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듣기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보면 왠지 부럽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뿐 아니라 본인도 여유 있고 편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그래도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리더가 후배들을 아끼고 그들의 마음을 얻고, 더 좋은 관계를 갖고 싶은 마음은 같다.
그래서 나도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더 관심을 보이고 세심하게 챙겨도 보고, 잘못을 친절하게 지적해주고, 미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결국 돌아온 건 마음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관심 갖는 노력으로 거리만 더 생긴 느낌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을 보면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기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믿음을 갖고 기다려 준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오길 바라는 믿음과 기다림이다.
당나라 문장가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에도 이런 글이 있다. 나무 심는 직업을 가진 탁타의 이야기다. 탁타가 심은 나무는 옮겨 심더라도 죽는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 자라고 열매도 일찍 맺고 많이 열린다. 다른 사람이 탁타의 나무 심는 법을 엿보고 그대로 흉내 내어도 탁타와 같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가 많이 열게 할 능력이 없다. 나무의 천성을 따라 그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이다. 나는 그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자라게 하거나 무성하게 할 수가 없다. 다른 식목자들은 그렇지 않다. 뿌리를 접히게 하고 흙을 바꾼다. 비록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여도 사랑이 지나치고 근심이 너무 심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는 저녁에 와서 또 만지거나 살핀다. 비록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해치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한다면 탁타는 나무가 본성을 발휘하도록 기다린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믿음을 주고 기다리는 것이다. 대화에서 기다림은 듣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의 창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마음을 헤아리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의 차이는 듣기의 기술에 있다.
듣기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중요성은 알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는 듣지만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있는 그대로 듣기보다는 해석하려고 한다. 이렇게 듣는 이유는 듣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무엇이고 그것의 해답을 찾아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을 것이다. 내가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상대가 너무 쉽게 충고나 조언을 해서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누구든 이야기를 통해 답을 얻고자 하는 화자는 드물다. 그저 공감해 주고 그저 얘기를 들어주기만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듣는 힘이란 상대방을 이해하는 힘이지 답을 주는 힘이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해석하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한다. 탁타가 나무의 천성에 따라 본성을 발휘하게 했듯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이야기에 집중하며 내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는 밝은지 아니면 어두운지, 긴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세히 살피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보이지 않는 감정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듣기 기술의 첫 번째는 기다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간혹 하소연을 하는 리더들이 있다. 팀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해도 하지 않으면서 팀장이 말이 많다고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의나 팀 미팅 때도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불필요하고 뻔한 이야기로 시간만 소비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나서서 말하는데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회의 시간에 팀원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리더인 팀장의 기다림이 부족한 것이고 불필요하거나 뻔한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은 말하는 팀원의 관점이 아니라 듣는 리더의 관점에서 듣기 때문이다.
듣기는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리더의 관점에서 들으면 다른 사람의 관점은 나와 생각이 맞지 않은 틀린 의견이 될 뿐이다. 리더들이 항상 팀원들의 의견이 뻔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말을 잘하면 인정받는 사회, 특히 상명하달식의 조직문화에서 듣기는 리더의 덕목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자꾸 중간에 끼어들어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은 끝까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말하는 사람이 부하 직원이라면 더 그렇다.
말하는 팀원의 관점에서 들으면 새로운 생각의 확장이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은 내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듣기의 두 번째 기술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듯 듣는다는 것은 결코 저절로 되지 않는다. 훈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말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스피치 학원은 있지만 듣기를 가르치는 곳은 없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과 같다. 모르는 곳에 가는데 두렵고 긴장되고 불안하지 않고 설레는 것은 아마도 여행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을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무엇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여행에서는 오히려 가장 좋은 조건이 되듯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 여행 중에 자신을 비워두어야 감탄을 하듯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나 아니면 안 되고 내 생각이 언제나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땐 잠시 내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허공에 발길질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지혜는 오직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때 생겨난다. 내가 가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지금은 그 사람이 누구든 거인으로 받아들이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봐야 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이란 가장 많은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다.
들으면 더 잘 보인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 중에 청각을 통한 정보가 무려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청각 덕분에 위험을 감지하기도 하고 소리를 통해 상상할 수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우선 귀로 말을 듣고 그 다음에 들은 것을 마음속에 그림으로 옮길 수 있다. 그래서 듣는다는 것은 말한 것을 보는 것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마음이 넘쳐 밖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잘 들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담겨 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 사람이다. 말 한마디만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잘 들으면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마음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아파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다툴 일도 줄일 수 있고 좋은 관계도 만들 수 있다. 좋은 관계가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