리 엄마, 미영 씨입니다.
차분한 봄비가 종일 내렸던 어제는 25년 4월의 그림책 모임날이었습니다. 늘 제가 사는 불광역 부근에서 모이다가 모처럼 안국역 부근으로 소풍 가듯 만났습니다. 멤버들은 진짜 소풍으로 알았나 봅니다. 그림책 없이 팔랑팔랑 가볍게 오셨네요.
저는 <엄마의 초상화>를 준비해 갔습니다. 두어 달 전에 K가 엄마를 떠나보내었거든요. 시간의 힘에 기대어 이제는 많이 담담해진 제가 아직 순간순간 울컥할 K에게 이 그림책으로 위로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손주 볼 나이인 우리지만 ‘엄마’를 떠나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엄마의 초상화>를 읽어주던 제가 기어이 K를 울렸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슬픈 일이 생겼을 때는 감추고 묻으려 하지 말고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