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살기가 싫어졌다.
살기 싫다고 본격적으로 느낀 건
학교폭력을 당하던 중1도, 은따였던 고1도
아니었다.
바로 취업준비생 시절이었다.
대학교는 방황하느라 학점이 낮았고,
자기소개서는 계속 써도 도저히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냥 죽어버릴까'
라는 마음도 있었다.
너무 우울하고, 앞도 보이지 않는 듯해
내가 찾은 것은 정신과였다.
지금도 정신과를 향한 눈빛은 좋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정신과를 찾은 그때 역시
지금보다 더 오해가 많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2 가지 있다.
첫째, 정신과 치료기록이 취업에 방해가 된다는 오해다.
정신과 치료기록은 사장님도 모른다. 진료기록이 설령 남는다 해도,
취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나도 이런 오해가 있어서,
사실 발걸음을 주저했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나는 1년 후 결국 취업을 했기에, 이는 사실이 아니다.
둘째, 정신과는 매우 이상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매우 이상한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다. 정신과도 다른 과와 똑같은 병원이다.
단지 과명이 그럴 뿐이다. 또한 정신과는 약칭일 뿐,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고, 나만 뒤처진 것 같았다.
나는 왜 살까? 란 질문을 수백 번 반복했다.
2018년 11월의 어느 날, 나는 결국
반죽음 시도를 했다.
사실 정말 죽으려고 한 건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시도한 방법을 쓰면 누군가 따라 할까 봐 자세한
방법은 쓰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거의 반죽음에 가까워져 죽기 전
나는 외출을 마치고 온 부모님께 구출됐다.
병원에 사흘을 있어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답답해서 내가 '그래도 살아봐야겠다.' 란 마음을 먹은 건 아니다.
나는 병원의 한 어르신으로부터,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엿보았다.
암이란 큰 병이 있다고 들었는데도, 늘 웃으셨다.
한 번은 너무 궁금해 여쭤봤다.
'삶에서 웃을 일도 적은데, 그래도 기왕 갈 날도 별로 안 남은
늙은이가 웃는 게 낫지 않겠어?'라는 말씀이었다.
그 말을 듣고 엄청 용기를 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멈추기로 했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