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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한 Apr 07. 2022

기본소득 아닌, 참여소득

일자리 소멸위기로 청년의 자립과 미래투자를 위한 정책실험이 필요하다

     2020년 한국에서 청년기본소득은 정치판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됐다.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앤드류 양은 ‘문제 해결사(Problem Solver)’를 자처하며 기본소득을 선거공약으로 걸었다. 모든 성인에게 월 1000달러를 조건 없이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무명의 후보에서 단기간에 8%까지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민주당 경선에서 4위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기본소득은 허무맹랑한 포퓰리스트의 이야기로 취급받거나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소멸위기에 대비한 미래 담론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20년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정치판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됐다.


  “빵을 먹고 싶은데 사 먹지 못하면 무슨 자유가 있느냐”며 기본소득을 암시하는 발언을 던져 정치권을 달궜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하루 만에 기자회견(20.6.4)에서 "시기상조"라며 진화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일자리를 갖기 전에 어느 정도 소득을 보장해 줘야 하지 않느냐. 이건 기본소득과는 다르다”며, 청년에 대한 소득보장 정책은 가능하다는 여운을 남겼다. 통합당의 ‘이남자(20대 남성)’ 끌어들이기라는 해석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21대 총선에서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자격으로 모든 대학생ㆍ대학원생에 1인당 100만 원의 코로나19 긴급재난장학금을 주자는 공약을 제시했었다. 
  지난 2020년 10월 6일 국민의당은 모든 청년에게 월 30만~50만 원씩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의힘 소속인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이 청년 기본소득을 실험하겠다고 공언한 지 하루 만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 축소 문제가 심각하다”며 “부족한 재원을 가지고 대응할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는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국민의당은 ‘37대 정책 과제’ 중 첫 번째 과제로 청년 기본소득을 제시했다. 월 30만 원씩 지급할 경우 연 5조 6000억 원, 50만 원씩 주면 약 1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국민의당은 추계했다. 현행 직업훈련과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등 청년정책예산을 합치면 12조 원에 달하며 청년 기본소득 예산으로 돌려서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기도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에 걸쳐 만 24세 청년 개인에게 분기당 25만 원, 연 10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 기본소득제도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서초구의 청년 300명에게 2년간 1인당 1250만원을 지급하겠다던 ‘청년기본소득’ 실험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논란이 구의회를 중심으로 이어지면서  2021년 8월 사실상 무산됐다. 


   ‘정치 공동체(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일정한 금액의 현금을 자격심사 없이, 반대급부 요구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것’, 2009년 만들어진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의 세 가지 핵심적 특징으로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을 꼽고 있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선별해 지급하는 게 아니며 여건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최우선 요소다. 우리보다 앞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서구 학계에서 이 개념을 통상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으로 명명하는 이유다. 보충적 특징으로는 ‘정기성’과 ‘현금성’을 든다. 

<(좌)토마스페인(출처:주한미국대사관 블로거) / (우)밀턴프리드먼(출처:한국경제, '경제사상사 여행('12.11.30)'>

  기본소득은 영국사람이지만 미국 독립전쟁을 주도해서 미국 국부의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는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그는 ≪농업적 정의(1796)≫라는 책에서 토지는 인류의 공동자산이며, 토지를 사유하고 있는 사람은 지대를 내야 한다고 하였다. 나아가 지대를 재원으로 해서 21살이 되는 모든 사람에게 15파운드를 지급하고 50살이 되는 사람에게 매년 10파운드씩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것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며, 박애가 아니라 정의다”라고 했다. 기본소득은 모든 이가 사회에 대해 일종의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시작된 주장이다.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토지뿐만 아니라 지식까지도 공유자산으로 보았다. 경제활동을 통해서 버는 소득의 90%는 다른 사람, 앞선 세대의 지식을 활용한 대가이므로 경제활동에 대하여 약간의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서 90%가 아니라 70%의 세율로 과세하여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하였다.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로는 1960년대 우파적 사상가이자 노벨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주장한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가 있다. 최저 생계비보다 적게 버는 모든 사람에게 그 차액을 국가가 보조금으로 메워주자는 주장으로서 프리드먼은 복지를 개혁해 마이너스 소득세로 통합하고자 하였다.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을 들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 4·7 보궐선거를 통해 10년 만에 서울시로 복귀한 오세훈 시장이 공약으로 제시한 '안심소득'은 ‘마이너스 소득세’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박기성 교수(성신여대 경제학)가 창안한 제도이다. 서울시는 2025년 3월까지 중위소득 85%(소득 하위 33%) 이하, 재산 3억 2600만 원 이하 800가구에 중위소득 85%에 못 미치는 금액의 절반을 서울시가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2022년도 예산에 74억 원을 반영했다.(출처: 국민일보, 2021.11.22) 하지만, 민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시의회에서 이른바 ‘오세훈 사업’인 안심소득의 예산을  52% 삭감하였다.

