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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커다란 순무>

함께 거둔 <커다란 순무>

by 김경애 Mar 23. 2025

 

오래된 그림책 <커다란 순무>       


  스물 여덟에 결혼한 저는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서울의 서초구, 중랑구, 노원구, 동작구를 거쳐 지금은 은평구에서 살고 있지요. 일산에서도 잠시 살았고, 40대에는 대전에서도 10년을 살았습니다. 남편의 책이 많 이사 때마다 아이들 책은 나눠주거나 버렸습니다. 그중 아들이 좋아했던 만화 <그리스`로마신화>, 만화 <삼국지>를 주어버린 일은 지금까지도 원망을 받고 있습니다.   

   

   그림책 모임의 M은 초창기 멤버는 아니지만 함께 한 지 4년이 넘었습니다. 줄곧 두 아들이 보던 그림책을 가지고 옵니다. 우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많았죠. 제가 놀라는 점은 다양한 그림책과 많은 권수가 아니라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25년 3월의 그림책 모임에 M이 가져온 <커다란 순무>도 역시 아이들이 보던 오래전 책이네요. 자그마한 판본의 얇은 이 그림책을 보며 멤버들 모두 즐거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표정 등 그림을 천천히 살펴보고 싶어 M에게 빌려왔습니다. 함께 이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표지 그림   


  그림책 제목처럼 아주 커다란 순무 위에 세 사람이 올라 가 있습니다. 아, 검은 개 한 마리도 함께 있네요. 할아버지가 할머니 어깨를 팔로 두르고 있습니다. 왜소한 할아버지에 비해 커다란 몸집의 할머니는 씩씩해 보입니다. 이 집안의 든든한 기둥처럼 보이네요. 두 턱이 아닌 세 턱에 살짝 콧수염까지 보이지만 할머니는 멋쟁이입니다. 검은색 바탕의 예쁜 무늬가 있는 원피스, 앞이 뾰족한 굽 있는 회색 부츠는 또 어떤지요? 이젠 원피스를 입고도 운동화나 아주 낮은 구두밖에 신지 못하는 저로서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순무 꼬리에 타고 있는 소녀는 손녀인 것 같습니다. 할머니와 코가 똑같네요.     


브런치 글 이미지 1



 커다란 순무   


   옛날 옛날에 한 할아버지가 조그만 순무 씨 한 알을 땅에 심고서

“순무야, 순무야, 조그만 순무야, 달콤하게 자라렴.

순무야, 순무야, 조그만 순무야, 단단하게 자라렴” 했대요

그래서 순무는 달콤하고 단단하게 자랐고,

커다랗고 높다랗게도 자랐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순무를 뽑으러 왔는데 아무리 잡아당겨도 순무가 뽑히질 않는 거예요. 선하고 작은 눈, 자그마한 체구의 대머리 할아버지는 몸집에 비해 커다란 장화를 신었습니다. 그가 성실한 농부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꼬불꼬불 긴 수염은 할아버지의 매력이네요.     


  할아버지는 집안에 있는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할머니의 포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원피스는 물론 숄도 여간 세련된 게 아닙니다. 집안은 또 얼마나 잘 꾸며놓았는지요? 꽃무늬 소파, 타원형 러그,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 큰 시계, 작은 티 테이블에 놓인 차 도구, 꽃병..... 앵무새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할머니는 시크하게 할아버지를 바라봅니다. 눈 아래와 입가에 주름이 진하네요.  착하고 어진 할머니도 좋지만 저는 이렇게 포스 있는 할머니에게 더 매력을 느낍니다. 게다가 일상의 멋을 제대로 아는 할머니라니요?   


브런치 글 이미지 2


   

  두 사람은 순무를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겼는데, 순무가 뽑히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가 손녀를 불렀습니다. 나무 위에서 책을 보던 손녀가 내려와 함께 순무를 잡아당겼는데 뽑히질 않습니다. 손녀는 검둥개를 불렀습니다. 소파에 누워 낮잠이라도 자고 있었던 걸까요? 검둥개의 표정이 귀찮은 듯 시큰둥합니다.    

  

  세 사람과 한 동물이 순무를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겼는데 순무가 뽑히질 않는 거예요. 검둥개가 고양이를 불렀습니다. “왜 귀찮게 해”라는 듯 고양이가 째려봅니다.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네요. 화가 난 듯 몸에 털이 꼿꼿이 서 있습니다.

   

  이제 세 사람과 두 동물은 순무를 잡아당깁니다. 그래도 순무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림을 그린 작가의 역량이 돋보입니다. 앞 페이지로 돌아가 보니 다양한 각도에서 순무를 뽑는 그림을 그렸군요. 탁월한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이 돋보입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이제 고양이가 쥐를 불렀습니다. 개에게 불려 나가던 그 앙칼지던 고양이 맞나요? 순하고 조그맣게 그려져 있네요. 대신 쥐는 아주 큽니다. 부탁을 하는 이는 을, 부탁을 받은 이는 갑. 인간사회의 역학관계를 그림으로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쥐는 고양이를 붙들고

고양이는 개를 물고

개는 손녀를 물고

손녀는 할머니를 붙들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붙들고

할아버지는 순무를 붙들었습니다.

세 사람과 세 동물이 순무를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겼는데

마침내 순무가 쑥 뽑혔다는군요


브런치 글 이미지 4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둥근 식탁 위에 커다란 순무가 놓여 있네요. 세 사람과 세 동물도 함께합니다. 뿌듯한 표정의 할아버지는 좀 더 힘 있어 보입니다. 케이크같이 순무에 칼이 꽂혀있네요. 함께 애쓴 노력의 결과이니  모두 만찬을 즐겨야겠죠? 할아버지의 주문처럼 틀림없이 순무는 달콤할 테니까요.


          

  그림책이 그림책을 불러오다 

  

  그림책은 보통 글쓴이가 먼저 소개되는데 이 책은 그림 작가 이름이 먼저 나오네요. 그린이 헬린 옥슨버리는 1938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무대 디자인을 공부하였고 존 버닝햄과 결혼한 뒤 본격적인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다는군요. 존 버닝햄이라고요? 제가 ‘내 마음에 스며든 그림책이야기’ 1화에 소개한 <지각대장 존>을 그린 분이네요. 마치 놀라운 발견을 한 듯 신기합니다.


  앎이 또 다른 공부를 불러오듯, 그림책이 또 다른 그림책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옵니다.  헬린 옥슨버리는  <빅 마마, 세상을 만들다>로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상을, <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로 스마티즈 상을 받으면서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았다는군요. <곰 사냥을 떠나자>, <찰리가 온 첫날밤>, <용감한 잭 선장과 해적들> 들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두근두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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