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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K Aug 31. 2022

호기롭게 퇴사한 지 45일째

퇴사는 후회 없으나, 왜 이렇게 기분이 꿀꿀한지...

어렵게 퇴사를 했다. 책임자였기에 그만두는 게 맞는지 약 6개월을 고민했지만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기롭게 퇴사했고, 아직 월급이 나오는 7월 말까지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여름의 폭염은 에어컨이 날려주면 되는 것이었고, 강남을 뒤엎던 물난리 속에서도 부침개 부쳐 먹으며 집에서 쉴 수 있음이 행복했다. 

그런데 1~2 달이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벌써 45일째 서류전형도 안되거나 면접을 봐도 최종까지 못 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초조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흡사 약 10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고시 준비를 하던 그때와 너무나 흡사한 기분이라,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골프 스윙도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혔건만, 원래 잘 빗나가던 공도 오늘은 더욱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이유는 마음의 불안함이 한몫했으리라~


'여보란 듯이~' 좋은 회사로 이직하고 싶었다. 거기 아니고도 잘 먹고 잘 사는 모습, 떵떵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잘못된 포인트가 등장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모든 기준이 "외부"에 있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받기 위해 내가 굳이 그렇게 나의 삶을 계획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외부에서 나의 존재의 의의를 찾고 있었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양가의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엔 티브이 채널만 돌리거나 밀린 드라마 정주행 도장깨기를 하고 있었다. (드라마 정주행 도장깨기도 일종의 미션 수행처럼 말이다 ㅎㅎ)

혹자는 '소속감과 늘 일하던 버릇, 그 무서운 습관 때문에 쉬질 못한다'며, '쉬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제대로 놀아본 적',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휴가를 가도 돌아가서 할 일이 머릿속에 늘 있었고, 명절이나 연휴에도 밀린 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정말 잠만 자고 그냥 보내도 되나 싶은 생각에 그 시간에 집안 청소를 하지 못한 나를 또 타박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온갖 이유를 들어 운동을 하지 않거나 수영을 가지 않는 나에게 스스로 짜증 나는 일이 다반사인데, 그걸 또 먹는 걸로 푼다고 뭘 먹어야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란....

매일 바쁘게 만나던 사람들도 귀차니즘과 의미 없음을 운운하며 칩거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야 할 거 같은데, 이미 파리해진 얼굴을 햇볕에 내놓기가 못내 수줍다.


지나고 나면, '아 그때 좀 더 잘 쉬고, 놀 껄 그랬어' 그렇게 후회할걸 알면서도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나~ 갑갑한 마음에 매일 30분 하는 영어회화 시간을 빌어 다른 나라 사람에게 서툴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감정들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말을 귀담아 들어주던 영어 선생님의 한 마디가 오늘 글로 내 마음을 달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njoy the Moment!" 

앞일, 뒷일,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눈, 내가 나를 보는 눈... 그 어떤 것과 상관없이 "그저 나!!이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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