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시간]
지인들로부터 의외라고 듣는 것 중 하나가 요리다 요리를 잘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그 이유를 굳이 묻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내 안에 있는 다정함까지는 닿기 어렵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보통 남이 해주는 음식이라면 다 좋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누군가가 차려준 밥을 야무지게 잘 먹는 편이다 하지만 손끝을 지나 시간을 머금고 온전히 내 취향이 배어든 음식을 유달리 좋아한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온기와 기다림의 정성이 깃든 음식을 마주할 때면 단순한 한 끼 이상의 무언가가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내게 음식을 만든다는 건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삶을 채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대충 때우는 식사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 혼자 먹는 밥도 레스토랑처럼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교육이 몸에 깊이 새겨져 그런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귀찮고 의미 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식재료를 고르는 수고와 설거지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사 먹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친다 그럼에도 나는 집밥을 택한다 손의 온기와 기다림과 기꺼운 정성이 그 안에 있고 무엇보다 다정함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요리를 잘할 필요는 없다 정성껏 준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마주한 한 끼 그 기쁨은 생각보다 큰 만족감을 준다 먹고 움직이는 몸에 힘을 더하고 마음 깊은 곳의 허기를 채워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집밥엔 사랑이 배어 있다 어쩌면 집밥의 사랑은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양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은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 행위는 애정이 없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은 소중한 시간을 내어 한 끼의 식사를 함께 나누는 일이다 누군가와 밥을 먹는 순간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행복이었는지도 모른다
요리에 편법은 없다 우회할 수 없고 정성과 마음이 필요한 일이다 삶도 그렇다 서두르면 망가지고 망설이면 흘러간다 결국 삶은 시간을 요리하는 일 때맞춤의 기술이 필요한 고유한 일이다
요리는 책에 적힌 레시피를 따라 한다고 곧바로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손끝에서 익히는 감각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만 나만의 맛이 탄생한다 삶도 비슷하다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위해선 부딪히고 겪고 실수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리의 즐거움은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 맛있게 완성된 음식을 먹는 기쁨도 크지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작은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금을 한 꼬집 넣을까 간장을 반 스푼만 넣을까 고민하는 순간순간 속에서 삶과 요리는 닮아 있음을 느낀다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하려는 마음 그것이 나를 조금씩 성장하게 한다
바쁠 때는 요리를 자주 못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끼만이라도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놓칠 수 없는 기쁨이다 나를 위한 요리를 한다는 건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대접하는 일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게 주어지는 가장 확실한 휴식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음식은 차고 넘치지만 나는 사 먹는 것보다 해 먹는 것에 가치를 두는 마음이 오래도록 한결같았으면 좋겠다 내 손끝에서 펼쳐질 새로운 세계를 기대하며 오늘도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
그리고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네고 싶다 한 숟갈이라도 더 한 끼라도 더 다정한 마음으로 나누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같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마음으로 밥을 나누는 일일지도 모른다 밥을 함께 먹는 순간이 행복하게 느껴진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