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단순함을 실천한 이야기 <월든>
도서관 서가에서 그림책 <월든>을 만났습니다. 수필집 <월든>은 꽤 오래전에 읽어 내용이 가물합니다. 그러나 자연과 함께한 소로의 단순한 삶이 아름답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림책에서는 어떻게 풀어내었을까? 궁금하여 얼른 빌려왔습니다.
그림을 그린 지오반니 만나는 데이비드 소로를 만화 주인공처럼 젊고 멋있게 그려놓았네요. 제가 상상한 소로는 시골 냄새 풍기는 소박한 아저씨인데 말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동식물 연구가 겸 수필가입니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1845년부터 1847년까지 2년 2개월 동안 살았습니다. 자급자족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단순한 삶을 실천하였지요.
그 2년간의 삶을 쓴 <월든>은 1854년 출판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 철종 때이니 꽤나 오래전입니다.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네요. 현대에 오면서 과잉 소비와 그에 따른 긴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간소한 삶이 주는 가치에 공감하면서 이제는 고전이 된 수필이라고 합니다.
그림책에는 소로가 2년을 보낸 숲 생활이 계절에 따라 1년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의 숲에 집을 짓고 혼자 살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과도 1.6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요.
나무로 지은 조그마한 집에는 다락방과 벽장, 벽돌로 만든 벽난로도 있었다는군요.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것이었다.
자발적 고독을 선택하여 삶의 정수를 깊이 빨아들이고 싶었다는 소로이지만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교유도 열어 놓았네요. 은둔이 아닌 소로의 이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따로 또 같이!’
나의 가장 좋은 방,
언제든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응접실은 바로 집 뒤에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그곳에는 햇빛도 거의 닿지 않아 아주 보드라운 이끼 카펫이 깔려 있었다.
정말 멋진 응접실이군요. 저도 이곳에 초대받아 보드라운 이끼 카펫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오가는 대화가 많지 않아도 충만한 만남일 듯합니다.
소로는 새들 가까이에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새들과 이웃이 되었습니다. 숲에서 맞이한 첫 번째 여름, 콩밭을 일구어야 했기 때문에 책을 읽지 못했다고도 합니다.
날마다 맞이하는 아침은 내게 자연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삶을 꾸려가라고 권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 했다.
이는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으로,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었다.
우와! 호수를 독차지하여 아침 일찍 몸을 담그는 소로. 단순한 씻기가 아니라 그의 고백처럼 종교적인 의식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다는 표현을 이렇게 멋지게 합니다. 시인이네요, 소로는.
호수에서 큰 소리로 웃어 대는 물새나 월든 호수 자체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초원에 홀로 피어 있는 노란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말파리, 호박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겨울이 왔습니다.
나는 몇 차례 눈보라를 즐겁게 겪었다.
밖에서는 해가 지면 어김없이 울던 올빼미마저 조용한 가운데
눈발이 이리저리 사납게 휘날렸지만
나는 난롯가에서 꽤 유쾌한 겨울밤을 보냈다.
난롯가에 앉아 책을 읽는 소로는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충만해 보입니다. 물질주의와 사회 관습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진정한 나’와 ‘고독’을 친구 삼아 ‘삶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바람이 다 이루어진 듯합니다.
봄을 알리듯 첫 참새가 날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젊은 희망과 함께 새해가 시작되었다.
멀리서 파랑새와 멧종다리와 개똥지빠귀가 낭랑하게 지저귀는 소리가 눈이 녹아 군데군데 헐벗고 촉촉한 들판을 가로질러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치 겨울의 마지막 눈조각들이 떨어지면서 딸랑딸랑 은방울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햇빛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과 여름날을 마음껏 누렸다는 점에서 나는 부자였다.
저는 EBS TV의 ‘세계 테마기행’과 ‘한국 기행’을 즐겨봅니다. ‘세계 테마기행’은 지구촌 곳곳을 직접 다녀보고 싶지만 자주 갈 수는 없는 낯선 세계를 소개해주기 때문이죠.
‘한국기행’으로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며 대리 충족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지만, 도시가 주는 생동감과 다양한 문화를 누리고 싶어 저는 앞으로도 주욱 도시에서 살듯합니다.
호숫가에 살았던 소로처럼, 또 ‘한국기행’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연으로 쑤욱 들어가 살 수는 없지만 많이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소로의 메시지를 기억하려 합니다. 성공의 외부적인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진짜 의미’를 궁구하고 실천하고 싶습니다. 자발적인 단순함을 추구하면서요. 도시에서도 가능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