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일이 조금 무섭다.
3가지 이유로 생일이 조금 무섭다.
첫째, 학창 시절 나를 괴롭힌 친구들과 생일을 함께했다.
둘째, 생일이 지나 얼마 안 돼서 반죽음 시도를 했다.
셋째, 생일을 혼자 보낸 적이 있다.
첫 번째 이유 이야기를 조금 하겠다.
나는 학창 시절 피자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생일날 피자를 먹기로 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생일잔치를 열어주셨다.
나는 중학교 근처, 피자집에서 생일파티를 했다.
하지만 나와 친했던 친구들은 사실 나를 괴롭히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 중 일부는 당시 유행하던
프로레슬링 놀이나 무에타이 놀이를 하며
조금 쌔게 나를 때렸다. 또는 친구 집에서 나를 때렸다.
한 친구는 학원을 빼고 나랑 놀 것을 강제했다.
사실 그 친구네 집과 학원과는 정반대방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가 별로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친구들과 나는 피자를 먹었다.
물론 생일파티에 부모님은 안 계셨다.
지금 생각해도 치욕스러운 건, 콜라에 핫소스 외 여러 소스를
섞었고, 마시게 했다.
그 외에 다른 괴롭힘도 있었지만, 굳이 다 쓰진 않겠다.
지금 생각해도 좀 화가 나고, 내가 피자는 시켜 먹지만, 피자집은
그 이후로 별로 안 가게 된 이유다.
물론 그 친구들 중 한 명을 나는 용서하긴 했다.
용서는 가해자의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것이다.
용서가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용서는 오래 걸릴 때가 많다. 나는 용서에 1년도 걸리고,
29년도 걸렸다.
용서의 조건이 있다면, 2가지다.
첫째, 진심을 다해서 용서를 구하는가? 둘째, 정말 그가 바뀌었는가.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정말 변했다.
친구가 용서를 빌 때, 나는 그를 안아줬다.
"약한 친구라는 이유로 때려서 미안해, 넌 진정한 친구인데,
가끔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너를 때렸어. 정말 미안해...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였다.
다른 친구는 방관을 했다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너를 괴롭힌 친구와도 나는 친하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어. 지금에야 고백한다." 며 밥을 사줬다.
생일이 조금 무서운 이유 두 번째는
저번 글에서도 썼지만,
나는 생일 이후 어느 날 반죽음 시도를 했다.
아마 오늘 이쯤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진짜 죽음을 볼 뻔했을 때 살았다.
죽음도 일종의 신호등이 아닐까 한다.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은 초록불이고,
인생길 속에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거나 죽을뻔한 것은 노란불이고,
진짜 죽는 것은 빨간불이다.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신호의 강을 건널뻔했다.
몸은 마비라도 된 양 움직이지 않았고, 내 몸은
미친 듯이 흔들거렸다. 아마 가족이 날 발견치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다. 지금도 생일이나 생일 근처가 되면 기억이 생생하다.
세 번째로 생일을 혼자 보낸 적이 있다.
어렸을 적 한때 어머니는 너무 바쁘셨고,
아버지는 직장을 다니시느라 생일을 혼자 보냈다.
물론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는다.
하지만 블록과 함께, 책과 함께 시간을 외로이 보냈다.
나는 생일을 혼자 외로이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내 글에 완벽하게 위로되진 않겠지만,
생일을 혼자 보낸다고, 당신의 태어남이 쓸모없는 건 아니라고
그 쓸쓸한 시간 속에도 당신의 현재는 빚어지고 있으며,
그 현재가 모여, 찬란한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생일이 오는 게 두려운 사람이 혹시 있을까? 해서
이 글을 적기 시작했다. 두려움의 3가지 이유를 적어봤다.
생일이 두려울 때, 종종 적는 글이다.
두려움은 적이다. 적은 적을 때, 비로소 적의 존재를 알게 된다.
나는 생일이 두렵다. 이 두려움이 무엇에서 기인하는지를 안다.
그러나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짧은 글이라도 언젠가 반드시 적겠다.
라고 적은 글이 이 글이다.
이 글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글이 아니다.
이 글은 삶의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는 그대가,
생일이 두려운 그대가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견디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두려움이 밀려오면, 견디지 말고 안아주세요.
이기려고 하지 말고, 때론 져주기도 하고
두려움에 안녕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세요.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 나 자체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때론 두려움을 놓아주세요.
두려움을 이길 정도로 사람이 강하진 않지만,
두려움과 함께 살아갈 정도론 지어졌답니다.
다음 화에서 만나요.
생일을 두려워하던 그대가
조금은 나아졌길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