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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Apr 26. 2024

외가의 추억

 22일부터 난 교토에 있을 예정이었다.

사실 난 22일부터  교토 여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구정음식을 차리고 난 후, 갑작스레 정한 나만을 위한 교토살이 6박 7일!

그 기간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었다.

교토에 관한 책들과 정보들을 수집하고, 메모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미술관티켓을 예매하고, 채소만으로 이루어진 식당도, 철학의 길에 숲 속 카페도, 오랜 전통의 주조장까지 일일이 메일을 보내고 예약 링크를 찾고,  전통 차 관련 카페는 예약을 받지 않는 곡도 있어서 자세한 상황을 이메일로 주고받기도, 무료 국제 전화로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 초밥집은 예약여부와 가게 오픈 시간등을 통화하기도 했었다.

거슬로 교토를 처음 방문한 시기는 온 가족이 센다이에 살던 1998년 초등학교 1학년의 장남과 5살의 막내와의 긴 여정 중에 있었다.

당시에 신칸센을 노래 부르던 두 아들들이 질릴 만큼 센다이에서 동경을 거쳐 나라까지 (당시 센다이 쿠니미 유치원 일본 친구네 외갓집 까자 초대받아서) , 그렇게 나라에서 큰아이의 친구네이자 같은 학부모이며 어머니 인형극 같은 단원이던 나카지마상의 고향집을 방문하고 (어느 글에 선가언급을 잠시 한 듯) 그 뒤로 교토의 일정을 세웠던 아스라한 추억이 있다.

당시엔 여자들만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있었다.( 아이들은 10살까지로 제한된 있었던)

한 여름의 교토는 뜨거웠고 5살짜리의 막내아들은 역사에는 전혀 관심 없던 사내아이였다. 역사에 관심이 가득한 차분한 장남을 위해 난 교토역사의 버스투어를 신청해 두었었고, 그렇게 작은 배낭을 메고 투덜거리던 5살짜리 막내를 달래 가며 , 교토의 여러 신사들과 금각사, 은각사를 돌았던 날이 떠오른다.

한 번의 멋들어진 저녁 식사는 카이세키요리로 병풍을 뒤로 두른 좌석애서 하루차 숙박료와 맞바꿨던 지금에서야 웃음 지으며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기도 하다.

그렇게 8월의 교토에서의 마지막날 오전, 두 아이를 데리고  그때는 소박했던 교토 타워를 올라가서 런치를 시켰던 아스라한 기억 속  그 맛은  사살은 그다지 기억이 없을 만큼  맛이 없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두고두고  후회만 가득했었던.


교토를 두 번째로 방문한 해는 미시간에서 귀국한 뒤에 어쩌다 음식 관련 인연들이 생기던 중 한 요리연구가 선생님의 통역과 가이드를 맡게 되던 2014년 1월 초였다. 연말 모임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화제가 교토 벤치마케팅으로 넘어갔다가 갑자기  잠을 챙겨 이틀 뒤에 출발로 정해져 버렸었다. 나에게 떨어진 지령은 유바 식당 예약이었고 , 당시 나의 지인이던 오사카에 거주하던 셰프와의 만남주선이었었다.

바쁘게 유바 식당을 찾아 전화로 예약하고 페이스북 친구인 셰프에게 만남의 연락을 하고 그렇게 장신 없이 떠났던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는.

간사이공항에서 곧장 초대해 준 셰프댁으로 택시로 4명의 여자들이 이동을 했었고, 정성스레 코스로 이루어진  일본풍 프랑스 요리를 맛보고 말았다.(지금 그 셰프는 베트남에 거주 중이다)

셰프의 와이프 역시 파티시에 출신이라 근사하고 달콤한 디저트까지 정성스레 , 일본말로는 오모테나시 (おもてなし)의 손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느 사이 10년이 흘러갔고 24년 2월 , 나는 나 홀로의 온전히 나에게 몰두할 곳을 찾다가 오사카를 거치지 않는 교토살이로 정해버렸다.

무엇이던 사실은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는 진리를 60이 되는 내가 모를 소냐 싶어 준비하는 모든 과정과 시간을  충분히 즐겼다.

그렇게 4월로 들어섰고, 여정시작 열흘 전쯤부터 뱃속이 좀 불편해지는 갈 직감하고 , 이사 온 동네에서 내과를 검색해 나름 평이  좋은 병원엘 찾아갔었고, 일주분의 약을 타서 소화 잘되는 죽과 바나니로 거의 닷새이상을 흘려버렸다. 당연히 나아지리라 믿으며 말이다. 금요일쯤 웬걸 다시 많이 불편해졌다.( 사실 토사광난도 설사가 지속되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황이랄까?)

지난 토요일, 결국 난 내가 살던 지역의 단골 병원을 예약하고 시부를 모시고 시모 문병을 갈 시간 앞으로 진찰을 받았다.

근 일 주간 속을 비운 탓에 힘도 하나도 없지만 나 홀로의 장거리 해외여행 앞이라 신중해야만 했었고 , 주치샘 역시 여러 사안을 열어두시고 검사를 하신다고 알려주시며 결국 난 몇 개의 약을 매달은 링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난 그날의 일정인 시모병문안도 뒤로한 채 , 링거를 맞고 어지러운 몸을 끌고 일단 귀가했었다.

(마음속으론 아마 교토여정을 피검사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내려놓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주일 새벽, 난 모든 여정의 취소를 시작했다. 다행히 비행기는 마일리지라 캔슬이 수월했고 숙소는 이틀 묵는 곳의 환불만 불가지만, 아쉬움을 가득 품은 채 모든 여정을 하나하나 지워버렸다.

그렇게 나의 3번째의 나에게 주려던 귀한 시간의 일정이 사라졌다.

사실 나일 먹었어도 , 어찌 마음이 편하기만 했겠냐마는...

그래서 대체안으로 난 22일 월요일 주치샘을 만나 피검사결과를 듣고 살살 이동을 했었다.

나의 교토여정을 대신할 새로운 여정으로 말이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매거진 곳곳에 적어 내려갈까 한다.

그렇게 오늘 4월 26일 난 다섯째 날의 여장을 진행 중이다

신가한 일은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나니 뱃속이 한결 편해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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