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멈췄더니 일상이 행복이었어요

행복은 지금, 그리고 여기

by 막시

몇 년 전 우리 네 식구가 식사를 하며 꽤 오랫동안 배꼽 잡고 숨 넘어 가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아들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웃긴 말투가 발단이었지요. 웃음은 웃음을 낳고 서로 전염시켰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웃은 뒤에 눈물을 닦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행복이 특별한 것이 아니구나!"

그날의 행복한 여운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온 가족이 마주 앉아 함께 식사를 하며 웃을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어려울까요?

전혀 아니지요.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 일어나는 일상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있는 우리 집, 우리가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까요?

내 아이가 자는 모습, 내 아이가 웃고 모습, 내 아이가 먹는 모습, 내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있는 모습, 내 아이가 내 손을 잡고 있는 모습, 내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 내 아이가 나를 부르는 모습이 있겠지요.

이런 일상 어떤가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입니다.

이런 기쁘고 행복한 일상을 충분히 누리고 계시나요?


세상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웃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부모는 내 아이로 태어난 아이를 고마워하며 함께 미소 짓지요. 아이들이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 아이들과 까꿍 놀이를 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웃음이 지어집니다. 두 손을 가렸다가 내리며 “까꿍”이라는 말만으로도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의 웃음이 잦아들 즈음 “까꿍”을 하면 아이는 다시 처음부터 웃기 시작했지요. 아이들이 웃을 때 부모도 같이 웃습니다. 만약 부모가 계속하면 아이들도 무한 반복으로 웃겠지요. 그렇게 온 가족이 웃었고 행복이 온 집에 퍼졌습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엉덩이를 씰룩대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런 일상도 늘 부모에게는 기쁨입니다. 어정쩡한 아이의 춤도 어설픈 아이의 발음도 세상 어떤 댄서와 가수보다 더 큰 기쁨을 주니까요.

우리 집 첫째 아이는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딸이 처음 기차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벌써 9년이나 지난 이야기네요. 딸은 동대구역에서 출발해서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노래를 불렀을 만큼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 봐 밖에 나갈 수밖에 없었지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의 기쁨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집에서 딸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렸던 우리 집 일상이었습니다.

아들은 누나와 달리 춤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노래만 나오면 춤을 추고 노래가 나오지 않아도 본인이 신나면 춤을 춥니다. 당연히 우리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도대체 저런 귀여운 아이들이 어디서 나왔을까?’라는 눈빛으로 말이지요.

아이들이 예쁘기로는 잠잘 때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다 너무 조용하다 싶으면 자고 있습니다. 자는 아이를 쳐다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반은 나를 닮고 반은 엄마를 닮은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고 있으니 예쁠 수밖에요. 자는 아들을 보면 늘 행복을 느낍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세상 모든 부모에게 아이들이 언제 제일 예쁘냐고 물었을 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답이 “잠잘 때”니까요.


잠시 드라마나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아빠들은 가끔 회사에서 늦게 들어오면 아이가 자는 방에 살며시 가봅니다. 규칙적인 숨소리로 잠을 자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이가 자고 있지요.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합니다.

"아빠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너에게 든든한 아빠가 될 거야."

아이가 듣고 못 듣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이마나 볼에 뽀뽀를 하고 조용히 방을 나옵니다.

이런 상황 한 번씩 보셨지요?

이 상황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옆집 아빠도 수시로 하는 모습입니다.

저는 일부러 자주 딸과 아들이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빠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한 번은 딸이 어젯밤에 꿈을 꿨다며 전날 제가 했던 말을 이야기했습니다. 얼굴에는 뿌듯한 모습을 하고 말투는 매우 신이 난 상태로 말이지. 아이는 비몽사몽간에 들었던 아빠의 말을 꿈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딸의 뿌듯한 모습을 보며 덩달아 기뻤습니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잠을 자니 매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쁨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기쁨도 참 많습니다. 이런 기쁨까지 합치면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잠잘 때까지 한순간도 기쁘지 않은 순간이 없을 텐데 말이지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혜민 스님은 국민 멘토로서 온 국민을 힐링시켰고 지금도 좋은 말씀으로 좋은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 보면 혜민 스님이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 있습니다. 발췌해보겠습니다.


