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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화가의 집, 박노수미술관>

빨간 벽돌집과 비밀의 정원 <화가의 집, 박노수미술관>

by 김경애


선물로 온 <화가의 집, 박노수 미술관>


24년 6월, <황보람의 저니> 북 콘서트에 참여하였습니다. 뒤풀이에서 황보람 작가님을 중심으로 얼떨결에 글쓰기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죽을 때는 작가로 죽고 싶다”는 작가님을 리더로 2주에 한 번씩 만나다가 이젠 한 달에 한번 모입니다. 각자 써온 글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황작가님의 전문적인 코멘트와 활동 방향에 대한 조언도 이어집니다. 제가 브런치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하고 글을 올리게 된 동기도 모두 이 모임의 힘입니다.

황작가께서 지은 우리 모임의 이름은 ‘쓺’. 나이, 직업, 인생스토리도 모두 다양한 6명의 글을 통해 현재의 고민, 가족사, 건강 문제, 삶의 계획 등 내밀한 이야기까지 살짝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친목 모임이라 해야 할 정도로 정이 들어 만나면 안부 나누는 시간이 자꾸 길어집니다. 멤버 중 청일점 레옹님이 3월 모임 때 책 선물을 가져오셨어요. 한참 글쓰기에 물이 오른 늘그래님께는 <글쓰기의 최전선>을, 황작가의 초등학교 입학생 아들을 위한 책으로는 <돌아온 고릴라와 너구리>를, 브런치에 그림책 소개를 하고 있는 제게는 <화가의 집, 박노수 미술관>을 주시네요. ‘어떤 책이 좋을까?’ 고민한 흔적이 있는 다정한 선물을 받은 우리는 당연히 감동했고요.



표지 그림


짙은 파란색의 표지에 <화가의 집, 박노수 미술관> 제목이 아담하게 있습니다. 파란색은 박노수 화백이 가장 좋아한 색이라네요. 창을 내듯 크게 뚫은 표지의 구멍 사이로 빨간 벽돌의 이 층집 박노수미술관이 있습니다. 관람객인 할아버지와 손자가 눈을 마주 보며 서 있는 뒷모습이 보이네요. 손자의 어깨에 두른 할아버지의 팔에서 지극한 손자 사랑이 느껴집니다. 머플러를 두르신 모습은 물론 손자와 함께 이런 미술관을 방문한 할아버지는 정말 멋진 분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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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할머니가 되면 손주를 데리고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보니 제 꿈도 벌써 부풀어 오르네요. 할머니 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

‘동양화를 알려주는 빨간 벽돌집과 비밀의 정원’이라는 부제도 있습니다. 표지를 넘겨 비밀의 정원으로 우리도 함께 들어가 볼까요?



박노수미술관을 소개합니다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박노수미술관은 화가인 박노수 선생님이 40년 넘게 살았던 집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지어졌으니 이 빨간 벽돌집은 나이가 90세 가깝네요. 한옥과 서양식 주택의 장점을 살려 온돌과 마루를 깔았고 벽난로도 세 개나 만들었다고 합니다.

1973년에 이 집에 이사 오신 박노수 화백은 40년 가까이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열심히 집과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 문 앞에 “정원, 나무, 수석 모두 작가의 작품입니다”라고 적혀 있답니다. ‘비밀의 정원’이라는 부제답게 정원이 무척 아름다워 몇 년 전에 방문했던 저도 정원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노수 화백이 서울시 종로구에 이 집을 기증한 덕분에 2013년 9월에 미술관으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화가가 기증한 그림들과 함께 평생 수집한 고미술품, 수석, 고가구 등 총 1000여 점의 풍부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네요.

손에 꼭 쥐지 않고 세상에 내 보냄으로써 화가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그의 예술적 유산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더 이롭게 하는 아름다운 기증입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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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박노수 화백의 그림 세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박노수 화백(1927-2013)은 동양화가이자 한국화가, 그리고 교육자였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한국화 전공)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1956-1962)와 서울대학교(1962-1982)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이후는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셨다네요.

그림책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글밥이 꽤 많아 초등학생이상의 어린이부터 어른들이 보면 좋을 듯합니다. 도슨트 역할의 할아버지는 자세하면서도 쉬운 설명으로 손자를 그림의 세계로 이끕니다. 손자도 영특합니다. 십장생, 신여성, 개국공신, 자화상, 시서화 일치, 산수화, 수묵담채화 등의 어려운 말로 이루어진 설명을 질문해 가며 잘 이해합니다. 요새 한자 공부를 꽤 열심히 하고 있다는 대화를 미루어 보아 초등학교 4학년쯤은 되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림책에 소개된 박노수 화백의 작품은 꽤 많습니다. 그중 <선소운>(1955)에 눈이 갑니다. 역시 1955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네요. ‘신선이 부는 퉁소 소리’라는 뜻의 <선소운>은 검은색 한복을 입은 여인을 그린 작품입니다. 눈길을 확 끄네요.

손자 : 한복색깔이 검은색인 게 특이해요. 예쁜 색도 많았을 텐데 굳이 검은색으로 칠한 이유가 뭘까요?


할아버지 : 어둡고 짙은 색으로 알 수 없는 여인의 마음을 표현한 건 아닐까? 박노수 화백은 검은색 한복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었대


할아버지의 답이 멋집니다. 그런데 어린 손자가 이 뜻을 알아들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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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그림을 하나 더 볼까요? <호반>(1978)입니다.

할아버지 : <호반>이라는 그림이란다. 어린 시절 산천에서 맘껏 뛰놀던 박노수 화백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어. 그리고 그 속에 소년을 그려 놓곤 했단다. 소년은 바위 위에 앉아 있거나 대금을 부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해. 때로는 소년 옆에 말을 그려 넣기도 했어


손자 : <수렵도>가 화려하고 강렬했다면, <호반>은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져요. <수렵도>에는 흑마를 그렸는데, <호반>에는 백마를 그렸네요.


어린 관람자의 평이 예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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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여의> - 기쁘고 복된 일이 항상 일어나라


그림책의 글 작가 송희경 님은 옛 그림에 빠져 한국미술사를 공부한 분입니다. 박노수미술관과 그의 작품 세계를 편안하게 소개하는 안내서 같은 그림책을 써셨네요. 화가의 작품세계와 더 많은 그림은 그림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 미술관을 방문하시는 게 제일 좋겠네요!

곧 모란이 피는 계절입니다. 저도 친구들과의 함께 다시 미술관에 가보려 합니다. 정원의 모란도 보고 박노수 화백이 모란을 그린 작품 <길상여의>(1973)도 보려고요. 이제 미술관 정원과 그의 작품들이 훨씬 더 다정하게 다가올 듯합니다. 물론 이 그림책을 들고 가 목에 힘주고 친구들에게 도슨트 흉내를 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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