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감정]
숟가락을 든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마음이 드는 일이다 혼자일 때도 함께일 때도 밥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 그 짧은 순간에는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따라온다
때로는 망설이고 때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떠보지만 그 위에 얹히는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쩌면 하루치 마음인지도 모른다
혼자 밥을 먹는 시간에는 나도 모르게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입맛이 없다며 국을 밀어내던 날 뜨겁게 끓인 밥 한 공기에 묵은 감정이 퍼질 듯 올라오던 저녁
입에 넣는 한 숟갈이 무언가를 꺼내는 일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다 조용한 식사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나는 나에게 감정을 건네는 법을 배워간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식사할 때 대화보다 먼저 움직이는 건 숟가락이다 눈을 마주치기 어려운 날에도 밥을 먹는 일은 어김없이 이어진다
말이 없던 식탁 어색한 공기를 가르고 누군가 먼저 국을 떠주는 순간의 다정함 그 숟가락에는 아직 말로 옮기지 못한 감정이 담겨 있다
가족과의 식탁에서도 연인과의 저녁 자리에서도 숟가락은 자주 감정을 대신했다 고맙다는 말을 삼킨 채 반찬을 조용히 옮겨주던 밤 미안하다는 말 대신 국그릇을 밀어주던 손 우리는 그렇게 말을 대신해 밥을 건넸고 그 속에 마음을 실었다
밥은 늘 조용하게 준비된다 재료가 다듬어지고 냄비가 끓고 그릇이 데워지고 숟가락이 놓이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도 감정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끝에 숟가락 하나가 조심스럽게 마음을 옮긴다
한 숟갈에는 따뜻한 밥이 오를 때도 있고 조금은 짠 국물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늘 마음이 있다
숟가락 하나로 애써 덜어내고 살며시 건네고 천천히 삼켜내는 감정들 누군가와 밥을 나눈다는 건 그 마음을 조용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숟가락을 든다 그러나 그 위에 담긴 마음까지 함께 떠올릴 수 있을 때 밥은 더 이상 습관이 아니라 삶의 언어가 된다 숟가락 위에 얹힌 마음을 천천히 씹어본다 그렇게 먹은 저녁이 말보다 오래 남아 하루의 끝을 조용히 데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