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폭풍성장
얼마 전 온 가족이 함께 영화 <인크레더블 2>를 보았습니다. <인크레더블 2>는 슈퍼맘 ‘일 라스티걸’, 육아휴직을 낸 아빠 ‘밥’, 사춘기 딸 ‘바이올렛’, 용감한 아들 ‘대쉬’, 엄청난 초능력을 소유한 아기 ‘잭잭’이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영화입니다. 슈퍼베이비 ‘잭잭’이 위기에 빠진 엄마 ‘일라스티걸’을 구출하는 역할을 하며 아이들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우리 아이들도 ‘잭잭’처럼 아기였을 때가 있었는데 벌써 딸은 바이올렛처럼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가 됐고 아들은 ‘대쉬’처럼 용감한 초등학생 1학년이 됐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폭풍 성장이 새삼 크게 느껴진 영화였습니다.
누구나 본인이 자랄 때는 성장하는 기쁨을 잘 모릅니다. 자란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지요. 그런데 내 아이가 자랄 때는 다릅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이가 자라는 순간순간이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아이가 자라는 기쁨을 잘 알 것입니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다면 식물을 키우거나 동물을 키웠던 경험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콩을 심고 싹이 나는 것을 관찰한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텐데요. 싹이 트고 자라면 신기하고 기뻤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을 줍니다. 고작 콩 하나가 자라는데도 기쁜데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내 아이가 자라는 기쁨이 얼마나 클지는 설명만으로는 쉽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황을 이야기해볼까요?
식사 후 카페에서 선배나 동기가 본인의 스마트폰을 슬쩍 꺼내 아이의 사진을 보여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친한 사이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 아이의 사진을 보여줄 것입니다. 저도 당연히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를 키우고 있던 선배들이 자기 아이의 사진을 보여줄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은 사진도 열심히 보고 귀여운 아기를 보며 같이 즐거워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예쁘니까요. 그런데 간혹 정도가 심한 선배들도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아기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자랐다며 또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그럴 때는 왜 자꾸 자기 아이를 보여주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제가 아빠가 아니어서 아빠나 엄마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자라는 우리 아이를 자랑하고 싶으니까요. 계속 보여주고 싶은데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주책이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지요. 그 이유 하나뿐입니다.
요즘은 누가 아기를 보여주면 같이 기뻐합니다. 그 아이가 우리 아이인 양 자세히 살펴봅니다. 먼저 아이 사진을 보자고 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아빠가 되니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의 기쁜 마음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갓 태어났을 때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천장만 바라봤습니다. 그때 아내와 함께 엎드려 누워 아이와 눈 맞추기를 하며 서로에게 말했지요.
“와, 이 작은 아이 언제 키우나?”
그런데 천장만 바라보던 아이들이 뒤집고 기더니 1년 만에 걷고 뛰어다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무엇을 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폭풍 성장이란 말이 딱 어울립니다. 초등학생 5학년 딸은 벌써 엄마의 발 사이즈를 넘었고 내년이 되면 엄마의 키도 넘어설 것입니다. 콩나물이 자라듯, 죽순이 자라듯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만든 발 조형물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제 손가락보다 작았던 딸의 발이 이제는 제 손바닥보다 커졌습니다. 아이들의 발 조형물을 봤더니 저절로 시간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아이의 돌잔치를 앞둔 우리 집이었습니다. 딸은 본인의 돌잔치를 1주일 앞두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딸아이가 처음 걸었을 때 손뼉을 치며 번쩍 안아 들고 아이의 볼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딸은 1주일 동안 걷기 연습을 해서 돌잔치 때는 스스로 걸어서 입장을 했습니다. 문득 돌잔치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다 울컥하던 제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걸어 다니는 아이로 자랐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감정이 오버했던 거지요.
처음에 태어날 때 울기만 하며 하늘만 바라보던 아이가 돌을 기점으로 걸어 다니더니 곧 뛰어다녔습니다. 말을 시작하고 엄마 아빠와 대화도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걸었을 때의 기쁨, 처음 아빠라고 불렀을 때의 기쁨, 돌잔치에서 울컥했던 제 모습과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던 순간들이 겹쳐 흐뭇한 미소가 잔잔히 일었습니다.
그다음 도착한 곳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던 날입니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라 첫째는 20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에게 떨어져 홀로서기를 시작하며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엄마 아빠 없이 생활하는데 익숙해지며 엄마 아빠 없이 생활하는 시간도 조금씩 늘려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다양한 기쁨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용하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증가했고 율동과 노래를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보였던 그런 모습은 세상에 없는 비타민이었습니다. 요즘도 가끔 아내에게 카톡으로 그때 찍어둔 아이들의 사진을 보냅니다.
“여보, 비타민이야!”
