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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Mar 26. 2024

캐나다체크인, 임보 강아지를 떠나보낸다는 것

박가온 임보일기#7 시골 똥개에서 벤쿠버 반려견으로


임보 6개월 차, 첫 번째 임보 강아지 가온이를 캐나다로 보내고 써 내려가는 마지막 기억들.




입양 홍보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첫 번째 입양 신청이 들어왔다. 사실 가온이의 입양 홍보는 다소 늦게 시작되었는데,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함께 훈련을 받느라 지연된 부분도 있었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너무 일찍 떠나버릴까 봐 최대한 홍보를 늦추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결국 단체에서 먼저 "가온이 입양 공고 올려도 될까요?"라고 연락이 왔을 때, 이제 정말 때가 되었구나를 실감하고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누구보다 열심히 홍보를 시작했지만 막상 이렇게 빠르게 신청이 올 줄은 몰랐다. 내 눈에만 예쁜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도 예쁜 강아지였구나.


단체로부터 입양 신청이 들어왔다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어떤 감정인지 느낄 새도 없이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이렇게 빨리? 게다가 캐나다에서 온 신청이라고 한다. 어떤 집일까,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한 와중에 핸드폰에 인스타그램 알림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가온의 계정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다.


"안녕, 조금 전 가온이 입양 신청 했는데 혹시 영어로 대화할 수 있을까?"


입양자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한, 임보자가 입양자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대다수 단체에서 입양자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뜻 먼저 날아온 메시지. 떨리는 마음으로 보낸 이의 프로필을 확인한다. 햇살 가득한 따사로운 분위기의 포근한 집, 선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젊은 부부와,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강아지들의 사진들로 꽉 채워진 피드. 아, 이 집에 가겠구나. 입양 신청은 거절되지 않겠구나.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다가온 이별의 예감에 또 한 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리스와의 대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인 두 사람은, 3층짜리 타운 하우스에서 살고 있고 유기견 임시보호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입양도 고려하게 되었고 수많은 아이들 중 가온이가 한눈에 들어와 입양 신청까지 하게 되었다고.


아이리스와 나는 정말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가온이의 시시콜콜한 모든 것들에 대해 궁금해했고, 나는 내가 아는 가온이의 모든 정보와 가지고 있는 사진, 영상들을 잔뜩 보내주었다. 내가 가온이를 아직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별개로, 그들이 너무나 좋은 입양처임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음 주, 아이리스와 단체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아이리스는 모든 과정을 내게 공유해 주었는데, 가온이 뿐 아니라 함께 고려 중인 다른 후보도 있다고 했다. 눈치로 보아서 아이리스의 1순위는 가온이 인데 남편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입양 심사가 확정된 이후에도 며칠 동안 연락이 없어, 아 결국 다른 친구가 확정되었나 보다 짐작했다. 그래, 조금 더 함께 있을 수 있으니 다행이지 싶은 마음과 동시에 섭섭한 감정도 들었다. 우리 가온이가 뭐 어때서? 이보다 더 예쁜 강아지가 어디 있다고!




며칠 후, 아이리스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가온이의 입양을 최종 결정했다고. 단체에서도 곧 메시지가 날아왔다. 가온이의 캐나다 출국이 확정되었으며, 예상 출국일은 4월 첫 번째 주라고. 한 달도 남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다. 아니, 입양 신청도 무산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렇게 빨리..?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갈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돌봐주는 것뿐.


해외 입양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밴쿠버까지 비행기로 약 10 시간. 그 긴 시간을 개들은 좁은 이동장 안에 꼼짝없이 갇혀 화물칸에 실려 가야 한다. 비행만 10 시간이지, 앞 뒤 이동 시간부터 수속을 위해 미리 대기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15시간이 훌쩍 넘었다. 가온이는 다행히 크레이트에서 잘 있는 편이었지만 어디로 가는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15시간을 낯선 소음과 진동 속에서 버텨야 한다니, 그리고 그 고난 끝에 반가운 얼굴들 대신 더욱더 낯선 환경만이 기다리고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눈앞이 자꾸 뿌예졌다.


