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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이야기

가을을 보내며

by 가히

12월의 첫 주말 베란다로 쏟아지는 마지막 가을 햇살이 밖으로 나오라 손짓하는 듯했다. 단단히 옷을 입고 집을 나서 아침 걷기를 시작했다. 햇살은 눈부셨지만 차가운 바람의 상쾌함이 온 마음을 맑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아파트 공터의 낙엽과 아직 떨어지지 않은 고운 빛깔 나무 잎들은 하늘과 어우러져 여전히 한 폭의 그림이었다.


“멀리 갈 것 없어, 아파트 단풍이 제일이니까.”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오래 운전할 필요도, 인파 속에서 신경 쓸 일도 없이 내 집 앞에서 한가히 바라보는 가을 풍경은 그 자체로 여유로움이 된다.


지척에 있는 호수공원의 나무들도 아직은 알록달록한 빛깔을 간직하고, 떨어진 잎들은 햇살을 받아 환한 빛을 냈다. 바람이 아직 매섭지 않은 주말 아침, 호수 다리 아래로 검은 오리들이 줄지어 떠다니는 모습에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은 아니어도 집 근처 공원에서 느끼는 계절변화와 자연의 순리를 느끼게 하는 아침이었다. 문득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그러던 순간, 호수 위를 가로질러 하얀 백로 한 마리가 그림처럼 날아갔다. 놓칠세라 급히 휴대폰을 들었지만, 유유히 날아가는 그 자태를 끝내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커다랗고 고운 모습이 아른거려 날아간 방향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떼며 생각했다.

‘아침 산책길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참 복된 하루구나.’


그러다 호수 끝 도로에 이르렀을 때, 청정한 가을 공기를 가르며 매캐한 담배 냄새가 갑자기 코끝을 찔렀다. 후각이 예민한 나는 담배 연기가 숨을 막을 만큼 불쾌하게 느껴졌다. 평화롭던 분위기를 깨뜨린 냄새에 주변을 둘러보니, 공원 내 금연 구역에서 한 남성이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차림새로 보아 공원 관리자나 호수 수질관리 직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행동은 더욱 무책임해 보였다.


깊어가는 가을, 풍경과 공기가 마음을 채우던 아침. 그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은 저 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서로의 작은 배려가 계절을 더 깊게 하고 그 향기가 다시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12월의 첫 주를 보내며 가을의 마지막 모습이 더욱 깊고 조용하게 내 안에 머문다. 자연이 보여준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어우러진, 소소하지만 선물 같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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