둘째가 다닌 어린이집은 계절마다 행사를 했습니다. 저도 당연히 참석했지요. 불암산으로 아이들과 소풍 가서 체육놀이도 하고 양평 고래실마을에 가서 메기 잡기 체험도 했습니다. 흙으로 가족 얼굴 만들기도 하고 가족사진도 찍었지요. 그때 찍은 사진은 지금도 거실 테이블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사진은 마치 과거의 우리가 현재의 우리를 보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줍니다. 포천으로 아빠와 아이만 가는 캠핑에 가서 아들과 둘만의 오붓한 시간도 가졌습니다. 둘이 요리도 만들고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놀이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린이집 행사는 항상 기쁨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린이집 행사 때 넘어지거나 어디 부딪혀서 아파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흥에 겨워 웃고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즐거워했습니다. 그걸 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지요.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이유의 반 이상은 어린이집에서 만난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린이집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선생님들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어린이집에 마지막으로 간 날 아들 편에 아들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들 세분께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 아이를 돌봐주신 선생님들이 너무 고마웠으니까요.
마지막 시간여행은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교실입니다. 딸은 자기만 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고 교실에 앉아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딸아이를 보며 시간의 힘과 아이의 성장에 대해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학부모로서 여러 가지 다짐을 육아일기에 쓰는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아빠는 너희들을 위해 해주고 싶고 스스로 지키고 싶은 약속이 있단다. 첫째, 너희들의 재능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도와줄 거야. 둘째, 너희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할 거야. 너희들의 인생이고 아빠는 너희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셋째, 여행도 많이 하고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는 환경을 만들 거야. 넷째, 항상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유지할게. 너희들이 학교생활을 더 편하고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이제 시간여행을 마치고 지금을 생각합니다. 딸은 5학년이 됐고 아들은 1학년이 됐습니다. 딸은 엄마 아빠가 모르는 지식을 하나씩 이야기합니다.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벌써 우리 딸이 우리를 넘을 나이가 됐나 신기해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벌써 놀이나 달리기를 하면서 아빠와 경쟁을 할 수준이 됐습니다. 물론 달리기는 제가 이기지만 팽이 돌리기나 알까기 같은 게임은 제가 아들에게 집니다. 이렇게 엄마 아빠를 넘는 것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아이들입니다.
얼마 전에는 아들의 첫 번째 축구화를 사러 갔습니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 아이는 축구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증가했고 주말이면 함께 축구를 합니다. 아들은 처음 축구화를 신는 설렘으로 기뻤고 실제 축구화를 신고 축구를 했을 때는 신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공이 멀리 가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그걸 보는 제 마음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의 옷과 신발을 살 때의 기쁨은 아이를 키우며 느낄 수 있는 큰 기쁨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가 자신들의 물건을 살 때의 기쁨을 아는지 작년에 입던 옷은 못 입을 만큼 빨리 자라 엄마 아빠가 다시 쇼핑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두해 입힐 생각으로 큰 옷을 사 입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는 꼭 아이가 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격이 비싼 외투가 아니면 그냥 한해 입고 친척 동생에게 줄 생각으로 딱 맞는 옷을 삽니다. 쭉쭉 성장하는 아이의 옷과 운동화를 사는 즐거움도 좋고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우리 아이의 예쁜 모습을 보는 것도 기쁘니까요.
내년이면 딸은 엄마의 키를 넘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자라 엄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키가 되겠지요. 엄마가 생각하는 기대치가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딸은 내년이면 그 키에 도달할 것입니다. 아내의 기쁨이 얼마나 클지 벌써부터 상상이 됩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물을 달라고 하면 우유를 주던 아내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우유를 먹더니 우유를 세상 누구보다 더 좋아하는 딸로 자랐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입학을 할 즈음 아빠의 키를 능가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아빠의 힘을 능가할 것입니다. 저는 아들과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아들이 아빠의 힘을 넘어설 즈음 걸어서 제주 한 바퀴를 완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양도가 보이는 아름다운 협재해변에서 아들과 5판 3선승제로 씨름을 할 생각입니다. 제가 이겨도 좋고 아들이 이겨도 좋습니다. 어깨동무하며 걸어가는 우리 부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이들이 자라면서 준 기쁨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테지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주는 기쁨을 느끼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다니고 아이들의 생일 때는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사진이라도 찍으며 작은 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꼭꼭 참석해서 아이들이 주는 웃음과 신난 모습에 같이 웃어주고 함께 뛰어주는 것입니다. 간혹 아이들과 함께 갔던 여행지를 몇 년 뒤 다시 가면 아이들이 훌쩍 자란 모습에 감격하는 행운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한 ‘카르페 디엠’이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누리는데도 해당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한번 외쳐봅니다.
“카르페 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