결국 우리는 밴쿠버행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날이 풀리면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기도 했고, 직접 가온이를 입양처까지 인도해 주고 간 김에 캐나다 여행도 하고 오면 서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입양처에서는 4월 초에 가온이를 인도받고 싶어 하는데 우리가 가능한 가장 빠른 일정은 5월이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아직 이동봉사자가 구해진 것도 아니고, 티켓이 없어 한 두 달 정도 밀리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우리가 가도 좋지 않을까? 좋을 대로 생각하며 가온이와 함께하는 캐나다 여행으로 마음을 부풀리던 차에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다. 이동봉사자가 구해졌다고, 그것도 이번 주 주말로.




4월이 아닌 3월 중순, 고작 5일 후에 가온이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또 한 번의 울음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2시간 후, 우리는 허겁지겁 짐을 챙겨 해남으로 훌쩍 떠났다. 원래는 다음 주쯤 예정되어 있던 여행이었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다녀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3박 4일, 넓은 마당이 있는 해남 집에서 우리는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뛰어놀고, 고기도 구워 먹고, 늘어지게 잠을 자기도 하며. 가온이가 활짝 웃는 얼굴로 마당과 집 안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고즈넉하고 따분한 시골집에서, 하루하루를 둥둥 떠내려가듯 남은 일생을 살아가도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 강아지 한 마리가 대체 뭐라고, 이 작은 짐승의 행복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우리는 이렇게 울고 웃을까. 정말 이상한 일이다.




시간은 언제나처럼 빠르게 흘러 토요일 오전이 되었다. 토요일 일정을 모두 빼고 가온이와 함께 공향으로 향했다. 거한 아침 운동을 마치고 크레이트 안에 갇힌 가온이는 대체로 침착해 보였는데, 낯선 사람들이 둘러싸고 크레이트를 그물망으로 포장하기 시작하자 불안감을 느낀 듯 낑낑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꾹꾹 참던 눈물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은 짧았다. 가온이는 평소와 달리 애절하게 울며 철장의 작은 구멍 사이로 코를 들이밀거나 발을 내밀어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쯤 크레이트 앞에 함께 쪼그려 앉아 있었을까, 마침내 떠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고 뒤를 쫓아가던 나는 여기서부턴 내가 함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직원분께 마지막 인사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잠깐 이동을 멈춰주셔서 앞에 쪼그려 앉았지만, 이동장 안에 갇혀 있는 가온이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몇 번 철장을 쓰다듬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게 허망했던 마지막 순간.





다른 대다수의 강아지들처럼, 가온이도 무사히 캐나다에 잘 도착했다. 인간의 우려와 달리 개들은 강하다. 작은 개든, 겁이 많은 개든, 대부분의 개들은 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잘 버티고 건강한 상태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다행히 가온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리스가 실시간으로 가온이의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었다. 사실 이렇게 근황을 바로바로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 대부분 입양자와 연락을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단체를 거쳐 소식을 알 때까지 며칠이든 몇 주든 기다리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잘 지낼 것이라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가온이는 클로버가 되었다. 가온이라는 이름을 잘 알아들었던지라 이름 바꾸는 것이 걱정이 되었는데, 클로버라니 어떻게 그렇게 찰떡인 이름을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검은 클로버를 꼭 닮은 가온이. 게다가 가온이가 밴쿠버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날인 3월 17일은 성 패트릭 데이로 이 날을 기념하는 상징이 클로버라고 한다. 행복과 행운이 가득한 강아지, 가온이에게 꼭 맞는 이름이었다.


