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거나 응원받고 싶어 진다. 10여 년 전 가족들과 떨어져 9개월 동안 혼자 살았는데,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이유가 발목을 잡았다. 주말부부를 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나에겐 외로움 그 자체였다.
얼마 전 달리기 친구가 부산으로 발령 났다. 10년 전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부산에 내려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이 늘 현실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친구가 또 있었다. 두 명이 다짐하면 혼자 다짐하는 것보다 실행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와 같은 생각을 친구들이 두 명 더 있었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친구 셋과 함께 부산에 도착했다. 식당에 먼저 도착한 부산 친구가 한 상 가득 만찬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를 보자마자 하회탈이 된 그는 우리를 뜨겁게 안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km를 달려온 보람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공자의 명언,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한가?’는 헛말이 아니었다.
각종 모둠회는 번개 같은 속도로 사라졌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법, 빈 소주병도 하나씩 장식처럼 세워지고 있었다. 우정만큼 소주잔을 비우면 다음 날 달리기는 없다. 적당한 시점에 소주의 유혹을 떨쳤다.
광안리 앞바다를 걸었다. 비가 조금 내렸지만, 우중주를 즐기는 러너에게 비는 문제 되지 않는다. 우리가 반짝이는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모래사장을 달릴 때 우리 앞에 있던 연인들은 우산을 쓰고 뽀뽀를 했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할 땐 날씨에 개의치 않는다.
폴짝폴짝 점프를 하며 부산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체면은 조선시대 선비만 아는 것인 양 모두가 어린이가 됐다.
한창 분위기가 고조됐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사실 부산은 처음이야.”
모두 깜짝 놀라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십 대 초반에 프랑스까지 다녀왔지만 정작 마흔이 넘도록 부산은 처음이라는 친구의 말에 놀랐지만,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나기도 한다.
부산 사는 친구가 말을 이었다. “오늘 부산의 밤을 느꼈으니 내일은 무조건 일출을 봐야 한다. 그래야 부산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 보는 거다. 그리해 주고 싶다.”
“오오오오오”
옆에 있는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감탄했고 부산이 처음인 친구는 감동했다.
부산 친구네 집에서는 술 대신 수다를 선택했다. 누가 남자는 말이 없다고 했던가? 새벽이 되도록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입이 아프도록 말을 했더니 배가 고팠다. 싱크대 서랍을 열었다. 먹을 건 딱 세 개 있었다. 라면과 햇반, 그리고 김.
혼자 있어도 잘 먹는 사람이 있다지만, 늘 가족과 함께 지내다 갑자기 혼자된 사람은 입맛도 혼자가 된다. 식사 시간은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배를 채우는 시간일 뿐이다. 10년 전 내가 다시 떠올랐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암흑기였다. 얼른 과거를 밀치고 라면을 들이켰다.
달리기 친구는 외로웠던 것일까? 원래 수다쟁이였을까? 쉬지 않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수다쟁이가 물에 빠지면 입만 뜨는 게 아니고 엉덩이가 뜬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유는 물고기와 대화를 하느라 그렇단다. 그가 딱 그랬다.
소곤대는 소리에 눈을 뜨니 벌써 새벽이었다. 일찌감치 일어난 친구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라면 냄새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라면을 먹으며 물었다. “혹시 오늘 날씨 어떻대요?”
“글쎄, 나가봐야겠는데. 좀 흐리다는 말도 있고….”
해운대까지는 차로 이동했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하늘엔 온통 구름이었다. 부산에서 일출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출 시간까지 기대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일출 시간이 다가올수록 실망감이 커졌다.
모두가 포기하려는 찰나 구름이 붉은빛으로 물들며 하늘에는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친구들의 스마트폰에서 연신 '착, 착, 착' 소리가 났다. 마흔이 넘어서 처음 부산을 방문한 친구에게 신이 준 선물이었다. 우리의 간절함을 알고 있는 신이 태양과 구름을 중재한 것이 분명했다. “일출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통했네.”
새벽을 연 사람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늦가을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수영복 한 장을 입고 바다 앞에 몰려있었다. 똑같은 한 장이었지만 반은 삼각형 한 장을 입었고 반은 전신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삼각형을 입은 사람은 남자, 전신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여자다. 외국이라면 반대일 수도 있지만 부산이 외국은 아니다.