기본소득은 충분한 실험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스위스, 핀란드도 여전히 실험중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2021.2.10) 스탠퍼드대 기본소득 실험실(BIL·Basic Income Lab)이 집계해 홈페이지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핀란드 등 전 세계 39곳에서 기본소득제 관련 실험이 완료됐고, 독일, 스페인, 이란 등 17곳에서 진행 중이다. 또한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 등 8곳에서 관련 실험이 진행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에서 경기도가 추진하는 청년기본소득과 농촌기본소득 정책도 각각 '기본소득 실험 진행 중인 사례', '제안된 사례'로 소개됐다. 하지만 기본소득제도의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등의 필수 기준을 충족하는 모델로는 미국 알래스카 주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 2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본소득제를 두고 "알래스카 빼고는 그것을 하는 곳이 없다."라고 지적한 발언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알래스카주는 "주의 자원은 주민의 소유"라는 주 헌법에 따라 1976년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 일부를 활용해 알래스카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을 조성했으며, 1982년부터 기금 수익금 일부를 주 거주기간 1년 이상인 모든 주민에게 매년 지급한다. 액수는 영구기금 실적의 5년 평균에 근거해 결정되는데 초기에 1인당 연 300달러 수준이던 배당금은 2008년 2000달러를 넘어섰다.


  기본소득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논의와 정책실험은 스위스와 핀란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기본 소득을 제공해야 하며 기본 소득은 사람들이 존엄하게 살고 공공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기본 소득의 액수와 재원 조달 방안은 법률로 정한다.' 2016년 6월 15일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 도입안은 반대 77%로 부결됐다. 하지만 투표자 설문조사 응답자의 69%는 기본소득이 다시 스위스에서 국민 투표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출처: 경제적 청춘, 2017)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기본소득 권리에 대한 헌법개정안 찬/반 투표였는데, 스위스 기본소득 운동단체들이 온라인으로 ‘성인 2500 스위스프랑(약 300만 원), 미성년자 650 스위스프랑(약 78만 원)’을 제시한 전략의 실패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핀란드의 중도우파 정부는 2017년부터 2년 동안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조건부 실업급여 560유로(약 70만 원)를 받던 사람 2000명을 뽑아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준 것이다. 핀란드 현지 학자인 헤이키 히일라모 헬싱키대 사회정책학부 교수는 "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무시할 정도고, '주관적 복지(행복도 등)가 나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신뢰하기 어렵다"였다.(출처: 중앙일보, 2020.6.9.)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로봇, AI 등이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여 일자리 소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 인해 지속적인 실업 증가와 불평등, 소비 감소에 따른 불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테슬라로 유명한 엘론 머스크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이 기본소득을 찬성하고 나선 배경이다. 로봇의 도입 등으로 막대한 부를 버는 이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기본소득으로 재분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소득과 소비가 없이는 기업의 생산활동과 존립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토지, 지식, 최근엔 빅데이터 등 인류의 공통자산에서 창출되는 부의 재분배에 대한 시민권과 사회참여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충분한 실험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세금도 적고 사회 안전망도 미비한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로 갈 것인가? 하는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다. 지난 수십 년간 기본소득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벨기에 루뱅대학교의 필리프 판 파레이(Philippe Van Parijs)교수가 기본권의 시각에서 주장한 소위 '게으름에 대한 차별금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인가? 

