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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나는 개다>

또 하나의 가족 <나는 개다>

by 김경애


저는 개가 무서워요


여러분은 개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아닙니다. 개를 무서워하죠. 아주 작은 개도 말입니다. 개들은 영리한지 ‘저 인간은 우리를 무서워하는군!’이라고 금세 알아보고 꼭 저만 보면 짖습니다.

돌아보면 개들과 친할 기회도 있었어요. 어릴 때 저희 집에도 마당에 개를 꼭 키웠어요. 엄마께서는 강아지를 사 와 부지런히 키워 장에 내다 파셨죠. 도둑도 지킬 겸 일석이조로 말입니다. 신혼시절 주인집 마당에도 진돗개가 두 마리나 있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자 큰 시누님과 아래 위층에 살았습니다. 워킹맘인 저를 대신하여 저희 둘째를 키워주셨죠. 그때 시누네는 복이와 미키라는 개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저는 도통 이 개라는 생명체와는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의 스토리를 알 리가 없는 글쓰기 멤버 늘그래님이 <나는 개다>를 선물로 보내오셨네요. 마치 ‘개랑 한번 친해보시죠!’라고 권하는 것처럼요~



표지 그림


빨간 바탕의 표지에 개 한 마리가 폼을 잡고 앉아있습니다. 그 위로 도발적인 제목인 ‘나는 개다’가 보입니다. 개라는 정체성과 존재감을 한껏 내뿜고 있네요. 개발세발로 쓴 책 제목 글씨는 꼭 주인공인 개가 쓴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네요. 제목 옆에 마치 낙관처럼 개 발자국까지 찍혀있으니 더욱더!



가만 들여다보니 주인공 개는 그림이 아니라 입체로 만들어져 있네요. 지은이 백희나 작가는 ‘입체 일러스트레이터’라 불린다고 합니다. 등장인물과 배경을 입체모형으로 제작하여 배치하고 각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그림책을 완성한다네요. <나는 개다>도 작가의 창의력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 그림책입니다.



모두가 가족이랍니다


주인공 구슬이는 수년 전 슈퍼집 방울이네 넷째로 태어나 젖을 떼자마자 동동이네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구슬이의 엄마인 방울이는 해마다 새끼를 엄청나게 낳습니다. 책에는 4페이지에 걸쳐 스물여덟 마리의 빼곡한 개 가계도가 나옵니다. 이 개 족보를 보고 놀라면서 웃음도 났습니다. 역사를 전공한 저도 역사 연대표와 여러 왕실 계보도를 만들기 좋아하거든요.




어쩌면 동네에서 마주치는 개들이 거의 다 형제자매일지도 모른다고 구슬이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밤중이라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베란다에 나가 열심히 대답해 줍니다. 구슬이의 하울링에 아부지의 야단이 꼭 뒤따라오지만요.

아침입니다. 무뚝뚝한 아부지가 출근하시고 동동이도 나갑니다. 어, 오늘은 할머니도 외출하시나 봅니다.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시는 얼굴이 설렘으로 환해 보입니다.

그럼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할머니를 바라보는 구슬이의 눈빛이 간절합니다.

베란다에 배를 깔고 축 엎드린 구슬이는 심심해 보입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는 게 대부분 개들의 일상이겠죠? 양 면에 ‘기다린다’ 글자가 가득합니다. 글씨 크기도 다양합니다. 제 마음도 짠한데 애견인들은 이 그림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드디어 할머니와 산책을 나갑니다. 길게 내 민 혀, 생동감 넘치는 눈빛, 쳐든 앞 발로 구슬이의 기쁨이 얼마나 큰 지 온몸이 보여줍니다. 할머니가 힘에 부친 듯 질질 끌려오시네요. ‘산책이다!’ 글씨가 정말 엉망진창입니다. 구슬이가 쓴 게 확실한 것 같아 보입니다.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동동이를 반갑게 맞이하며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섯 살 동동이와 언제 먹어도 맛있는 멸치깡도 나눠 먹습니다.


그나저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동동이란 녀석

참으로 곤란하다.

떼쟁이에, 울보에

아직도 똥오줌을 못 가려서

가끔 잠자리에 실수도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끝까지 보살펴 줘야지.


동동이에 대한 구슬이의 걱정이 한가득 늘어집니다. 동동이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깊다는 뜻이겠지요?

어쩌지요? 동동이의 멸치깡을 너무 많이 뺏어 먹었나 봅니다. 배탈이 난 구슬이가 ‘아이고, 배야....’하다가 그만 침대에 똥을 뿌지직 싸고 맙니다. 가끔 잠자리에서 실수도 한다며 동동이를 걱정하던 녀석인데 말입니다. ”구슬이! 이 녀석! “ 화산 폭발하듯 아부지의 무서운 질책에 그만 기가 죽었습니다. 베란다로 쫓겨난 구슬이, 오늘 밤은 하울링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눈치는 있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소리로 혼자 울었습니다.


그런데...


동동이가 파란 담요를 들고 살며시 방문을 열고 나오네요. 둘은 나란히 베란다에 누워 함께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사랑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가족이 확실하네요. 제 코끝이 시큰합니다. 책을 선물하신 늘그래님이 우셨다고 하더니.....



개랑 친해볼까요?


개는 우리 인류와 가장 먼저 함께 생활한 동물이라 합니다. 맹수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밤 보초를 서는 구석기인, 또 허접한 도구를 들고 위험한 사냥에 나서야 하는 그들을 상상해 봅니다. 그들 옆에 함께 하는 개는 인류에게 얼마나 든든한 존재였을까요? 가끔 극심한 식량난에 내몰리면 잡아먹기도 했겠지만요.

2023년 기준,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 인구 비율은 28.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약 1410만 명이 반려동물을 키운다니(고양이보다 개를 훨씬 많이 키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개 사랑은 대단합니다.

저는 여전히 반려견을 키울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산책길에 너무나 자주 만나는 개들을 좀 더 다정하게 바라볼 것 같습니다. 부디 "우리 애는 안 무서워요"하며 목줄 풀고 다니는 분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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