그들은 원형으로 둘러섰다. 구령에 맞춰 몸을 풀더니 힘차게 물로 뛰어들었다. 모두 제법 큰 풍선을 하나씩 몸에 달고 있었다. 구명 튜브였다. 아무리 취미가 좋아도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다.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그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수영하는 사람들의 제대로 된 몸풀기를 봤더니 우리도 꼭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구령을 붙여가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트레칭하고 동백섬으로 들어갔다. 부산 최고의 관광 명소답게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거나 산책을 하며 동백섬의 가을을 누리고 있었다. 가을날이 좋았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동백섬인데 동백꽃이 없었다.
동백섬에는 명물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있다. 동백섬 전망대는 부산 최고의 일몰 명소다. 몇 년 전 그곳에서 저녁 산책을 했다.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그들이 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글대는 태양이 광안대교와 누리마루 APEC 하우스를 차례로 비추고 있었다. 입을 다물 수 없는 환상 그 자체였다.
동백섬을 한 바퀴 돌고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했다. 바닷가 곁에서 장난을 치다 한쪽 신발이 물에 빠지고 말았다. 어린 시절 비슷한 상황이 떠올랐다. 겨울이 되면 썰매를 들고 개울로 갔다. 썰매를 타다가 꼭 한쪽 다리를 물에 빠뜨리곤 했다. 그것도 한쪽만.
딱 그 꼴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어린 시절 생각에 몇십 년은 젊어진 기분이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재미를 느낄까? 멀찌감치 선 친구들이 웃고 있었다. 친구들을 물에 밀어 넣으려고 쫓아갔지만, 모래사장 위에서 달리는 나는 거북이였다.
해운대 마천루를 바라봤다. 해운대에 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우리나라든 해외든 도시마다 달리기하며 한 달씩 살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그날이 기대되지만 빨리 오기를 바라진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알아서 올 테니까 일부러 빨리 늙을 이유는 없다.
미포항에서 청사포로 가는 길은 부산의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달맞이 길과 옛 철길을 산책로로 만든 그린레일웨이 두 개가 있다. 두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하다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린레일웨이를 선택했다. 그린 레일웨이라는 이름도 괜찮지만 '녹색옛철길'이란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레트로가 대세니까.
철길은 자갈이 깔려있어 운치 있고 바닷가 바로 옆으로 데크길이 있어 달리기도 편하다. 달릴 때 들리는 '탁탁탁' 운동화 소리, '흐흐 후후' 호흡 소리, '솨아악 촥' 파도 소리는 마치 타악기 연주회 같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읊으면 환상적인 하모니가 될 것이다.
청사포는 밖에서 보면 작은 어촌마을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예쁜 카페와 식당들로 가득하다. 눈앞에 나란히 선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는 외국에 온 듯 이국적이다. 등대로 향하는 길에는 낚시꾼들이 이른 시각부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청사포에 얽힌 전설이 있다.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다.
금실 좋은 부부가 살았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바다에 빠져 죽는다. 아내는 매일 남편을 기다린다. 이를 가엾게 여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죽은 남편을 만나게 했다는 내용이다. 옛날 어촌에서는 고기잡이 남편이 물에 빠져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은 예삿일이었을 것이다. 이 전설이 쓰인 표지판을 보며 실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이런 전설은 대체로 새빨간 거짓말이니까.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시부모와 동네 사람들은 홀로 된 여인을 남편 잡아먹은 여편네라고 낙인찍는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한 여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이슬이 내린다. 낙인찍힌 여인이 실제로 죽으니 시부모와 동네 사람들은 더럭 겁이 난다. 갑자기 그녀를 열녀로 둔갑시킨다.'
송정해수욕장에는 서핑하는 청춘 남녀로 가득했다. 미국 산타크루스 해변에서 봤던 풍경이 떠올랐다. 그때는 높은 곳에서 멀리 있는 서퍼들을 내려다봤는데 지금은 바로 눈앞에서 바라본다.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실감 나고 매력적이다. 나도 언젠가는 서핑을 하리라. 길에서 만난 풍경은 새로운 도전을 심었다. 해운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해운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운동하는 느낌이고 서퍼들은 노는 느낌이다. 친구가 서핑을 즐기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서핑 숍을 운영한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이런 일이 흔하다. 여행 가이드가 대표적이다. 여행을 다니다 여행이 좋아 그곳에 눌러앉고 가이드를 한다. 때론 직접 여행사를 운영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멋지다.