청년의 노동은 삶의 권리이자, 자립의 요건이고,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것으로 예견되었던 ‘고용 없는 세대’, ‘잃어버린 세대’의 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쇼크로 현실화되고 있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본래 유효기간이 있으나 지난 2018년 11월 6일 국무회의에서 이 특별법의 유효기간을 2023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하였다. 코로나19 고용쇼크로 인해 2020년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9%를 기록하고, 청년층 고용률은 41.3%로 낮아졌다. 20대·30대 취업자 수는 각각 14만 6000명, 16만 5000명 감소하는 등 1년 만에 30만 명 이상이 줄었다.

  ‘IMF 세대’보다 더 힘겨운 ‘코로나 세대’를 위해서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로 인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여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물론,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할 ‘일거리’를 만들어야 하고 ‘일자리’를 청년들이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경험과 역량을 축적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해주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최근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청년기본소득’ 논쟁으로 점화되고 있다. 청년의 노동은 취업률의 문제가 아니라 일을 통해 삶의 희망을 만들기 위한 권리이며, 한 세대가 자립하기 위한 요건이고,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의 문제이다.  

청년참여소득은 노동의 의미와 직업의 가치에 대한 
시대적 전환을 위한 사회임금이자 사회적 투자가 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청년참여소득의 도입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사회적 난제로서 청년들의 고용절벽과 ‘청년기본소득’ 도입 논의의 중요한 배경은 청년들의 원활한 사회진입 지원으로 압축된다. 따라서 청년들의 사회참여활동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보장과 사회적 가치가 있는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의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Anthony(주로 Tony) Atkinson)에 의해 처음 제안된 참여소득(Participate Income)은 현실적 대안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도입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1996년에 나온 그의 논문 "The case for a participation income"에서 참여소득이 구체적인 논리 체계를 가지게 된다. 기본소득을 '참여'라는 조건에 따라 지급하자는 것이 논문의 핵심이다. 이 논문에서 앳킨슨은 '참여'를 노동시장 참여로 한정하지 않았으며, 교육(education), 훈련(training), 자녀돌봄(caring for young), 고령자 또는 장애자(elderly or disabled dependants)돌봄, 승인된 자발적 임무(undertaking approved forms of voluntary work) 등을 포함했다. 참여 조건도 단순히 유료 일자리만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social contribution)까지 폭넓게 정의했다. (출처: 프레시안, 2020.11.27.)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로 청년 일자리의 소멸은 가속화할 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줄어든 일자리를 대신할 '일거리'를 만들어서라도 청년에게 일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사회 진입을 위해 새로운 경험을 쌓고, 역량을 키우기 위한 활동,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타인과 공동체를 돌보는 활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활동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청년참여소득은 노동의 의미와 직업의 가치에 대한 시대적 전환을 위한 사회임금이자 사회적 투자가 될 수 있다. 


  2016년 성남시의 청년배당, 2019년 경기도의 청년 기본소득 시행은 만 24세 청년에게 한정적이었지만, 기본소득의 정책실험이었다. 반면 2019년에 시행한 대구시의 '사회진입활동지원금' 도입과 2017년 하반기에 시작한 ‘대구×청년 소셜리빙랩(Social Living Lab)’사업은 참여소득 유형의 작은 정책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참여소득은 청년들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자는 취지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청년들의 노동권리와 미래투자의 관점에서 청년참여소득의 도입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돌봄 사회, 탄소중립,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청년들이 자유로운 실험과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 동안 기본적인 생활비와 활동비를 지급하면, 청년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쌓는 갭이어(Gap year) 활동이 될 것이며, 청년들의 취·창업과 사회적 기여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비수도권 소재 청년들에게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한 지역공동체 연계형 혁신활동을 지원하는 청년참여소득을 지원한다면, 수도권으로의 급격한 청년유출을 완화하고 수도권 청년의 유턴을 증가시키는데 다양한 경로의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 출처           

1. 오세훈 “안심소득, 이재명 기본소득과 비교 말라”, 국민일보, 2021.11.22

2. [팩트체크] 기본소득제, 美알래스카만?…해외사례 보니, 연합뉴스, 2021.2.10

3.  ≪경제적 청춘≫, 조원경 지음, 쌤앤파커스, 2017.5.

4. 기본소득제, 먼저 해본 핀란드가 말해준다 "결과는 충격적", 중앙일보, 2020.6.9

5. 기본소득 대신 '참여소득' 논의를, 이상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프레시안,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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