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명절이 보너스다
대한민국 주부들에게 명절은 아직도 힘들고 괴로운 날인가 보다. 스트레스 증상에서 이혼까지 언급되는 명절 증후군 현상이 여전하니 말이다.
남편의 부모와 일가들이 모인 시댁에서 제사음식과 매 끼니 뒤치다꺼리에 감정대립으로 부대끼는 극한체험 명절이 2025년 현재까지 진행형인 것일까.
시대가 바뀌어 명절 연휴를 해외여행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최고를 기록했다지만 고속도로는 여전히 귀성객으로 혼잡하다. 시댁과 처가의 부모를 찾는 부부간의 동등한 문화가 일상이 되었어도 명절만 되면 가슴에 멍이 든다 하여 '멍절'이라 부르기도 한다니 명절 부부갈등은 변함없는 흐름인가 보다.
명절이 다가올 때쯤 심장이 두근대고 두통과 구역질로 명절증후군을 온몸으로 실감했던 며느리였다. 제사에 필요한 온갖 음식준비로 명절 전부터 아침 일찍 시댁으로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힘든 일정이 당연했던 시절을 보냈으니 말이다.
누군가 말했다지 '세월이 약이라'고. 백번 맞는 말이다. 수십 년 전 하세월이 아득하니 그때가 언제였는지 가물대는 오늘, 세월은 유수 같다.
유래 없이 긴 설 명절 연휴를 앞두고 이런저런 소식으로 뉴스가 시끌시끌하다. 며느리와 손주를 만날 법한 60의 나는 딱히 하릴없이 TV앞에 앉은 자유부인이 되었다. 챙겨야 할 시어머니도 맞아야 할 며느리와 손주도 없으니 길고 긴 명절이 내겐 그저 달력 속 빨간 날이다. 지겹고 걱정 많던 명절은 30년 세월 속에 흘러갔고 결혼은 아직 아니라는 mz세대 두 아들은 미리 당긴 세배 뒤 여행 예정이란다.
여유롭게 한가한 명절이 노년의 보너스려니 위안하는 오후가 적막하게 한가하다.
동네 정육점이 불난 호떡집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날, 적적한 집에 앉아 육전에 갈비를 준비하며 나 홀로 명절전야에 빠져보았다. 간만에 솜씨 낸 갈비손질에 어깨가 욱신거려 파스로 도배한 등짝이 내게 말한다.
"시킬 때는 죽게 싫던 부엌일을 나이 들어 굳이하는 심사에 니 몸만 괴롭다"
집안이 떠내려갈 듯 TV삼매경인 남편은 복잡한 마누라 심정은 안중에도 없이 30년 전 그날처럼 오늘도 명절손님인 대한민국 한량남자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