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아주 특별한 생일 케이크>
”어린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자잘한 것들을 그릴 수 있다.
이것들은 이야기와 꼭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
<아주 특별한 생일 케이크>를 쓰고 그린 스웨덴 작가 스벤 누르드크비스트의 말입니다.
이 책은 지난주 그림책 모임 때 J가 들고 와 소개해주었어요. 10년 전인 2015년, 저자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J가 행사에 참석하여 사인까지 받아온 '특별한 책'이라네요. 글밥도 많고 그림이 재미있어 빌려왔습니다. 집에서 꼼꼼히 다시 보고 싶었거든요. 역시나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의 매력을 더해주는 것은 그림에 있습니다. 스토리도 물론 재미있습니다만.
그림책의 주인공은 페테르손 할아버지와 고양이 핀두스입니다. 핀두스의 생일날,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라 특별한 애정이 있는 할아버지는 케이크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밀가루가 떨어져 마을로 사러 나가려는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할아버지는 무사히 생일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까요? 핀두스는 특별한 생일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까요?
옛날에 어떤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어.
이름은 페테르손이고,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지
고양이 이름은 핀두스였어.
할아버지와 핀두스는 조그마한 빨간 집에서 살았지
집에는 정원이 있고, 목공일을 하는 광과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 그리고 닭장과 뒷간이 하나씩 있었어.
주위는 풀밭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조금 더 가면 숲이 있었지
숲과 목초지,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할아버지의 오래된 집이 정말 예쁘네요. 빨간 지붕과 빨간 나무벽이 동화 속 마을 같습니다.
핀두스의 생일은 일 년에 세 번이야.
왜냐고? 그야 그게 훨씬 재미있으니까 그렇지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로 일상의 규범을 바꾸는 이 할아버지, 괴짜의 면모를 보여주네요.
늘 그렇듯이 그날도 할아버지는 닭장에 가서 달걀을 꺼내 왔어
그리고는 부엌문 앞 벤치에 앉아 달걀을 닦았지.
할아버지는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핀두스는 벤치 위를 왔다 갔다 하며 이제나 저제나 케이크 굽기만을 기다렸지.
달걀을 쓰다듬듯 섬세하게 닦고 있는 할아버지와 그 옆에 서서 마음 바빠 보이는 핀두스가 재미있습니다. 뒷짐을 지고 째려보는 핀두스, 고양이가 주인이고 사람이 집사라더니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역시나 핀두스의 핀잔이 날아오네요.
“할아버지, 지금 꼭 달걀을 닦으셔야 해요?”
핀두스가 화난 소리로 물었어.
“그러다가는 케이크를 다 굽기도 전에 다시 생일이 돌아오겠어요”
핀두스의 성화에 할아버지는 달걀 세 개를 갖고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할아버지는 큰 그릇에 달걀을 깨뜨리고 우유와 설탕, 소금과 버터 그리고 밀가루를 넣을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밀가루가 없네요. 찬장, 오븐, 옷장과 부엌 의자 속까지 뒤졌지만, 어디에도 밀가루는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밀가루를 사려고 마을로 가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탑니다. 우째요? 뒷바퀴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있네요. 할아버지는 광에 가서 연장을 가져와 타이어를 고치려 합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광문을 열려고 보니까 열쇠도 꽂혀 있지 않고, 문도 열리지 않네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문이 잠긴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는데. 핀두스, 네가 열쇠에 손댔니?”
“전 열쇠에 손댄 적이 없는데요”
핀두스는 몹시 기분 나빠하며 대답했어.
서로 아끼고 의지하고 보살피는 사이지만 여느 가족처럼 오해와 갈등으로 티격태격도 합니다. 핀두스가 우물 속에 빠져있는 열쇠를 발견하네요. 할아버지는 긴 장대에 갈퀴를 묶어 열쇠를 건져 올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냅니다.
