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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an 18. 2023

타르트지에 호박이 전부였던 시절

펌킨 파이

호박은 끝맺지 못한 문장이다. 달콤하다가 눅진해지고 부드럽다가 목이 멘다. 마침표가 마지막이 되지 못하고 뒤따라오는 발자국처럼 길게 늘어질 것만 같을 때 호박 타르트를 먹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시나몬과 생크림이 모두 가졌다.


포크질, 칼질 몇 번에 접시에 호박 크림이 잔뜩 묻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괜히 흔적을 없앤다. 깔끔히 지우기 위함이었으나 도리어 헛헛해졌다. 오늘은 지름 약 6cm 정도 되는 타르트지에 한때 호박이 전부였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 하기로 한다. 무심한 말투지만 상냥한 손길을 가졌다. 숫기 없는 파트 사블레에 진득한 호박 크림이 다가온다. 불안할 틈 없이, 생각할 틈 없이 전부를 채운다. 그 둘이 한 시절, 두 계절, 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소복이 눈이 쌓인다.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피스타치오 분태처럼 끝없이 흩어져 있다.


고소한 파트 사블레, 포근한 호박 크림, 부드러운 샹티 크림을 포크로 떠먹으며 괜스레 어떤 다짐을 하게 된다. 그간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하게 되며 뒤 돌아 걸어온 자리를 떠올린다. 마지막까지 씹히던 피스타치오 분태와 저 멀리서부터 마중 나온 시나몬 향의 여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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