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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여행자 Mar 17. 2020

이별의 순간

여행 에세이 <해마다 떠났어 반겨줄 곳이 있으니까>의 샘플원고

독립출판 여행 에세이 <해마다 떠났어 반겨줄 곳이 있으니까>의 샘플원고입니다.

프롤로그와 목차 3(영국: 나의 첫 반려동물은 당나귀)을 먼저 만나보세요!


이별의 순간


  마지막 밤, 나는 이탈리아 호스트에게 그랬듯이 한식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불고기를 굽고 신라면 세 봉지를 끓였다. 요리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간편했다. 노부부는 매운 라면 맛에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에서도 난생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라며 흡족해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다시 거실에 돌아왔을 때였다. 바트와 수는 그새 자그마한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구운 식빵을 담을 때 쓰던 붉은 무늬 접시 위에, 양초가 꽂힌 기차 모양 촛대가 놓였다. 중앙에는 당나귀 머리 모양 인형도 있었다. ‘클로벨리 당나귀 농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띠지가 달린 공식(?) 기념품이었다. 직접 쓴 편지 한 통과 한 입 크기의 조각 케이크까지. 소박하지만 달콤한 선물이었다. 이곳에 머문 여행자가 떠날 때마다 매번 하는 일종의 의식인가 보다. 잠깐 사용한 촛불은 그대로 보관해 두었다가, 나 다음 여행자가 떠나는 날 다시 꺼내 사용하겠지.


  “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만날 둘이서 일하다가 이렇게 여행자가 생기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또 올 거지?”

  “그럼요. 나중에 영국 남단으로 도보 여행하려고 올 거예요. 사우스웨스트 코스트 패스가 클로벨리를 지나가니까. 그때 잠시 쉬러 와도 되죠?”


  작별 인사를 할 때 착한 거짓말이 나올 때가 많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은 일종의 주문이다. 슬퍼하지 않기 위해,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기 위해 외운다. 현지 가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많은 정을 나눌수록 떠나는 날 더 힘들어진다. 행복했던 순간이 한순간 최악으로 뒤바뀐다.


  이제 작별 인사가 익숙하다. 감정에 굳은살이 박였다. 물론 예전에는 달랐다. 이별하고 나서 한동안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감성이 몰랑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익숙한 곳에 있었는데, 눈 떠보니 다른 세상. 막상 떠나는 날은 정신이 없어 슬픔에 둔감할 때가 있지만, 차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수록 지난 여행이 생각났다.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 그 순간에 더 충실할 걸 후회했다. 그런 경험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이젠 슬픔을 느낄만하면 감정이 마비된다. 솔직히 말해, 스위스와 이탈리아 호스트를 떠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의 부작용이랄까. 이별에 냉정했다.


  이번 호스트를 끝으로 유럽 여행은 끝났다. 전역하고 떠난 100일 여행. 그 끝에 느낀 점 하나 더. 워크어웨이에 대한 환상을 깼다고 할까. 그동안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완벽한 여행법이라 생각했지만, 다른 조건이 성립될 때 가능한 이야기였다. 기후·위치·음식·와이파이·일거리·호스트·또래 친구와 같이 여행자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부수적인 요소가 많다. 호스트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알맞은 시기를 놓치면, 나처럼 혹독한 겨울 날씨를 만날지도 모르고, 또래 친구 한 명 없을 수 있다. 아니면 당나귀를 만나거나. 아무쪼록 이별의 순간, 누구도 체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으로 슬픔보다는 웃음꽃을 애써 피워본다.



<해마다 떠났어 반겨줄 곳이 있으니까> 샘플북은 재밌게 보셨나요?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가는 목차였던 3장(영국: 나의 첫 반려동물은 당나귀)이었습니다.

나머지 목차는 책으로 직접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0년 4월 19일까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출판 제작비를 모으고 있습니다.

후원자분들께 가장 먼저 책과 선물을 배송해드린 뒤, 이후 동네책방에 입고(5월 예정)될 예정입니다.

이 책을 가장 빨리 만나보시는 방법은 아래를 참조해주세요.


후원 방법(책 구매 방법)

1. URL을 통해 텀블벅 크라우드펀딩에 접속한다. https://bit.ly/3aTShfQ

2. 회원가입 후 구매할 책(리워드)을 선택한다. (1권=14,500원)

3. 펀딩이 끝난 4월 20일, 결제가 진행되며 이후 배송이 시작된다.


이 책의 목차 구성


1장 스위스: 시골 가정집에서 낭만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낸 이야기

2장 이탈리아: 산골 대성당에서 신부님과 청소년들과 지낸 이야기

3장 영국: 노부부가 운영하는 당나귀 농장을 체험한 이야기 (샘플원고)

4장 미국: 수영장 딸린 저택에서 막노동을 시작한 이야기

5장 멕시코: 한류 열풍 속 현지 대학교에서 한국어 수업한 이야기

6장 페루: 외딴 오지에서 다국적 여행자들과 함께 밭일한 이야기

7장 칠레: 바닷가 오두막에서 보수 공사를 도운 이야기

8장 아르헨티나: 관광지 여관에서 현지 요리를 배우며 유유자적 지낸 이야기


아래 영상은 브런치 구독자분들을 위해 찍었습니다:)

오글거리지만 1분 영상이니 이쁘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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