“내가 긴 장대를 찾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렴. 열쇠를 건지면 광을 열고, 연장을 가져와 자전거 바퀴를 고친 다음, 마을로 가서 밀가루를 사다가 케이크를 굽는 거야”
일이 자꾸 꼬여 화가 날 만도 한데 할아버지는 참 느긋합니다. 할아버지의 큰 장점이네요. 짜증 내지 않고 하나하나씩 순차적으로 풀어가는 태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할아버지는 광 다락에 기다란 낚싯대를 둔 생각이 떠올라 사다리를 찾습니다.
그런데 사다리를 찾아보니 장작 헛간 뒤 옆집 안데르손네 풀밭에 있지 뭐야.
게다가 안데르손네 사나운 황소가 사다리를 베개 삼아 자고 있었어.
일이 아주 어렵게 되었지.
황소가 깨어나면 틀림없이 몹시 화를 낼 테니까.
그렇담 어떻게든 황소를 다른 곳으로 꼬여 내야 했어.
할아버지는 어떤 묘책을 내놓을까요? 핀두스에게 투우를 시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핀두스는 투우를 할 줄 모른다고 거절하죠.
할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말했어
”우리가 황소를 다른 곳으로 꼬여 내지 못하면, 난 사다리를 가져올 수 없단다. 사다리가 없으면 낚싯대를 꺼내 올 수 없고, 낚싯대가 없으면 열쇠를 건질 수가 없고, 열쇠가 없으면 광에 들어가 연장을 가져올 수도 없지. 연장이 없으면 자전거도 고치지 못하니 마을로 가서 밀가루도 사 올 수 없을 거고. 당연히 케이크도 못 만들겠지. 케이크 없는 생일이라니, 괜찮겠니? “
이 할아버지, 설득의 심리학을 공부하셨나요? 마침내 핀두스의 협조를 얻어냅니다. 할아버지는 빨강 꽃무늬가 있는 노랑 커튼을 떼어 들고 와 핀두스의 꼬리에 묶었습니다. 방에 가서 나팔 달린 축음기와 레코드판을 가져와 황소가 잠자고 있는 풀밭 쪽을 향해 놓았지요. 갑자기 크게 울려 퍼진 노랫소리에 황소가 깜짝 놀라 잠이 깼습니다. 화가 난 황소는 핀두스 앞에 놓인 축음기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꼬리에 빨강노랑 꽃무늬 커튼을 나부끼며 핀두스는 달아납니다. 이리저리 달리는 핀두스를 쫓느라 기진맥진해진 황소가 풀밭 저 쪽 끝에 서 있는 사이, 할아버지는 사다리를 가지고 올 수 있었어요. 핀두스와 할아버지가 힘을 합쳐 멋지게 문제를 해결했군요!
할아버지는 지붕으로 올라가서 천창을 통해 광 다락으로 내려가 낚싯대를 찾았고, 그걸로 우물 속의 열쇠를 건져 올려 광 문을 열었고, 광에서 연장을 가져다 자전거를 고쳤고,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가서 밀가루와 새 바지를 산 다음, 집으로 돌아와 핀두스를 위해 맛있는 케이크를 구워 주었거든.
할아버지와 핀두스는 정원에 앉아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하게 축음기에서 나오는 비엔나 왈츠를 들었습니다. 핀두스 생일에 늘 하던 대로 말입니다.
페테르손 할아버지와 핀두스의 이야기를 담은 <핀두스> 시리즈는 영화와 게임이 나왔을 정도로 여러 나라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합니다. 스벤 누르드크비스트의 책에서 유머와 따뜻한 스토리는 물론 그림책에 등장하는 생활 속 여러 물건들과 여러 동물들을 세세하게 살펴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보기에도 아주 좋은 책이네요.
제가 제일 마음에 든 그림은, 먹음직스러운 산딸기 아래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쥐! 안경을 쓰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네요. 옆 테이블에는 맛있어 보이는 주스도 있습니다. 조그만 물 웅덩이는 쥐를 위한 전용 호수 같습니다. 놀이배까지 있어요. 숨은 그림 찾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꾸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핀두스와 할아버지가 함께하는 매일이 기발한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