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의 어여쁜 나의 사람들, 그리고 영감
어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내서였을까.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 있다.
일기를 쓰고는 시리얼과 커피로 점심을 때우는데 J와 즉흥적으로 오후 약속을 잡았다. 본래 S와 점심 때에 통화를 하자 선약을 했던 터라 조금 이른 시간에 다이얼을 눌렀다. 나의 얘기만을 양껏 늘어놓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나의 실없는 이야기로 친구가 잠시 웃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변명을 붙인다. 지난 번 독일에서 만났을 때 연애사를 기쁘게 꺼낸 것이 오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지난 번 통화에서 충분히 나누지 못했던 것 같아 그에 대해 마저 뒤이은 이야기를 들었다. 불안정 애착형 연애. 마음이 깊어질수록 더 불안해지는 마음에, 나아가 이름을 붙일 바 없는 관계에서는 그 불안감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애착이 집착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한숨 섞인 목소리로 S가 말한다. 이러한 마음속 사정을 당사자에게 털어놓았지만 설령 그 관계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불안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현자일 리 없는 나는 나의 개인적 생각을 늘여놓았을 뿐이다. 그럴 때는 말이지, 차라리 상대를 질리도록 더 만나. 예를 들자면 나는 금세 질려하는 성정이라 무엇이든 누군가이든 빨리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오히려 그곳에 나를 푹 담구어버리거든. 그러면 그 대상의 볼 꼴 못 볼 꼴을 다 보면서 오히려 조금은 편하게 마음의 무게를 점점 덜 수가 있더라고. 하지만 S는 대답했다. 그러다 그 사람의 못난 모습까지 사랑하게 되면, 그땐 마음의 무게가 보다 더 무거워져서 빠져나올 노릇이 없게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 이쯤에서 작위적으로라도 멈추는 것이 나을 거라고 자신의 생각을 다시 말했다. 그래, 어쩌면 인력으로 멈출 수 있는 것도 사랑의 한 몫일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완전히 질리기 위해 동굴로 더 들어가는 나 식의 답은, 완전한 정답도 아닌 것이다.
J와의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다음을 기약하며 통화를 급히 끊어야 했다. 이 날의 기억을 반추하며 글을 쓰는 지금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후반부 장면을 틀어두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인 엘리오에게 아버지가 자신의 진솔한 생각을 들려주는 장면이 재생된다. 거기에 나온 대사가 꽤나 S와의 통화 내용과 어울리는 것 같아 여기에 옮겨 둔다. <너도 알 거야,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몸 같은 경우에는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는 때가 와. 근처에라도 와 주면 감사할 정도지.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J와는 카페를 갔다. 실로 오랜만인 만남이다. J는 일 때문인지 다소 여위어 보였는데 바쁘기도 했고 몸이 그간 좀 좋지 않았다 했다. 결국 주중에는 일터가 있는 도시에 머무르고 주말에만 이곳으로 오는 곳으로 거처를 정해야 한다 하니 벌써부터 헤어짐이 예고되는 것 같아 아쉽다. J와의 대화는 늘 내게 생각거리와 그에 수반되는 과제를 안겨주는데, 그것이 기꺼이 반갑다. 비슷한 전공에, 독일에 오기까지 한국에서 비슷한 과정을 겪어왔고 같은 고향에서 왔으며 독일인과 썸이라 부를 만한 경험이 있다는 것도 우리의 공통사에 추가해야 할 듯싶다. 아무래도 썸의 친구가 나의 서툰 언어에 참을성 있게 인내할 만큼의 호의가 있을 테니 단순히 언어의 발달을 위한 대화뿐만 아니라 전공을 위한 기반 지식들 중에 이곳에서 자란 이들만이 알고 있는 것들을 꼼꼼히 물어보아라 조언을 받는다. 더군다나 이제 도서관에 머무를 생각이라 말하니 (그런 것치고는 도서관 근처도 안 가고 지난 한 주가 흐르긴 했다) 지금의 나에겐 책 속 활자로 지식을 얻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 또한 필요했다면 지나온 유학 초기 시절의 이야기도 덧붙인다. J의 말을 정확히는 아니지만 기억나는 대로 추려 옮겨 본다. "잘해나갈 거예요. 우리는 가치가 중요해서 이곳에 와있기를 선택했잖아요. 이미 혼란은 다소 지나갔고 가야 할 길도 다소 정리했지요. 여기서라고 어려움은 없겠냐만은, 그 어려움은 한국에 있더라도 다른 형태로 찾아왔을 거예요. 오히려 이곳에 적응하면서 - 이곳의 풍경과 공기가 익숙해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저 코쟁이들의 얼굴이 더 이상 어색해지지 않는다면 그땐 한국보다 이곳을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 확신해요.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들에겐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으니 적응도 어려울 거예요. 우리 또한 이른바 '헌' 시작을 하는 셈이지만, 우리는 결과가 주류인 선택보다는 마음에 품고 있는 가치를 선택해서 여기로 흘러 들어왔잖아요. 우린 이미 그래서 이곳에서 오히려 잘 견딜 수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많은 걱정은 하지 말고, 무언가 다가오면 그것을 그대로 느끼고 그러면서 한 발자국씩 더 다가가요."
J와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C와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농구를 했다. 도중에 공이 높이 세워져 있는 매트리스 위로 떨어져 버려 공을 꺼내려 해도 손이 닿지 않아 한참을 끙끙거리며 깡충 뛰고 있으니 그 모습이 C의 눈엔 유별나게 보였는지 휴대폰이 있었다면 찍었을 텐데, 라며 공이 손에 닿도록 뒤에서 안아 올려 땀으로 축축한 뒷목에 입을 가져다 댄다. 실은 하루 걸러 매일 가까이하는 멘트나 동작들인데도 땀에 얼룩져 평소와는 또 달라 보이는 얼굴에서 뱉어지는 것이 색다르다. 조금 떨어져 있는 간이 벤치에 앉아 있는 C가 문득 장난기가 돌았는지 여기서 골대에 공을 넣으면 내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냐 묻기에 긍정의 표시로 한쪽 눈썹을 까딱이니 공을 정성스럽게 맞추려는 모습이 귀엽다. 배고파- 칭얼거리면서도 끊일 듯 끊이지 않게 공을 가지고 논다거나 자세를 가르쳐 준다며 시간을 더 보내려 하거나 공을 붙잡고 던지는 내 자세를 보며 피식 웃는다거나 중간중간 마주 보며 땀에 축 절여진 몸을 안고는 느끼성 멘트를 날린다거나 하는 모습도 포함된다. 이런 순간의 말들이, 거기에 잠시 보내는 눈빛과 동작들이 실은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그것으로 하루를 기꺼이 기쁘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이 아이는 알까. 방으로 돌아와 땀을 씻어내고는 이미 밤 11시가 넘어가는 어둑한 밤에 앉아 책을 몇 페이지 읽는 듯 마는 듯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메신저로 '잘 자'라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건 대체 어디서 배운 요망하면서도 깜찍한 기술인지. 또 한 차례 미소가 피어오른다. 침대에 앉아서는 <퀸스 갬빗> 남은 화를 마저 다 보았다. 체스를 천재적으로 두는 소녀는 고아에 두 번째 만난 가족까지도 잃고 늘 혼자인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경연, 보르고프와의 시합에서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의 도움이 한껏 모아지는 장면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독한 천재'라는 말은 실은 실존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 주변에는 늘 그를 염려하고 애정을 쏟는 이들이 분명 있다. 그러니 고독이란 적어도 잘못된 단어인 것이다.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401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70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