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에는 좀비가 있었지

by 헤일리 데일리

시댁 큰집의 팔순잔치가 있어서 아침부터 대구로 향했다. 나는 새벽부터 어느 정도 할 일들을 처리하고 부랴부랴 나갈 채비를 했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려는 아이를 깨우고 빠듯하게 집을 나왔다. KTX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아뿔싸! 선물을 사두었는데 집에 놓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플랜 B를 발동했다. 선물 대신 현금을 드리는 걸로. 아마 그걸 더 좋아하시리라.

노량진, 용산역을 지나 서울역으로 갈수록 느려지는 1호선 전철이 마음을 더 조급하게 했다. 서울역 신호대기 관계로 천천히 가야 한다는데... 열차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한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결국 3분 전에 서울역에서 우리는 내렸고 전속력을 다해 플랫폼으로 뛰었다.

헉헉거리며 열차에 겨우 탑승한 우리. 열차 출발은 지연되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정시에 맞추느라 사력을 다해 뛰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탔으니까 다행인 것!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14 호칸을 향해 걸어갔다. 5호에서 탔으니 거의 끝까지 걸어가야 되는 모양이었다. 애와 짐을 동시에 거느리고 가다 보니 너무 버거웠고, 설상가상으로 6~13까지 중간 번호의 칸들을 모두 다 거쳐가야 했었다. 나는 6호쯤 되면 그 뒷번호가 생략되고 10호 정도에서 다시 시작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만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14호차 우리 좌석에 도달했다. 중간에 한 승객분께서 다리가 불편하셔서 통로에 누워계시기도 했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정말 많은 난관들을 거치며 말이다. 거의 설국열차를 찍는 줄 알았다.




그 뒤로는 대구에서 순탄하지만 순탄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여정을 마치고 지금 서울행 KTX에 올랐다. 순탄치 못했다 함은 아마도 우리 집 꼬맹이 탓이겠지? (하하 그저 웃지요.) 아침부터 아이를 들고 업고 뛰느라 녹초가 된 남편은 아이에게 열차에서 낮잠을 좀 자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어중간하게 낮잠을 자면 밤잠이 지연되어 아주 늦게 잘거라 생각했는지, 남편을 다시 고쳐 말했다. 지금 자지 말고 집에서 자라고. 그랬더니 그 꼬맹이 왈,

'아빠가 아까 기차 안에서 자라며.'

그 순간, 열차 안 방송으로 조용히 해달라는 방송이 나왔고 남편은 아이에게 시끄럽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빠가 제일 시끄럽다. 조용히 해줘.'

머리가 지끈지끈해진 남편. 아이에게 그럼 아빠는 자겠다고 했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 딸랑구는 또 강펀치를 날렸다.

'기차에서 자지 말라고 했잖아.'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K.O. 패를 당하고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행 열차에는 쉬지 않고 말하는 미운 4살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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