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동휘 Oct 14. 2024

왜 나를 싫어하나

학창 시절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한 동기가 있었다.

고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는 밝히지는 않겠다.


나는 그 동기 때문에, 1년간 은따를 당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함에도 이유가 딱히 있진 않다.


그와는 반대로 사람이 사람을 싫어함에도 이유가 딱히 있진 않았다.


"너는 왜? 나를 싫어해?"

"사람이 사람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어? 그냥 싫어"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냥, 나는 네가 하는 행동, 말투, 숨소리, 그냥 다 싫어"


동기에게 동기는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동기를 용서했을까?


솔직히 나는 마음 같아서는 이 글에 그 아이 이름을 쓸까도

고민을 100번은 했다.


그러면 그 친구에게 창피라는 걸 선물할 수 있으니까.


나는 전학생 신분이었고,

그래도 꽤 이름 있는 학교에서, 그렇게 사람을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끔찍했다.


나는 키가 작았고,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선생님들이 좋아했다.

하지만 그게 친구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친구는 나 못지않게 친구가 많았으니까.

죽고 싶었다 까진 아니지만, 살기가 싫었다.


가끔은 '살기'로 꿈속에서 그 친구를 베기도 했다.

그 정도로 싫었다.

강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나는 크리스천인데

이렇게 죽이고 싶을까.

죽이고 싶은 마음이 꿈으로 표현됐다는 게 슬펐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약점을 다른 친구에게 말하기도 하는 못된 녀석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나를 보란 듯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란 듯이 힘차게 살아가면 된다고.

왕따나, 은따나, 학교폭력을 당해 힘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시키는 아이들은 항상 이런 소리를 한다.

'야, 어차피 학교도, 어른들도, 우리랑 한통속이야.

굳이 신고하지 마. 어차피 내가 다 아는 수가 있어'

등의 가스라이팅이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믿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믿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힘의 논리에 속아 넘어갈 뿐이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그들 때문에

내 삶을 이유 없이 버리진 말자고

긴 글은 아니지만, 용기를 잃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맞거나 따돌림을 당하면,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의 희망이 아닌 듯한다.

사람이 죽고 싶을 때는 절망이 마음속에 가득 차있을 때가 아니다.


내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못 느낄 때, 죽고 싶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살기가 싫다. 는 표현이 옳다.


그래도 살아보려 해

나는 나 자신이 싫을 때가 많고,

성공 다운 성공을 해본 적이 없어.

내 삶은 햇빛보다는 먹구름이 더 많아.


그래도 살아보려 해

내가 살아야, 조금이나마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글을 하나 둘 적어나갈 수 있으니까.


나같이 힘든 사람들, 나보다 힘든 사람들 많겠지.

그런 그대들과 함께 걷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


빛 한줄기 안 보이는 삶 속에도,

이렇게 살아보려는 사람이 있고,

나는 당신의 편이라고, 나는 당신의 편에서 용기를 전하겠다고

삶이 너무 힘들면 나는 민들레 홀씨를 본다.


민들레 홀씨는 매우 작지만, 그 안에 생명이 가득 담겨있다.

그런 생명처럼, 당신도 귀하다고

당신은 작지만 귀하다고.


수요일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