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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Apr 15. 2023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그의 안부를 묻자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내부에는 그의 코끼리와 같은 것들이 하나씩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자 산책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오랑우탄이나 코뿔소, 토끼, 어쩌면 매머드나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것들 말이다.






소설에서 ‘그’는 외상후증후군을 겪는다. 어느 때고 코끼리가 나타나서 한쪽 발을 그의 심장에 올려놓고 힘을 준다. 그러니까 그의 일상은 코끼리가 중심이다. 코끼리가 아니라 작고 귀여운 무엇으로 부르든 간에 그 공포와 통증은 내 삶을 좌우하는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다. 


그처럼, 내 코끼리도 너무 거대했다. 태산처럼 버티고 있어서 모른 척할 수도 없었고 없애버리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 보였다. 코끼리를 종이조각으로 만들어 지구 밖으로 멀리 날려버려 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버젓이 나타났다. 


걸을 때마다 따라붙는 그림자처럼, 세상이 멸망해도 내 곁에 있을 것처럼 지긋지긋한. 내가 없어지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나는 항상 코끼리에게 무력감을 느꼈다. 거부할수록 내 목을 조여 오는 존재를 무슨 수로 당해낼 수 있단 말인가. 숨 쉴 때마다 의식해야 했다면 그를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면 어떨까? 공포와 통증을 인정해 주고 더 이상 밀어내지 않는다면? 나타날까 조마조마하던 존재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거다. 코끼리를 만들고 키워낸 건 처음부터 나였을 테니.


사람들은 자신의 코끼리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괴롭히는 그 존재가 한없이 원망스럽고 앞으로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절망스럽더라도, 오늘은 코끼리에게 안부를 묻자. 오늘은 단 한 번뿐인 2023년의 봄이니까. 이 원망과 좌절도 때가 되면 벚꽃이 지듯 사라져 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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