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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06 대학수시원서접수기간 (下)

by 는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힘든 때를 뽑으라면,

수시 원서 접수기간인 것 같다.


수시원서 접수 준비는 보통 여름방학 때부터 시작한다.

1학년 때부터 찾아왔던 진로 방면을 점점 좁혀 정한 전공분야를 중심으로 과를 정하고

3-1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고 그 점수가 확정 났을 때, 그때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을 두고 준비해도

실제 접수기간이 되면 경쟁률 1이 더 치솟는 그 순간순간에 놀란 심장이 왔다 갔다 한다.


삶에서 위기를 겪어본 적이 별로 없는 아이들은

그 증감되는 숫자 하나하나, 일분 일분에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보인적 없는 화난 말투로

그 인터넷 창 덮고 수능완성 문제 풀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지킬 수 있는 애들은 별로 없다.


그나마 말 안 하는 것도 거짓말이야, 그러면 쌤이 너를 분석할 수가 없어,라고 설득하며 규칙처럼 교육시킨 탓에 다행히 아무도 안 봤다고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한숨을 쉬면 애들은 하나같이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그럼 나는 말해준다. 긴장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야. 당연한 거야.라고


한숨 쉬며 그렇게 말하면, 그제야 쫑알쫑알 주머니 터트리듯 제 심정을 쏟는다.

너무 긴장을 했네, 어쩌네 하며 얘기하다 내가 눈에 힘주고 똑바로 쳐다보면, 아차차..... 하는 얼굴을 한다. 십몇 년째 반복하고 있는 일이지만 어쩜 이렇게 같은지.


그리고 나는

이렇게 같은데도

왜 똑같이 쿵, 할까.


십몇 년 됐으면

아무렇지 않을 법도 한데,


처음에는 장녀라서 그런가, 했다가,

다음에는 나이차가 많은 동생이 있어서 그런가(내 남동생은 딸 둘 있는 집안에 남자아이로 막둥이 붐이 한참 일던 9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하고 합리화를 했다가, 대학 진학 결정할 때 어른들이 권유한 대로 창작과가 아니라 교육과를 갔어야 했나, 어른들이 아무리 말해도 아집을 부리다가 진실을 깨닫게 됐던 어린아이의 얼굴을 했다가 일단 학생 앞이라는 현실 앞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십 년이 넘게.


이런 나를 두고

같이 일하는 동료 강사는 말했다.

[##쌤은 사랑이 많아서 그렇다]라고.


지독하게 예쁘게 포장해주었지만.

진실일 리가 없다,


[##수석은 후배 선생님들 교육할 때도 최선을 다하잖아요.]

아이를 가르칠 땐, 아이 마음이 다치게 하면 안 된다면서.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생각하면서도 혹시 그럴 수도 있나. 생각한다.


예쁜 생각을 하는 예쁜 머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했다가도 이내 나는 생각한다. 부정적으로 학습된 머리가 저런 예쁜 말을 받아들일 수 있나 하고. 이미 글러먹어서 그런 생각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예쁜 말만 하려고 노력한다.


너는, 내가 느꼈던 감정을 느끼지 마.


나는 수시 쓸 때, 진짜 외로웠는데.

누군가를 고용할 형편이 안 되어서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고,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담임조차도 제대로 관심 가져 주지 않고,

하필 장녀로 태어나 잔소리로도 참견해 줄 사람이 없어서.


멍청하다 욕을 하든,

그 정도로 떨고 있느냐 비웃든,

다 참아야 했다.


고르고 예쁜 말은 고사하고,

욕도 감사했으니.

(실제로 제일 입이 거친 어른이 제일 많이 잔소리하고 알아봐 주었다)


사실은 엄청 힘들다.

예쁜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하지만 노력하며 곁에 있으려고 하는 나를 아이들은 알아보았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들 듯

곁에서 찡찡대고 잉잉대는 아이들을

마음이 아무리 아파도 끌어안는다.


내가 좋은 선생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강사가 된 걸 후회하지는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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