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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Aug 09. 2023

장마의 일

 미인과 함께 보낸 더운 몇 번의 절기는 우리만의 다정을 만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계절이 사랑을 하는 방법이라는 듯이 쓰르라미는 높은 음계로 울어댔습니다.


 우리는 영원이라는 걸 믿지 않기로 하면서, 조금은 더 유약한 울음을 내기로 했습니다. 철지난 자두의 과육이나 아지랑이가 일어나는 골목이나 점차 뚜렷해지는 초록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우리는 장마가 오면, 입을 벌린 채로 자주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서로의 입 안에 알사탕이나 각설탕을 하나씩 넣어주는 일을 참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장마전선이 생각보다 길어지면, 우리는 이게 최후라는 듯이 도피 같은 것을 장난스레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널어둔 투명한 반팔 티셔츠는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마가 없는 북극이나 그런 장소를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 반대의 장소에서 편지를 부치면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쯤 도착하게 될까 하며 우리는 미리 사랑을 당겨서 속삭이기도 했습니다.


 장마가 끝나면 더 무르익고 일렁이고 뚜렷해지는 것들이 분명했습니다. 그 때, 여름의 끝자락 대서(大暑)에서 우리가 그랬었습니다. 우는 것을 다정으로 포장하는 일을 우리는 잘도 좋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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