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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Sep 11. 2023

강아지 임시보호는 처음이라서

박가온 임보일기#1 너의 존재 

집에 강아지가 생겼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삶은 거의 10여 년 만이다. 어릴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본가에서 키우던 시츄 모모, 모모가 열다섯 살 때 떠난 이후 우리 가족은 한동안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 



가온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 알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믹스견' 그리고 '교통사고'. 흐린 화질이지만 다리 여기저기 빨간 상처를 안고 흙바닥 위에 버티고 서있는 아이의 모습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친분이 있는 구조단체 담당자분께 여쭈어보니, 마침 최근 구조되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름은 '가온'이라고. 


그리고 보내주신 현재 상황. 또렷한 영상과 사진으로 보이는 가온이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https://www.instagram.com/p/CwPcZTCBd_T/?img_index=1



단순한 교통사고도 아니고, 오토바이나 차 등에 끌려다닌 것처럼 피부에 크고 작은 찰과상이 가득한 상태. 그럼에도 쉴 새 없이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고, 다정한 눈으로 얼굴을 기대고, 씩씩하게 걸어 보이는. 


가온이의 임보자가 되기로 한다. 




새로운 생명체를 만나는 것은 어찌나 설레는 일인지. 가온이를 기다리는 며칠간 하나뿐인 영상을 수없이 돌려봤다. 누가 봐도 눈썹을 찌푸릴만한 저릿한 상처를 달고서, 거침없이 들이대는 착한 눈망울이 예뻐 죽겠다. 


2023년 9월 10일 일요일 늦은 밤, 가온이가 드디어 도착했다. 커다란 켄넬 안에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저 조용하다. 조심스레 집으로 올라가 켄넬 문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크게 낯도 가리지 않고 기꺼이 밖으로 몸을 드러내 보이는 녀석. 겁먹은 꼬리는 잔뜩 내려가있는데 또 쉴 새 없이 흔들린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 사랑을 갈구한다. 


세 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 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밥도 물도 먹지 않고 그저 한참 동안 사람 곁에만 붙어있다. 가장 고팠던 건 온기였겠지. 배변판을 깔아 두었지만 거실 한복판에 똥과 오줌을 선물하며 환영식도 마친다. 그래, 사람 같은 눈을 하고 있는 너도 강아지였지. 우리 같이 잘해보자. 잘 부탁해.


밤에 끙끙대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혼자 켄넬 안에 들어가 씩씩하게 잘도 잔다. 그러다 또 쳐다보면 스윽 나와서 몸을 비비고, 장난감도 간식도 마다하고 그저 손길만 바란다. 사료를 조금이라도 먹기 시작한 건 다음 날 아침 인사를 마치고 서였다. 안 그래도 비쩍 말라서 우적우적 많이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밥그릇 옆에 서서 자꾸만 가리키니 인심 쓴다는 듯 한 두 번 깨작깨작 먹어준다. 뭐가 그리 불안할까.




개 한 마리가 삶을 바꾼다. 가온이의 존재는 어제와 오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지평선이다. 우리는 이제 다시는 가온이를 모르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새까맣고 미끈한 코, 촉촉한 갈색 눈망울, 묵직하고 따끈한 무게감. 그런 것들은 구수하고 질펀한 똥덩어리, 연노랑 물 한 컵을 엎지른 듯한 오줌, 목욕을 해도 잘 지워지지 않을 꼬숩고 따끈한 체향 같은 것들과 함께 온다. 


그 모든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감싸 안는 것,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는 것. 개와 함께하는 삶.



너의 임시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늘 한가운데서 사랑받으며 온기를 더하는 나날들만이 네 앞에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임시보호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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