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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나, 꽃으로 태어났어>

꽃의 계절에 어울리는 <나, 꽃으로 태어났어>

by 김경애

저를 위해 산 첫 그림책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세계가 단절되고 우울한 날들이 이어지던 2020년, 서점에서 예쁜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꿀꿀한 시대의 아픔을 보듬어 줄것 같은, 이름도 예쁜 <나, 꽃으로 태어났어>입니다. 평소 책을 잘 사는 편이지만 자신을 위한 그림책은 처음 사 보았습니다. 그림책이 정말 제 삶에 스며들고 있었네요.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여 의기소침하던 시절, 6월 그림책 모임에 이 그림책을 가방에 담고 뿌듯하게 출석하였습니다. 마스크 속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서로 안부를 묻는 시간이 지나고 가져온 그림책들을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짜잔, 제가 제일 먼저 책을 꺼냅니다. 전리품을 자랑하듯 의기양양하게 <나, 꽃으로 태어났어>를 소개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멤버들의 탄성이 나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으쓱거려지는 순간입니다.



이후 K는 이 그림책을 엄마께 선물로 사드렸다고 전해왔습니다.

표지 그림


책의 세로는 가로의 두 배쯤으로 날씬합니다. 커다랗고 따스한 노란 해님 아래로 빨강과 연초록의 꽃이 피어 있네요. 가는 꽃대 위로 무당벌레 한 마리가 열심히 기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까만색의 줄기잎이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대담한 색 선택을 한 작가에게 끌리는군요.

<나, 꽃으로 태어났어>는 프랑스 작가 엠마 줄리아니가 만든 팝업 그림책입니다. 2014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을 받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고 하네요. 꽃과 함께, 또는 꽃 대신 선물하기도 좋은 책입니다. 저희 집 거실에도 꽤 오랫동안 병풍처럼 세워놓고 페이지를 바꾸어가며 감상하였지요.


나, 꽃으로 태어났어요

한 송이 꽃의 독백을 들어보실래요?

시처럼 간결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따뜻합니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요.

따스한 햇살을 받고

따듯한 기운을 나누며 살아가요.

알록달록 꽃들과 어우러지면

더욱 아름답게 빛나지요.

난 사람들을 가깝게 이어 주고

사랑을 전해 주기도 해요.

아이들의 머리를 예쁘게 꾸며 주고

어른들의 마음을 흥겹게 해 주지요.

세상과 나누는 마지막 인사에도 함께하고요.

난 가녀리고 연약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이겨냅니다.


책을 길게 펼치면 12폭 병풍이 됩니다. 책장을 열면 단순한 흑백 밑그림에 화려한 꽃들이 꽃잎을 열고 피어나는 팝업 장치가 돋보입니다. 섬세한 종이 공예로 완성된 노랑, 초록, 보라, 파랑의 예쁜 색들의 꽃들이 조화롭게 피어 우리를 꽃밭으로 데려가네요. 작고 예쁜 무당벌레는 곳곳에서 꽃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꽃술에 앉아 꿀을 따는 벌도 있네요. 입체적인 그림책이라 하나하나 펼쳐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요 ‘라는 첫 문장은 존재의 선언 같네요. 꽃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이기도 하죠. 사람들을 환대하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도 있지요. 무엇보다 세상 떠나는 날에도 인간은 꽃의 전송을 받는군요! 꽃은 남은 사람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위로하겠지요. 아무 말 없이 존재 그 자체로.


어떤 꽃을 선물 받고 싶으신가요?

<나, 꽃으로 태어났어> 독후 활동을 위해 색연필과 종이를 준비해 갔습니다. ”나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꽃을 그려 보세요 “ 저의 제안에 어린 학생처럼 다들 열심히 그림을 그리시네요. J는 비올라와 은방울꽃을 그렸어요. 은방울 꽃말이 ’ 너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 ‘라고 합니다. 좋은 꽃말이네요. 동심으로 돌아간 이 순간, 우리 모두 이미 행복하였습니다.

저는 아파트 뜰에 피어있는 인디언국화를 그렸습니다. 애써 가꾼 조경수들 사이에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피워낸 기특한 녀석입니다. 산책 때마다 ’ 너 참 이쁘다 ‘ 하며 제가 눈 맞춤을 하는 꽃이지요. 인디언 국화의 꽃말은 '단결''협력'입니다. 무리 지어 피는 모습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공동체적 삶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서라고 하네요.


온 동네가 꽃 세상인 요즈음, 여러분은 어떤 꽃을 선물 받고 싶으신지요? 우리 모두가 이미 꽃이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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