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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Nov 08. 2024

오늘을 산다는 건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어제 C와 멘자(Mensa)*에 들렀다가 시내를 걷는데 충동적으로 메디안마크트(Mediamarkt)**에서 새로운 휴대폰을 샀다. 지난날 빨래를 널다 바닥에 휴대폰을 떨어뜨렸는데 어이없게 액정이 나간 탓이다. 집으로 돌아와 주방에서 언박싱을 하고, C의 방에 비집고 들어와 구 휴대폰에서 신 휴대폰으로 데이터를 옮겨 업데이트를 마치니 오후가 다 가 있다. 아직 구 휴대폰과 작별할 시간이 필요한데…, 하는 질척대는 생각은 신 휴대폰에는 맞지 않은 이전의 케이스를 다 정리함으로써 말끔히 사라졌다.


저녁엔 이번 학기부터 우니슈포트(Unisport)***의 학기권을 끊었다. 그중에서 '컨템프러리 댄스'라는 수업을 듣고 있는데 대중가요에 맞춰 격렬하지 않은 안무를 배우는 것이다.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재미를 느껴야 지속할 수 있으니 그나마 제공되는 수업 중 재밌어 보이는 것으로 골랐는데, W도 공교롭게 함께 듣게 되어 매주 설레는 마음 반 긴장 반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늘은 발레가 살짝 접목된 자세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난주보다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서 따라 하기에 무리인 동작은 없었다. 수강생들이 워낙 많아 홀을 가득 메울 정도라 강습이 끝나고 마지막에는 임의로 그룹을 나눠 영상을 찍는다. 내가 속한 그룹의 차례가 되어 쭈뼛대고 있는데 "Nobody is judging."이라는 선생님의 말이 들린다. 지난주 영상을 찍을 땐 춤을 추는 내 모습이 스스로 어색하기도 하고 민망하여 감정을 잡기보단 그저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심지어 키득대기까지 했는데, 이번엔 흘러나오는 음악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열중. 일상에서 은근히 자주 겪지 못하는 활동이다.


그리하여 어떤 문장을 떠올린다. <시간도 계절도 우리를 기다려주진 않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오늘을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일기의 말미에 또 어디서 본 문장을 이어 썼다.

오늘을 산다는 건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후회와 그리움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담대함을 가질 줄 아는 사람만이 오늘의 나에 집중한다. 사랑의 동력이 용기인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에만 머무는 비정상의 상태니까. 영원한 것이 없기에 오늘은 더 빛이 난다.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변질되는 걸 목격하며 그 가치에 더 무게를 둔다. 비록 오늘이 최고의 날은 아닐지언정, 과거와 미래 어느 곳에도 없을 유일한 날인 걸 인지하면 슬프면서도 용기가 난다.


* 대학생 및 교직원이 이용하는 학생식당. 학생증 및 교원증에 돈을 충전한 후 계산하며, 외부인도 출입하여 식사를 할 수 있으나 학생 및 교직원보다 비싼 금액을 지불한다. 독일은 대학 캠퍼스가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심한 경우 단과대학 건물마다 달리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학생식당도 몇 군데로 분포되어 있다. 단품 혹은 뷔페형식으로 식사가 제공되며, 들어가는 재료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비건이나 베지테리안,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선택권이 있다.

** 우리나라로 치면 하이마트.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독일 전역의 프랜차이즈 마켓이다.

*** 대학에서 학기마다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학생 할인 가격으로 학기권을 끊으면 스포츠 센터 건물에 출입할 수 있어 제공되는 수업과 헬스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 김신지, <요즘 사는 맛 2> 중에서.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600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74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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