『우리 잠시 멈춰보자고. 과거를 반추하거나 불안한 미래를 상상하는 마음을 현재에 잠시 정지해놓고 숨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그렇게 항상 급하게 어디론가 가다 보면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잠시 마음을 현재에 두고 쉬다 보면 내 안팎의 모습이 드러나니, 우리 함께 조용히 그렇게 바라보자고.』

예전에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 제가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아빠 품에 안겨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빠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이의 사랑을 더 받지 못하고 억지로 떼어놓고 출근을 하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아이를 좀 더 오래 안아주지 못했을까? 왜 잠시 멈춰 서서 아이의 사랑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이들이 주는 큰 행복이었는데 말이죠.

다행히 우리 아이는 여전히 아이입니다. 아빠가 아이의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아이들과 방학 계획을 짜면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들이 이런 말을 썼습니다.

"방학 때 엄마 아빠와 계속 함께 있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

이 글을 보면서 조금은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출근시간을 조금 뒤로 늦추더라도 아이의 마음을 더 받아주고 아이와 1분이라도 더 함께 있고 안아주며 아이의 사랑을 느끼기로 말이지요.

사실 제가 회사에 1분 늦게 간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1분 먼저 간다고 업무의 생산성이 높아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떼어놓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 일이 손에 안 잡힐 때가 더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냥 제 마음이 급하고 불안할 뿐입니다.

제가 조금 일찍 가든 늦게 가든 다른 사람은 관심도 없습니다. 혜민 스님 말씀처럼 잠깐 멈춰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보입니다. 엄마 아빠를 향한 내 아이의 사랑이 보이고 그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일상이 주는 행복을 온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첫째에게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둘째에게서 충분히 받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둘째가 여전히 아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스펜서 존슨이라는 작가가 쓴 <행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존'은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자신의 주위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인 삼촌 '프랭크'를 찾아가 행복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행복해지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이 책에서 프랭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던 일을 멈추고 나 자신을 위해 1분 정도 시간을 내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저는 그 글을 보고 뿌연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가 하는 행동을 1분만 바라보면 그 안에 기쁨과 행복이 있었으니까요.

아침에 아들과 출근할 때 아들은 한 손은 엄마 손, 한 손은 아빠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엄마 아빠 손을 지렛대 삼아 펄쩍 뛰어올라 멀리뛰기를 합니다. 그러면 아이의 얼굴엔 웃음이 피어나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납니다. 그렇게 계속 학교까지 가도 고작 1분만 더하면 충분히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들은 교문에서 엄마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 학교 안 정문 입구까지 엄마 아빠가 와서 하이파이브나 안아주고 가기를 바랍니다. 교문에서 현관까지 10m입니다. 1분이면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지요. 우리의 흔한 일상에서 멈추면 보이고 1분만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면 느낄 수 있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동을 1분만 바라보면 기쁘지 않은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속담은 우리 아이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태권도장에서 만나 집으로 오는 길에는 편의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편의점을 지날 때 꼭 한 마디씩 합니다.

"아빠, 나 뭐 먹을 거 좀 사주면 안 돼?"

가끔씩 갈등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들어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흔쾌히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아빠가 쏜다."

아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나이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아이들이 군것질 한 번 더 한다고 아이가 잘 못 될까요? 저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흐뭇해지는 천 원의 행복을 선택합니다.


오늘 이 글을 보는 엄마나 아빠도 천 원의 행복 찬스를 한 번 쓰시는 건 어떠신가요?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모습을 볼 때도 그렇고 저녁 무렵 산책을 할 때 앞서가는 아이들의 그림자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매일매일 느끼는 일상이 즐겁고 지금 우리 아이들이 주는 즐거움이 너무 좋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멈추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오늘 아이가 주는 일상의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들이 주는 일상의 기쁨, 잠시 1분만 멈춰 아이들을 바라보면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어느 날부터는 하루 종일 기쁘지 않은 순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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