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아들의 생일을 잊은 채 그냥 지나갔다. 처음이 아니다. 부모님 생신 시집제사까지는 달력에 매년 확인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소중한 보물인 큰아들의 생일을 잊고 지났다.
본인의 생일을 깜빡하다가 언젠가부터 큰 딸인 내 생일을 까먹었다며 미안해하던 엄마를 닮아간다. 어제저녁 갑자기 떠오른 날짜에 화들짝 놀라 밤 10시가 넘어 전화한 엄마가 되었다.
"아들!! 엄마가 니 생일을 깜빡했네 미안해.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아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며 물었다.
" 아,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엄마 이 시간에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예요? 다른 일은 없는 거지!"
바쁜 일정의 엄마 변명에 혹시나 하는 아들의 걱정을 뒤로 통화를 끊고 나서도 미안함이 남았다. 괜찮다는 아들이 걸리며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엄마의 빈자리가 되살아 났다.
나이 들어 맞이한 내 생일즈음에 불현듯 느꼈던 나를 낳아준 엄마를 향한 감사였다. 태어난 날의 축하는 낳아주신 부모를 위한 것이 도리라 생각되었다. 산고의 고통으로 힘들었을 엄마가 내 생일축하의 주인공임을 깨달으며 그날 이후 내 생일은 엄마를 위한 축하로 이어졌었다. 나를 낳은 엄마와 태어난 딸이 서로를 축하했던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겁니다.....
우리는 생일이 아니라 더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지요.] -무탄트 메시지 중에서”
지구에 마지막 남았던 참사랑부족의 태어난 날의 개념은 삶에 대해 훨씬 본질적이다.
저절로 먹게 되는 생일의 의미가 누군가의 축하가 아닌 스스로의 자각으로 이루어진다는 그들의 기준이 철학적 깨달음처럼 내게 다가온다.
다음 생일엔 지혜로움의 축하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