부산으로 발령 난 달리기 친구는 평소와 달리 힘이 넘쳤다. 10km를 겨우 뛰는 그는 유난히 희희낙락했다. 제일 선두에서 달리고 말도 제일 많았다. 달리다 보면 힘이 드는 순간이 오고 말이 줄어드는 게 정상인데, 전혀 그럴 기미가 없었다. 그는 부산에서 달리기 모임에도 나간다고 했다. 그가 나가는 모임은 서울과 달리 아침 달리기와 식사 시간 사이에 사우나를 하는 시간이 있다고 했다. 그 시간이 유난히 좋아서 한 번이라도 더 달린다고 했다. 달릴 이유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한 번이라도 더 달리는 건 모든 러너의 공통점이다. 달리기 하나로 친구를 만들고 어느새 부산 사나이가 된 그는 역시 러너다웠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 순간 멀리 노란색 푸드트럭이 보였다. 뭔가 착착 맞아 드는 느낌이다. “이래야 여행이지”
다른 사람은 모두 샌드위치 한 조각을 먹는데 홍시기는 두 조각을 한입에 넣었다. 아까부터 배가 고프다고 하더니 정말 배가 등짝에 붙었나 보다. 입이 큰지 샌드위치가 큰지 끝장을 볼 태세였다. 샌드위치가 더 큰 줄 알았는데 그의 입이 더 컸다. 샌드위치의 부스러기가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큰 샌드위치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는 딸을 위해 기도하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대입 수능을 앞둔 자녀가 있다.
전날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에 팔공산 갓바위에 들렀다. 팔공산 갓바위는 석불 이 쓴 갓이 학사모를 닮았다 하여 1년 내내 입시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북적인다.
갓바위까지 가려면 1,365개 계단을 올라야 한다. 1년 365일이라는 뜻이 담긴 1,365개 계단을 오르기는 의외로 만만치 않다. 아파트 한 개 층당 계단 16개로 계산하면 85층 수준이다.
뛰어오르다 숨이 차면 걷고 가끔 멈추기도 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갓바위가 가까워질수록 염불 외는 소리가 커졌다. 처음에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평범한 염불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해서 귀 기울여 들어보니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김철수 학생 대학 합격을 기원한다."였다. 세상에 이런 염불이 있나 싶어 파안대소했다. “이건 뭐지?”
천삼백육십 다섯 계단을 넘어 드디어 갓바위에 도착했다. "우와."
운해가 팔공산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산신령이 나올 것 같은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절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 홍시기도 있었다. 108배를 할 줄 알았는데 고작 서 너 번만 하고 일어섰다. 내가 그를 대신해 108배를 하겠노라 다짐했다. 합격을 기원하며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서른 번을 하고부터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1,365개 계단을 핑계 대며 50개만 하고 일어섰다.
팔공산 생각에 빠진 사이 간식타임이 끝났다. 목적지인 해동 용궁사로 향했다. 용궁사 입구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외국인도 많았다. 주로 중국어 가끔 영어가 들렸다. 부산도 서울만큼 유명한 여행지가 된 것이다.
절 입구를 지나는데 한 친구가 배가 불룩 튀어나온 불상을 가리켰다. “저건 득남불입니다. 배를 만지면 아들을 낳게 해 준다고 득남불이죠.”
배 주위에 광이 났다. 그는 작년에 독일인 친구 부부와 여기에 왔다고 했다. “독일 친구 부부가 임신이 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어요. 마침 우리 부부와 이곳에 왔다가 저 득남불을 만졌어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임신을 한 거예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해동 용궁사는 바다와 붙어 있어 어떤 절보다 풍경이 뛰어나다. 관세음보살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는 관음성지이기도 하다. 절을 한 바퀴 돌아보고 10m 높이의 해수관음대불 앞으로 갔다. 부산으로 발령 난 친구가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친구의 입시생 딸이 수능시험을 잘 치르고 좋은 학교에 합격하기를 바랐다.
달리기를 마치고 부산할매돼지국밥집을 찾았다. 지난 대마도 여행 때 먹지 못한 돼지국밥을 먹으며 1박 2일간의 달리기 여행을 마무리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여행이 끝나고 몇 달이 흘렀지만, 부산에서 일하는 친구는 여전히 <나 혼자 산다>를 이어가고 있다. 홍시기의 딸은 우리들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모든 인생이 바라는 대로 되면 좋겠지만, 그런 건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인디언의 기우제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과정만 있을 뿐이다. 내년에는 부산 사나이가 다시 서울 남자가 되길, 달리기 친구는 딸과 함께 입학식에서 활짝 웃길 기대한다. 그때까지 우리의 달리기 응원은 계속될 것이다. 인디언의 기우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