캐나다에서 더 예뻐진 녀석


가온이가 캐나다에서 맞는 첫 순간들을 영상으로 기록해 줄 수 있냐는 내 물음에 아이리스는 "가로로 찍어줄까 세로로 찍어줄까?"로 답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보내주었던 것 이상으로, 매일매일 많은 영상들과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가온이가 이동장에서 나오는 첫 순간, 밥을 먹는 첫 순간, 산책을 하는 첫 순간.. 마치 공동육아라도 하듯 가온의 모든 세세한 소식과 정보들을 공유해 주었고 병원 검진 결과까지 시시콜콜 전달해 주었다. 본인도 임시보호를 꾸준히 해오고 있어서일까, 아이리스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가온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우리가 그 녀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원래도 낯을 가리지 않던 가온이는 새 환경에서 빠르게 적응했다. 하지만 여전히 계속 두리번거린다고, 아무래도 너희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 말에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흘쯤 지난 지금, 가온이는 섭섭하리만치 적응을 완벽히 마친 모양이다. 부지런히 사방팔방 풀냄새를 맡고, 친구들을 툭툭 치며 장난을 걸고, 품 안에서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들고, 집에 돌아온 보호자를 격한 엉덩이 댄스로 맞이하는 영상 속 모습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그 모든 모습들이다. 우리 집에서 잘 적응했듯이, 우리가 그를 너무나 사랑했듯이, 어디서든 잘 적응하고 사랑받을 강아지.


*클로버의 인스타 계정

https://www.instagram.com/fourpaw.clover


마음에 드는 침대를 사달라고 뗴쓰는 클로버




사실 우리는 가온이를 입양하고 싶었다. 다만 우리가 그에게 최선의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좋은 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입양 홍보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더 나은 가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편한 마음으로 입양신청서를 제출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멋진 강아지에게 좋은 가족이 나타나지 않을 리 없다는 사실을.


네 웃음을 잊지 않을거야


가온이를 임시보호 한 것도, 가온이가 완벽한 가족을 만난 것도 돌아보니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우리가 몇 년 후에, 조금 더 안정되고 여유가 있었을 때 가온이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망설임 없이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토록 우리에게 완벽했던 가온이는 왜 하필 첫 번째 임보 강아지였을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그런 걸까, 그런 덧없는 대화들을.




임시보호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어떤 순간들보다, 마지막 떠나보냄이 가장 어렵다. 우리가 왜 너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지, 너의 일 년은 책임져줄 수 있지만 이십 년은 책임져줄 수 없는지 설명할 수 없고, 이것은 네 짧은 생에 마지막 이별이라고, 이제는 영영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알려줄 수 없어서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실 이별의 아픔과 떠나보냄의 아쉬움은 모두 인간의 몫일지 모른다. 대부분 입양처는 임보처보다 좋은 환경이고, 대다수 동물들은 좋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기 때문이다.


이동장에 갇힌 가온이에게 내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더 오래 있을수록, 더 좋은 곳에 가는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너는 더 많이 행복해질 거야."


긴 기다림 끝 철장 문이 열리는 순간마다 가온의 생은 바뀌었다. 길바닥에서 시보호소로, 시보호소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임보처로, 임보처에서 입양처로.. 이동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지만, 기다림 만큼이나 매번 더 나은 변화가 생겼다. 모든 걸 설명할 순 없지만 그 단순한 규칙만큼은 가온이가 이해해 주기를, 열 몇 시간의 공포에 집어삼켜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느 따뜻한 오후, 아이리스에게 날아온 사진을 보니 똑똑한 녀석은 다행히 그 법칙을 잘 이해한 모양이다.



여유롭게 크레이트 안에 누워,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멋진 강아지. 열흘 뒤 안락사 예정이었던 시골 똥강아지가, 밴쿠버 도심을 활보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반려견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클로버의 견생 역전, 그 고단한 여정의 한 챕터를 임보자로서 함께할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했다.


네가 찾은 해피 엔딩을 진심으로 축하해. 누구보다 씩씩하고 해맑았던, 잠시나마 나의 강아지였던 너의 앞길에 행복과 행운만이 가득하기를.


안녕, 나의 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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