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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마 Nov 25. 2019

#1. 멕시코와의 첫 만남.

하고 많은 나라 중 내가 멕시코에 가게 된 이유.

스페인어과 출신인 나는, 스페인어를 스페인 말고도 다른 나라에서 사용한다는 사실을 대학에 와서나 알았다.


학과 동기들 중에는 중남미 각지에서 살다 온 이른바 ‘교포’인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은 어리숙한 한국 고등학생 티를 갓 벗은 우리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한국어보다도 스페인어가 편한 그들끼리 자유자재로 입 안에서 스페인어를 굴리며 대화할 때면 모두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었다.

여하튼 이 교포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며 그들의 언어를 배워서 그런지 나에게 처음부터 중남미는 무서운 이미지보다는 언젠가 꼭 한 번은 가고 싶은 그런 지역이었다.


그럭저럭 대학 시절을 보내던 중 고학년이 되어 수강한 중남미 정치 수업은 중남미에 가고 싶다는 내 마음에 제대로 불을 지폈다. 스페인의 침략과 약탈, 이후 끈질긴 독립운동으로 스페인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났지만 여전히 낮은 경제 수준과 혼란한 정치 속에 살고 있는 그들. 정치 수업을 들으면서 그들이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는 어찌 보면 소박한, 또는 원대할지도 모를 꿈을 품게 되었다.


멕시코 독립전쟁 100주년 기념비 'Ángel de la Independencia (독립의 천사)'


그리고 뭔지 모르겠고 일단 중남미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게 뭔진 모르겠으나, 직접 그곳을 경험해봐야 그들을 돕든 어쩌든 할 것이 아닌가.

원래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고, 하나에 꽂히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성미 급한 성격인지라 적극적으로 중남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당시 돈을 들이지 않고 해외에 다녀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것이었고, 학과 홈페이지부터 구글까지 샅샅이 뒤져 중남미에 있는 한국 회사들에 인턴으로 일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중에 한 군데서 답을 해준 곳이 멕시코에 있는 무역회사였다.




그렇다. 사실 처음에 멕시코에 가게 된 데는 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난 그저 중남미가 궁금했고, 중남미 중 스페인어가 통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일단 가보고 싶었는데 우연히도 멕시코에 있는 회사에서 나를 받아줬을 뿐이다.

마지막까지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위험천만한 멕시코에 간다는 사실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나에겐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고 나는 그 기회를 꼭 붙잡고 싶었다.


멕시코 시티의 구시가지 (Centro Histórico)


그렇게 패기 넘치게 도착한 멕시코의 첫 느낌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사실 처음엔 도시보다도 회사 건물이 좀 충격이었다.

무너질 듯한 오래된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자주 말썽을 부렸고, 지진의 여파로 벽 구석구석이 금이 가 있었다. (멕시코 시티는 호수를 메워서 만든 도시라 지반이 매우 약해 지진이 잦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나무로 된 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었는데 한국인과 함께 일하는 비서나 요직에 있는 멕시칸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사무실의 이중문 바깥에서 대화해야 했다.

이중문은 이전에 강도가 든 이후로 바뀌었다나..

사무용품도 책상이며 의자며 한눈에 봐도 연식이 어마어마한 것들이었고 초등학교 때나 봤었던 것 같은 철제 캐비닛은 잘 열리지 않아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면 그제야 '철컹' 소리를 내고 열렸다.

 그나마 내 사수가 대학교 선배였고 나를 잘 챙겨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하루 만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의 위치 또한 만만치 않았다. 사무실은 멕시코의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었는데, 구시가지는 정비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어쩐지 꾀죄죄한 느낌이 많이 드는 지역이었다.


(사무실이 좋은 회사도 많고, 나중에 이 회사도 좋은 곳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평범한 사무실의 모습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세계 어디서나 같은 맛!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미국이 멕시코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참 꼴 뵈기가 싫고 정치학 수업을 들으며 그것 때문에 분개했던 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익숙한 미국 브랜드를 접하면서 멕시코와의 접점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멕시코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한국에도 잘 없는 미국 브랜드와 프랜차이즈가 상당히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지리적으로 워낙 가깝기도 하고 이민자들의 영향도 있기에 멕시코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지구 반대편의 낯선 곳에서, 그렇게 운명같이 멕시코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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